▲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지난 10일 금속노조(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가 낸 쟁의조정신청에 대한 충남지방노동위원회의 결정서를 읽었다. 한두 번 읽어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여러 번 읽었다. 현대제철 사내하청 노동자가 원청인 현대제철을 상대로 쟁의행위 조정신청을 냈다. 그런데 충남지노위는 ‘조정대상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렸다. 노동안전 의제와 관련해서는 원청이 사용자로서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 결정을 뒤엎었으니 뭔가 대단한 근거라도 고안해 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데 결정서에는 ‘여러 자료들을 검토해 보았으나 조정대상이 아니’라는 말뿐이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이런 결정을 내린 공익위원과 사용자위원은 부끄럽지 않을까?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의 쟁의조정 과정은 참으로 고달팠다. 2022년 중노위는 노동안전 의제로 원청과 교섭할 수 있으며, 하청 단위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면 된다고 했다. 지회는 모든 절차를 거쳤지만 원청과 교섭이 이뤄지지 않았고, 지회는 결국 충남지노위에 쟁의조정 신청을 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원청과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조정대상이 아니라고 하더니 원청과 창구단일화를 하기 위해 시정신청을 하자 이제는 원청이 사용자가 아니라며 기각했다. 결국 지회는 중노위에서 ‘원청이 사용자이고 창구단일화는 하청 단위에서만 진행하면 된다’는 결정문을 또 받았다. 그리고 교섭이 막혀 다시 충남지노위에 쟁의조정 신청을 했던 것이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중대재해가 많기로 유명한 사업장이다. 2022년까지 10년간 해마다 사망사고가 발생해 24명이 숨졌는데 이중 20명이 사내하청 노동자다. 죽음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많이 죽는 것은 위험의 외주화 때문이다. 하청업체들은 시설에 대한 권한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안전설비를 갖추려면 원청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청노동자들의 안전과 산재 예방을 위해서는 원청이 교섭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제철은 노동의제에 대한 하청노동자의 교섭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충남지노위는 원청의 교섭을 강제할 수단인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을 가로막은 것이다.

조정대상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려놓고 민망했는지, 결정서에는 하나가 덧붙여졌다. 산업안전보건 의제는 하청노동자들의 안전과 보건의 유지와 증진, 산재 예방과 보상에 관한 사안으로서, 이 사안과 관련해서는 실질적인 지배력이 있는 현대제철이 하청사업주와 함께 성실하게 협의에 임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회가 쟁의조정신청한 것은 바로 그 산업안전보건 의제와 관련하여 원청이 전혀 교섭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섭을 압박하고자 쟁의조정 신청을 넣었는데, 강제력 하나 없는 ‘원청은 성실하게 협의에 임하라’는 권고라니, 참으로 무성의하다.

이번 결정서에 서명한 공익위원과 사용자위원도 원청이 노동안전 의제에 대해 교섭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협의에 임하라’는 권고를 넣었을 것이다. 결국 노동안전 의제에 있어 원청이 사용자의 지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인데, 그러면서도 쟁의행위를 할 권리는 부인했다. 그런데 교섭권과 파업권은 분리된 권리가 아니다. 노동 3권 자체가 상호 유기적인 관련성이 있으므로 일체의 권리로 보장돼야 하는 것이다. 파업할 권리가 있을 때 교섭도 제대로 진행될 수 있으며, 그래야 단결이 의미를 가진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임의로 쪼개 제한하는 권한을 누가 지노위에 줬나.

중노위는 노동안전보건 의제에 대해서 사용자가 교섭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이것도 매우 협소한 판단이다. 헌법이 노동권을 보장하는 이유는 노동자들의 사회·경제적인 지위 개선을 위해서다. 계약의 형식이나 직접 책임이 있는 의제만을 중심으로 노동권을 인정한다면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노동조건에 관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청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충남지노위 조정처럼 지노위 심판위원들에 의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침해되거나, 개별 노조의 소송을 통해서만 노동권을 제한적으로 인정받는 상황을 맡겨서는 안 된다. 그래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가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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