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원청 직원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원청에 이를 알린 지 꽤 지났지만 바뀌는 건 없었습니다. 가해자는 징계를 받지 않았고, 저는 가해자를 매일 일터에서 마주해야 했습니다. 이후에도 가해자는 제 허리를 만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성적 수치심과 자괴감이 들었습니다.”(하청노동자 A씨)

직장갑질119가 1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갑질금지법 시행 4년, 사각지대 해소방안 토론회’에서 발표한 원청 갑질 사례 103건 중 하나다. 원청 갑질 사례 중 가장 많은 유형은 하청노동자에 대한 괴롭힘(55.6%)이었고, 원청의 인사개입(23.5%), 하청업체 변경(13.1%) 등이 뒤를 이었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4년이 됐지만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사의 갑질을 막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높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원청 직원의 괴롭힘 방지를 위해 원청 사업주도 직장내 괴롭힘방지법(근기법)상 사업주로 규정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제언이 쏟아졌다.

원청과 근로계약 안 맺은 하청노동자
원청 직원 괴롭힘에 속수무책

하청노동자를 향한 원청 직원의 괴롭힘은 노동관계법에서는 손쓸 수 없다. 하청노동자는 원청사용자와 근로계약을 맺지 않기 때문에 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하청노동자는 하청업체 사용자에게만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할 수 있다. 하청노동자가 문제를 제기하면 원청이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 결과 하청노동자는 원청 직원이나 사용자 갑질에 참거나 모른 척하게 된다. 실제로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9~15일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하청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를 경험하거나 목격한 응답자 중 60.3%는 참거나 모른 척한다고 답했다.

국회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들이 발의돼 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 윤미향 무소속 의원, 민홍철 민주당 의원, 강병원 민주당 의원은 원청 직원의 직장내 괴롭힘도 직장내 괴롭힘 범위에 포함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원청 직원의 괴롭힘을 제3자 혹은 특수관계인에 의한 괴롭힘으로 칭하고, 하청업체에 보호조치 의무를 부과하거나(임이자·윤미향 의원안)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한 하청노동자가 속한 업체와의 계약해지를 금지하는 내용(강은미 의원안)이 대표적이다. 직장내 괴롭힘 규정 적용을 받는 사용자에 원청을 포함시켜 원청 책임을 명확히 하거나(민홍철 의원안), 원청을 사용자로 봐서 원청 책임을 명확히 하는(강은미 의원안) 방안도 나왔다.

근기법·파견법·노조법 손봐야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재단 공감)와 조연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이날 토론에서 원청직원으로부터 직장내 괴롭힘을 당하는 하청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파견법과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핵심은 하청노동자에 대한 직장내 괴롭힘을 원청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파견법에는 사용사업주를 사용자로 보는 요건이 나열된 34조(근로기준법 적용에 관한 특례)에 원청 직원 괴롭힘에 대한 직장내 괴롭힘 신고가 추가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용사업주는 파견근로자에 대한 보호의무와 안전배려의무가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근로기준법 개정은 원청이 직장내 괴롭힘 사용자로서 조치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봤다. 근본적으로는 원청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는 원청이 직접고용하는 의무를 명시하게끔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고,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사용자로 본다는 내용을 넣은 노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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