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와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 주최로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돌봄노동자 건강 실태조사 발표 및 건강권 보장 제도개선안 마련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돌봄노동자들이 실태를 증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경기도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9년차 보육교사 신아무개씨는 1년 내내 감기를 달고 산다. 면역력이 취약한 영아들을 보육하다보니 감기와 같이 전염성이 있는 질환에 매번 노출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발달장애와 같은 경계선상의 영유아들이 늘어나 아이들의 돌발행동에 교사들이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아졌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다 뺨을 맞거나 눈을 손가락으로 찔린 동료도 있다. 의자를 집어 던지거나 깨무는 아이들도 있지만 다른 아이들까지 다칠까 염려돼 보육교사는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신씨는 “아이가 좋아 보육교사가 됐지만 어린이집에서는 산재 신청과 관련된 말은 입도 뻥긋 못하게 한다”며 “보육교사가 직접 산재를 신청하면 퇴사를 종용하거나 해고하는 일이 잦다”고 증언했다. 그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듯 보육교사가 행복해야 어린이집의 영유아도 행복하다”며 “근무시간에 진료를 받고, 산재를 자유롭게 신청하는 기본권이 보장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산재는 2명 중 1명꼴, 하지만 산재 인식은 낮아

돌봄노동자 2명 중 1명은 서비스 대상자로부터 폭언이나 폭행 등의 산재 피해를 입지만, 적극적인 보호조치를 경험한 돌봄노동자는 10명 중 1명으로 조사됐다. 돌봄노동자들은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실태조사와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공공운수노조와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1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돌봄노동자 건강 실태조사 발표 및 돌봄노동자 건강권 보장’토론회를 열었다. 노조는 지난달 7일부터 30일까지 노조 내 돌봄노동자(요양보호사·장애인활동지원사·보육교사·사회복지사) 526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일부 응답자를 대상으로는 면접조사도 시행했다.

돌봄노동자 절반 가까이는 연차나 병가, 휴직 등의 경우 대체인력이 투입되지 않았다. 50.4%의 응답자만 대체인력이 투입된다고 답했다. 돌봄노동은 대체인력 투입이 꼭 필요한 직종 중 하나지만 정부·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대체교사를 파견하는 보육교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돌봄노동에서 대체인력 투입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업무상 재해라는 인식은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78.9%의 응답자가 산재 경험이 없다고 했지만 60.4%는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었다. 응답자의 47%는 서비스 대상자로부터 폭언이나 폭행을 경험했지만 이를 산재로 인식하는 이들은 적은 셈이다. 폭언·폭행을 경험해도 사용자가 서비스 이용자를 퇴소조치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적극적인 조치를 하는 경우는 7.4%에 불과했다.

“돌봄서비스 이용자에게 인권교육해야”

조사를 담당한 박대진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돌봄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인력 확충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차, 휴게시간, 병가 등은 결국 인력 문제이고 ‘몸을 쓰는’ 일인 돌봄노동의 특성상 한 노동자가 자리를 비울 경우 동료에게 업무가 심각하게 과중되기 때문이다.

박 국장은 “시간제로 일하는 장애인활동지원사의 경우 교대제나 팀제 근무가 확보되지 않는 이상 휴게시간 확보가 불가능하다”며 “시설 요양보호사 역시 야간에 1명이 이용자 20여명을 돌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휴게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돌봄노동자의 산재 신청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수가에 예비 인력을 반영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남표 공인노무사(직장갑질119)는 “돌봄서비스 이용자에게 (돌봄노동자에게 해서는 안 되는)금지 행위를 알리고 발생시 불이익을 고지하는 등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고령, 여성 노동자가 돌봄노동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직종별·성별 산재 통계 등을 조사해 산재 신청 편의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방문 돌봄노동자의 경우 이용자뿐만 아니라 이용자 가족에 의한 폭력에도 노출될 위험이 있다”며 “장기요양보험 등 사업을 주관하는 보건복지부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보호조치를 규정하고 돌봄기관과 돌봄노동자에게 정보를 공유하거나 이용자와 가족에게 인권 교육을 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