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현경 공인노무사(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최근 몇 달 휴식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취미로 삼을만한 것을 찾아보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책도 읽고, 베이킹·우드버닝·책 보수·목공 원데이 클래스를 해보기도 했다. 그동안 해온 노동관계법과 관련된 분야가 아니기도 하고, 주로 손으로 뭔가 만드는 것들이라 새롭고 흥미로웠다. 그러면서도 매번 공통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 강사의 계약관계는 어떨까, 내가 취소하면 강사의 소득에도 영향이 있겠지’ ‘인두나 오븐을 사용하다 화상을 입으면 학원에서 산재로 처리해 줄까’ 등 모든 사람들이 다 ‘노동자’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들의 노동환경을 생각했는데, 아마도 이게 노무사의 직업병인가 보다.

그리고 쉬는 동안 조카나 친구 아기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하는 시간도 많았는데, 그럴 때는 지나치게 평가절하된 돌봄과 가사노동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조카나 친구의 아기를 돌보는 육아(돌봄노동)를 잠시 했을 뿐인데 ‘뜨거운 오뉴월에 콩밭 맬래, 아이 볼래 하면 콩밭 매러 간다’는 속담이 왜 나왔는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육아는 아이가 깨어있는 시간 동안 육체노동이 쉬지 않고 계속될 뿐 아니라 정신노동까지 더해지는데, 심지어 이런 삶을 몇 년간 지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오는 체력적 한계, 가중되는 스트레스, 경력 단절, 재취업의 어려움, 사회·친구들과의 멀어짐 등 양육자가 일과 삶에 있어서 겪게 되는 다양한 고충까지 더해지면 육아는 양육자의 삶의 질과 방향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일과 삶의 양립이 가능한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저출생 문제를 해결 방안을 마련할 때 깊이 있게 검토해야 하는 부분이다. 단순히 경제적 지원만 있다고 아이가 잘 자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사노동은 또 어떠한가. 청소, 빨래, 정리, 식사 준비 등의 가사노동은 청결, 영양분의 공급, 정서적 안정 등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오랫동안 집안일이라고 사소하게 여겨지며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실제 통계청이 6월27일 발표한 ‘무급 가사노동 평가액의 세대 간 배분 심층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 무급 가사노동가치 추계액은 총 490조9천190억원으로 명목 국내총생산액(1천924조4천981억원)과 비교하면 25.5%에 달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 가정관리·가족 및 가구원 돌보기·참여 및 봉사활동 등을 통해 생산한 가치가 356조410억원(72.6%)에 달했고, 25세에 흑자로 진입한 후 84세가 돼서야 적자로 전환된다.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과학자도 ‘과학기술의 발달로 전기 기구들이 나오면서 노동량이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놀랍게도 여성의 가사노동의 시간은 늘었다. 분명히 할 일은 줄었지만 줄어든 노동량은 대부분 남성의 가사노동량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과학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전기 기구를 사용하면서 가사노동의 편리성이 증가되고 전체 가사노동 시간은 줄었다. 반면 여성의 가사노동은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 가치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최근 발의된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최저임금 적용제외 관련 법안,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만 봐도 가사노동이 얼마나 평가절하되는지 알 수 있다.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기계로 대체되는 노동, 사라지는 노동이 많아지고 있다. 임금소득만으로 살아가기는 힘든 현실에서 사람들은 부동산·주식·가상화폐 등에 더 의존하게 된다. 심지어 자극적인 소재로 영상을 만들고 이것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아이, 노인, 환자 등 정서적인 교감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는 노동인 돌봄, 자신의 가정을 가꾸는 노동인 가사는 분명 다른 사람이나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 범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평가절하된 노동을 어떻게 인정하고 관리할 것인지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그 일의 어려움과 고충을 가늠할 수 없는, 직접 해보면 함부로 평가절하 할 수 없는 돌봄·가사 노동. 이런 노동의 가치와 사람의 가치를 잘 모르겠다면, 직접 해보고 온전히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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