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9일 오전, 부고 문자를 거듭 읽었다. “[부고] 조임영 교수 별세”라는 문자메시지 제목을 봤을 때는 가족상인데 내가 잘못 본 것이라고 여겨 다시 읽었다.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임영 교수께서 2023년 7월9일 일요일 오전 02시40분 숙환으로 별세했기에 아래와 같이 삼가 알려드립니다”라는 본문 내용까지 읽고서야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란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안타깝다. 솔직히 내 머리는 이 말밖에 떠올리지 못했다고 고백해야겠다. 한동안 멍했던 나는 겨우 안타깝다는 말 정도로 조임영 교수의 부고 소식에 반응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가버리다니.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토론해 달라’ ‘연구논문을 작성해 달라’ 내가 부탁하면 해줘야 할 텐데, 더는 할 수 없게 됐으니 안타깝다. 이렇게 안타깝다고 말하고 보니 아깝다는 말이 더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그렇다. 나는 조임영 교수의 별세가 아깝다.

내가 조임영 교수를 처음 봤을 때가 정확히 언제 어디서였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서울대 노동법연구회의 세미나였는지,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토론회였는지, 아니면 내가 법률원장으로 기획했던 금속법률원의 토론회인지 처음 그를 만났던 일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히 이들 행사장에서 만나서 토론하고 대화했었다. 이런 행사 말고는 취미활동 등 그와 사적인 관계를 갖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산을 함께 올랐던 일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노동법 토론 행사 말고는 나는 그와 관계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이러하기에 나는 부고에서 그를 온전히 노동법 연구자로만 기억한다.

2. “프랑스에서의 파업과 형사책임” <노동과 법> 3호에 수록된 조임영 교수의 논문 제목이다. 내가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 및 금속노조 법률원장으로서 발간했던 노동법 연구논문집 <노동과 법> 책자들을 들춰보니 조임영이 작성, 기고했던 노동법 연구논문이 있다. 프랑스에서 노동자 파업시 형사책임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2002년 발간했다. 당시 많은 노동자들이 파업투쟁으로 수배되고 체포, 구속돼 형사처벌을 받고 있었기에 나는 노동자들의 파업 등 쟁의행위에 대한 형사책임 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펴 이 나라 노동자들의 파업 등 쟁의행위가 형사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법리를 찾아내고자 했다. 그래서 나는 <노동과 법> 3호에 이 나라 노동자들이 파업 등 쟁의행위시에 형사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법적 문제 말고도 비교법적으로 해외사례로 독일·일본과 함께 프랑스에서 노동자 파업 등 쟁의행위 시 형사책임에 관한 논문들도 수록하고자 했다. 조임영 교수가 프랑스에서 노동자 파업에 대한 형사책임에 관해 작성해 줬다. 이 책자를 기획하면서 나는 노동자 파업에 대해서 형사책임을 부과하는 것, 즉 국가가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자 했다. 조임영 교수는 이런 의도에 부응하는 논문을 기고했었다.

논문에서 조임영 교수는 “파업과 형사책임에 관련해서는 1864년 5월 25일의 법에서 … 자유로 승인한 이래 (위법파업을 포함해) 파업 자체에 대한 형사처벌은 없다”라며 프랑스에서는 노동자 파업에 대한 형사처벌이 없음을 밝히고서, “가령 공공부문의 파업 절차와 방식에 대해 일정한 법적 제한을 두고 있”지만 “위반시 벌칙규정은 없다”고 밝혔다(“프랑스에서의 파업과 형사책임”, <노동과 법> 3호(2002, 50면). 노동자 파업을 처벌할 수 없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인데, 조임영 교수가 쓴 “프랑스에서의 파업과 형사책임”의 내용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2002년 노동과 법을 발간할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줄곧 나는 노동자 파업은 처벌할 수 없노라고 주장하고 주장해 왔다. 그러니 이런 내 주장과 정확히 일치하는 프랑스에 관한 글을 써준 조임영 교수에 대해서 커다란 호감을 갖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리라. 그 뒤 여러 차례 걸쳐 나는 그에게 토론회에 발제나 토론을 부탁했다. 당연히 노동법 토론회였다. 조임영 교수는 언제나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발제를 하고 토론을 했다. 근래에는 부탁한 적이 없다. 최근 몇 년간은 노동법 토론회를 기획하고, 노동법 연구책자를 발간하지 않았기에 그에게 부탁할 일이 없었다. 여기서 내가 중단 없이 토론회를 기획하고, 노동법 연구책자를 발간했더라면, 그를 좀 더 볼 일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쉽고 아깝다.

3. 이렇게 부고에 옛 책자까지 들추면서 조임영 교수를 회고하자니 그 시절의 내가 튀어나온다. 조임영 교수의 논문을 수록한 <노동과 법> 3호를 발간하면서 썼던 발간사를 읽었다. 당시 금속산업연맹 법률원장으로서 내가 썼던 것이다.

“해마다 파업 등 쟁의행위를 이유로 수많은 노조 간부 및 조합원들”이 구속 수배되고 형사처벌을 받“고, 그 때문에 노동자들이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하면 처벌받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파업 시 ‘구속 결단식’까지 치르는 당시 상황에서의 글이었다. 나는 이렇게 쓰고 있었다.

“헌법상 기본권으로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는 나라에서 평화적인 쟁의행위조차도 형사처벌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임에도,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받아들이고 있으니 정상적인 상태라 할 수 없”다. “이제 비정상을 깨뜨릴 도전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 도전은 쟁의행위 자체를 형법상 범죄 구성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위력’ 업무방해죄와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 관계법령을 개폐하거나 법원의 태도를 변경시켜야 하는 것”이다. (“노동과 법 3호를 발간하며”, 위 책자, 4면).

그렇다. 나는 20여년 전에도 파업 등 평화적인 쟁의행위는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처벌하는 법과 판례를 바꿔야 한다고 외쳤다. 노동변호사로서 나는 20여년을 노동자의 파업 등 평화적인 쟁의행위는 형사처벌 해서는 안 된다고, 그것은 노동자의 자유로서 보장해야 하는 것이라고, 대한민국 헌법에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한 것은 이를 선언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주체, 목적, 시기와 절차, 수단과 방법 등을 문제 삼아 정당성 운운하면서 업무방해죄 등 일반 형사범죄와 노조법 위반 등으로 형사처벌하는 법과 법리는 전면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나는 그 주장을 해야만 한다. 여전히 이 나라는 노동자의 파업 등 평화적인 쟁의행위를 처벌하고 있으니 별수 없이 나는 해오던 대로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내가, 조임영 교수가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무슨 대단한 기본권 내지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파업 등 평화적인 쟁의행위란 노동자들이 무언가 요구하면서 이를 관철하기 위해서 일하지 않는 것 등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일하지 않고 무언가 행동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유인 것인데, 이러한 자유는 헌법상 단체행동권 보장에 의해 노동자의 자유로 선언된 것이고, 더구나 단체행동권이 아니라도 사람으로서,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자유로 보장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까지도 이 나라는 노동자의 자유를 처벌하고 있다. 형법상 업무방해죄 등을 제외하더라도, 헌법상 단체행동권 등의 행사를 보장하는 목적으로 제정한 노조법은 주체, 목적, 시기와 절차, 수단과 방법 등 온갖 제한과 금지를 규정하고, 그 위반 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노조법을 한 번 읽어보라. 당신은 이 나라에서 노조법이 노동자가 파업 등 쟁의행위하는 걸 규제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만약 노조법이 노동자의 쟁의행위를 위한 것인 양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바보이거나 노동자를 기망하는 자임이 틀림없다. 아무리 사용자 자본을 위해서 학설하고 판결을 쏟아낸다고 해도 바보는 바보고, 기망은 기망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학설하고 판결한다 해도 파업은 노동자의 자유고, 파업 등 평화적인 쟁의행위를 처벌하는 법과 판례가 정당하다고 말할 수 없다. 노동법의 역사를 보면, 법이 당연하게 노동자의 자유를 위해서 달려왔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운동에 의해서 노동자의 자유를 위한 법을 세워왔다. 이러한 노동법의 역사는 이 나라도 다르지 않을 것인가. 20여년 전 나는 위와 같은 발간사에 이렇게 덧붙이고 있었다.

“쟁의행위에 대한 형사면책 법리의 형성과정을 보면, 쟁의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했던 것에서 노동자들의 운동을 통해 이를 용인하고 권리로서 보호하는 단계로 전진해왔던 것을 알 수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