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하나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

세상은 변화무쌍하고, 나는 나름의 주관과 기준을 가지고 살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법을 잘 안다는 점과 법률적인 사고를 하는 훈련이 됐다는 점이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도무지 법으로 해결이 안 되고, 상식적으로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이슈를 만났다. 바로 플랫폼 기업과 그 기업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 간의 법률관계다.

법률관계의 핵심은 권리와 의무를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러한 권리와 의무는 관련 법령과 양 당사자가 작성한 계약서로 구체화 된다.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게임의 룰(rule), 즉 관련 법령과 계약서를 기준으로 문제를 분석하면 된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과 플랫폼에 노동력과 재화를 제공하는 계약당사자의 법률관계는 이와 180도 다른 양상을 보인다. 플랫폼 기업이 일부 게임의 규칙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플랫폼 기업이 공개하지 않는 부분이 계약의 핵심적인 내용이라는 점이다. 배달 플랫폼 기업과 라이더의 계약관계를 살펴보면, 라이더유니온은 오랜 기간 배달 플랫폼 기업에 ①실시간으로 변하는 ‘배달단가’의 변동 기준, ②배차기준과 배차 페널티의 기준, ③특정 라이더에게 주는 프로모션 제공 기준 등이 무엇인지 공개를 요구했다. 라이더의 임금은 ‘배달단가’와 ‘배달건수’로 결정되고, 다시 ‘배달건수’는 ‘배차기준’과 ‘배차 패널티’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이러한 요소들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받는 법률관계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은 이러한 요소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므로 공개할 수 없다는 답을 반복하고 있다. 전통적인 계약에 대입하면 근로계약상 임금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징계사유 등이 공개되지 않는 것이고 용역계약상 용역단가 산정 기준을 모르는 것이다. 일방에게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내용일지라도 계약에 필요한 경우 이를 공개하고, 상대방에게 비밀유지의무를 부담하게 하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플랫폼 기업은 자신들이 정보를 독점하고 그에 종속돼 노동력과 재화를 공급하는 계약당사자에게 그 불이익을 부담하게 하는 형국이다.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야 하는데, 지금은 라이더가 느끼는 불합리함이 정확히 어떤 문제인지 확인이 안 돼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플랫폼 기업이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는 이유는 이를 공개할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플랫폼 기업이 정보를 독점하면서 얻는 이익이 크면 클수록, 이를 포기하면서 정보를 공개할 유인이 없어진다.

이 문제는 입법적 개입 없이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 법률계약의 핵심적인 요소는 투명하게 공개하고, 핵심적인 내용이 알고리즘으로 결정되는 경우 그에 대한 설명의무를 부과하는 등의 입법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플랫폼 기업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계약상대방에게 계약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될수록,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도 의무를 방기하지 말고 회기 내에 법안 처리로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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