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호운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그렇다고 이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 있었습니까? 그들 눈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고 노회찬 의원의 2012년 당대표 수락 연설의 한 대목이다. 필자는 이 말을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뒤에야 들었다. 충격이었다. 내 삶이 부끄러워졌고, 지난 삶을 되돌아봤으며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질문했다.

그렇게 2020년부터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정책담당자로 여러 연구를 맡아 현장 비정규 노동자들과 간부들을 만났다. 그들은 힘들더라도 자기 삶을 꿋꿋하게 지키면서 살고 있었다. 노회찬 의원이 말했던 ‘고단한 순간’들이다. 센터 활동 전에는 알지 못했던, 아니 어쩌면 알려 하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진실을 마주했다. 그리고 어쩌면 모르는 게 마음은 편하다는 말보다는 앞으로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알고서 그들이 보이는 곳에,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서 있는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센터 활동 초기, 만났던 이들 중에는 ‘가구 방문 노동자’들이 있다. 하루에 2만~3만보를 걸으며 가스 폭발사고 위험으로부터 우리 삶을 지키는 가스안전점검 노동자. 고령화 사회에서 증가하는 노인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활동하는 요양보호사. 복지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찾아가면서 사회적 약자의 삶을 보호하기 위한 통합사례관리사. 이들은 우리 사회 안전과 복지를 현장에서 책임지는 일을 하지만 정작 그 일의 가치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코로나19 시기 온 사회의 주목을 받았던 필수노동자도 만났다. 코로나19 감염 위기 속에서도 가구에 방문하여 일하는 돌봄노동자, 팬데믹 속에서 수많은 이들의 생필품과 음식을 배달한 배달노동자, 증가한 생활폐기물을 수거하며 새벽 길거리를 책임지는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노동자, 확진자 속에서도 병동을 책임진 간호사와 병원시설관리 노동자.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시민의 삶을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지탱한 필수노동자 대부분 비정규 노동자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고 그들의 노동 실태도 곳곳에서 드러났지만, 그뿐이었다.

지난해 생활폐기물 처리 공정 현장을 방문했다. 우리가 버린 생활폐기물이 재활용 처리장, 소각장, 매립장, 음식물처리장 등에서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현장은 다 비슷했지만, 무엇보다 재활용 처리장이 가장 열악했다. 우리가 버린 재활용품은 대부분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실제 재활용되는 비율은 아주 낮다. 깨끗하지 못해서, 이물이 섞여서, 혼합 플라스틱이라 등등 온갖 문제로 실제로는 재활용할 수 없다. 대부분 작업과정은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한다. 그 과정에서 날카로운 것에 베이기도 하고 동물 사체가 나오기도 하며 주삿바늘에 찔리기도 한다.

그렇게 센터 활동을 통해 마주한 현장은 고단했다. 이들 덕분에 시민들은 안전하고, 깨끗하고, 편하게 자기 삶을 다른 영역에서 유지한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때로는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는 곳에 놓이기도 한다. 다양한 해결 방안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되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제 마주 봐야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비정규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그 현장을, 현실을 마주 보고 느껴야 한다. 노동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마주 보려고 하지 않는다.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삶이 불편해지기 때문일까? 아니면 마주 보는 순간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 때문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온갖 이유를 대면서 진짜 문제는 마주 보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노회찬 의원이 2012년 연설한 고단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찾을 때, 그 옆에 서주고, 손잡고, 들어주고, 마주 볼 용기가 필요하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kihghdns@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