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인플레이션에 휩싸인 유럽에서 물가를 잡으려면 기업 이윤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유로화 이용 지역(유로존)에서 물가안정을 꾀하려면 기업의 이윤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인데,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금융경제연구소는 5일 유로존 물가 상승 원인을 진단한 국제통화기금(IMF)의 분석을 재해석한 ‘유로존 물가 상승은 기업이윤 몫이 지나치게 증가한 탓’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유로지역 인플레이션은 지난해 10월 10.6%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 국면에 들어갔지만 지난 5월 기준 6.1%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높은 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목표치 2%대에는 전혀 근접하지 못하고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 유럽중앙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4.0%)와 수신금리(3.5%)를 각각 인상했다. 지난해 6월 0%대 기준금리는 1년 만에 4.0%가 됐다. 수신금리 3.5%는 22년 만의 최고치다.

유럽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은 ‘기업이윤’ 몫을 축소하는 역할을 한다. 국제통화기금이 유로지역 물가 상승 요인을 확인했더니 수입 물가보다 국내 요인이 컸다. 임금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 영향률은 각각 수입물가·기업이윤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임금인상이 물가 상승에 영향을 끼치기는 했지만, 그 영향은 기업이윤과 수입 물가의 절반 정도라는 의미다.

기업이윤이 물가 상승의 주범이 된 까닭은 이들이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에 대응하면서 수입 물가 증가분보다 더 높은 비용을 상품 가격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소비자 주머니를 털어 갔다는 얘기다.

유로존 노동자 임금은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해 실질임금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통화기금은 “실질임금의 회복을 고려하면 향후 2년 동안 임금 상승은 5.5% 수준이 되어야 한다”며 “이 수준을 가능하게 하려면 기업은 추가로 0.7%의 이윤 몫 축소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런 유럽의 고민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는 적지 않다. 지난달 18일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국제 밀 가격이 내려간 것과 관련해 라면값을 인하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후 신라면과 새우깡 등 국민 라면, 국민 과자 가격이 일제히 내려갔다.

정부는 지난 4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물가를 잡고, 민간부문 활성화를 통한 경기부양을 도모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금리를 인상하면 기업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자재하고, 대신 물가 잡는 데 신경을 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보고서를 작성한 송종운 나라살림연구소 지방의정센터장은 “경제적 안정과 실질임금 인상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자동으로 달성될 수 없고 중앙은행 등 정부 정책 결정 영역 이외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영향을 받는다”며 “노동자와 자본의 첨예한 대립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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