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혜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금속노조 법률원)

중대재해를 야기한 안전보건범죄에 대한 형사절차에서, 형사합의와 피해자(대부분의 경우 사망한 피해당사자의 유족)의 처벌불원 의사가 사실상 국가형벌권의 행사를 좌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전보건범죄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할 수 없는 범죄(반의사불벌죄)가 아니지만,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가 범죄의 양형에 가장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자로서 기능함에 따라 중대재해를 피해자와 가해자(회사) 간의 사적 관계의 일처럼 축소시켜 버린다.

통상 중대재해 사건에 가장 많이 적용되는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안전 및 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해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안전 및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하고,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사업 또는 사업장을 운영하면서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및 법인의 처벌 등을 규정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각 법의 목적에서 보듯이 안전보건법령의 보호법익은 개인적 법익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법익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중대재해가 단순히 피해자와 가해자(회사) 간 개인적이고 사적 범주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형사합의와 처벌불원은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의미일 뿐이고 온전한 피해회복도, 재발방지나 안전한 작업환경도 담보하지 않는다. 형사합의를 하겠다며 피해자를 돈으로 회유하거나 협박하는 회사로부터 과거의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하는 자세, 이제부터라도 안전보건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에 따라 형벌권의 행사가 자제되는 것을 피해자의 의사 존중과 신속한 피해회복을 이유로 정당화하는 관념이 널리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1)  그러나 오히려 이로 인해 피해자는 물론이고 사업장에 남아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법상 보호가 위태롭게 되는 현실적인 역기능에 주목해야 한다.

숱하게 지적됐듯, 산업안전보건법 위반범죄의 중요한 특징은 가벼운 처벌과 높은 재범률이다. 법원이 안전보건범죄를 경미한 범죄로 다루는 인식의 배경은 판례에 적시된 양형이유에서 종종 드러나는데,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감경인자가 합의와 피해자의 처벌불원이다. 법원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명의로 작성된 처벌불원서나 합의서를 통해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했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 당사자 사이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는 알 길이 없다. 법원 내부의 조사관 제도를 활용한 양형조사 제도가 이용되지만 공판절차에서 엄격한 증거조사가 이뤄지는 것과 비교할 때 양형인자가 형사재판에 미치는 영향력에 비해 처벌불원 의사에 대한 조사 방법은 지나치게 간소하다. 결국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를 중요하게 고려할수록 피해자, 나아가 법이 보호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처한 일터의 현실과 권력관계가 더 은폐될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가 외부에 표시한 의사가 무엇이든 중대재해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고 안전보건범죄로 인한 피해회복을 돕는 국가의 역할이 달라져야 할 이유는 없다.

외국의 경우 기업과실치사죄를 범한 기업 중 이미 파산해 존재하지 않는 기업도 법원이 공표명령 부과 등 제재 수단을 적용하면서, 그 이유로 비록 해당 기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유사 기업들에 대한 경고와 예방목적이 법에 있음을 명시한 바 있다.2)

사법기관이 처분 당시 가해 기업의 존속 여부를 넘어서 범죄억제력을 위해 적절한 형사처분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는 점에서,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라는 매우 특이한 양형 관행에 파묻힌 우리 법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드물지만 반가운 판결도 있다. 최근 인천지방법원은 인천항만공사 하청노동자 사망 사건에서 일부 피고인이 유족과 합의를 해 유족의 처벌불원 의사가 제출됐음에도 이를 사망한 피해자 본인과 합의한 것과 동등하게 평가할 수 없다면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보지 않았다. 반면 다른 피고인들이 유족을 위로하거나 유족과 합의한 사정이 없는 점은 사실상 불리한 양형이유로 언급했다.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한다면서 피해자에게 형사절차의 무거운 짐을 지우는 법원의 양형 관행으로 인해, 사실은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가 소외되는 문제를 제대로 짚어낸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면, 그 당연한 일들이 낯설어진다. 다른 곳도 아닌,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그 이익을 위해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위험을 통제·관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를 위반해 중대재해를 야기했다면 그 피해보상 역시 당연하다. 이토록 당연한 일들을 대가로, 자신의 신체·건강이나 심지어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 처벌불원 의사를 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당연한 일을 수범자가 당연히 하도록 할 책임이 있는 법원이, 그런 식으로 제출된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안전보건법령에 따른 국가형벌권을 자제하는 것은 진정 타당한가. 중대재해 형사절차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진지한 규범적 성찰이 필요하다.

※ 참고로 중대재해 피해에 대한 일정한 금전적 보상 내지 요구사항 이행을 합의하는 것(이른바 민사합의)과 별개로, 고소·고발 등 형사상 일체의 문제제기를 하지 않겠다거나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처벌불원 탄원에 대해서는 합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꼭 말하고 싶다. 형사합의와 처벌불원 의사를 민사합의와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고 여기는 잘못된 인식이 존재하는 것 같아 밝혀 둔다.
1) 장유진,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에 의존하는 형사절차에 대한 포스트식민주의적 비판, 서울대학교 공익인권법센터, 2021
2) 김혜경 외, 해외 중대재해 처벌에 관한 사례 분석, 안전보건공단,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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