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발단은 어쩌면 값싼 호기심이었다. 몇 년 전 한 연예인 관련 쏟아지는 보도를 접하며, 도대체 ‘텐프로’는 무엇이고 여기에 일하는 여성이 누구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스포츠신문의 선정적 보도를 시작으로 검색의 파도를 타고 가니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이란 사회단체에 이르렀다. 여성주의 내에도 성매매를 노동으로 정의하면서 자발적 노동 의지를 강조하는 쪽과 성매매 여성을 만들어내는 구조적 강제 요인을 강조하는 이들 간 논쟁이 있다. 나는 제반 논쟁을 비롯해 성매매의 복잡한 구조를 판단할 지식도, 경험도 부재하다. 그럼에도 짧은 지면이나마 부족한 소회를 나누는 이유는 이룸의 자료와 상담사례를 읽으며 ‘성매매’만큼 선명한 계급적 의제가 없기 때문이다.

첫째 여성이 성매매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현실은 빈곤·가출·가정폭력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성매매 노동의 특성상 10~20대라는 어린 나이에 유입되는 경우가 많다. 가정과 학교에서 보호받지 못한 여성일수록 그 가능성은 높아진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가난과 학대를 이유로 집을 떠날 수밖에 없는 ‘가정 밖 청소년’의 규모는 5만6천명에 이르지만(전문가에 따라 수십만명으로 추산) 쉼터 등에서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1천300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보호를 벗어난 여성청소년에게 제일 먼저 손을 내미는 어른은 성매매 업주다. 과거에는 지하철 화장실에 ‘숙식제공, 월 00000원 보장’ 같은 문구로 여성들을 유혹했다면, 요즘은 ‘조건만남’ ‘토킹바, 룸’ 등으로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버젓이 구인광고를 띄운다. ‘2022년 성매매 피해아동·청소년 지원센터’에 의하면 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성매매 피해 아동과 청소년’만 862명으로 14~16세에 46%가 경험했으며 상담건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직접 센터에 찾아 상담을 받는 인원이 이 정도니 실제로 얼마나 많은 수의 여성이 어릴 때부터 성매매로 유입되는지 추산조차 어렵다.

둘째, 성매매가 구매와 판매라는 정당한 거래가 아니라 ‘착취’라 불리는 이유는 일 자체가 개인의 날것 그대로 욕망을 마주하며 폭력과 인격 침해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 노동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고, 일의 대가를 둘러싼 기이한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 성매매산업은 수십조에 이르는데, 정작 종사하는 여성의 삶은 이상할 만큼 개선되지 않는다. 한 반성매매 활동가는 처음엔 자신과 같은 활동가들 월급과 비교할 수 없이 큰 돈을 버는 ‘언니’들이 계속 가난해지는 이유를 이해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포주가 물리적·경제적 예속 관계를 통해 절대적 권한을 행사했다면 요즘 업주는 금융권을 이용해 합법과 탈법을 넘나드는 지배력을 행사한다. 업주와 결탁한 미등록 대부업체나 제3금융권뿐 아니라 제2금융 저축은행들은 ‘아가씨(업소 전용) 대출’ 상품을 만들어 여성의 채권자가 된다. 성매매에 뛰어드는 상당수 여성은 당장 돈이나 주거가 필요해 일에 시작했지만, 정작 일을 하려면 다시 선불금(마이킹)이란 이름의 부채를 진다. 성매매 장소가 되는 주거지 등 방세, 수백만원에 이르는 의상 구입과 대여 비용, 화장‧머리 등의 비용이 모두 대출일뿐 아니라, 성산업 구조상 ‘몸값’을 올리기 위해 성형수술을 강요받아 악성고리 대출로 이어지는 것도 전형적 패턴이다. 높은 이자 때문에 몇백 만원의 빚이 몇천 만원이 되는 일도 꽤 흔한 이야기다. 즉 몇 년간 일을 계속했는데도 빚이 늘거나 쉽게 돈이 모이지 않는다. 활동가들은 단기간에 돈을 벌어 성매매를 그만두는 여성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개인이 넘어서기 어려운 착취의 구조적 고리를 강조한다.

셋째, 많은 성매매 여성을 냉소하는 언사 중 하나는 ‘자발성’이다. 요즘은 여성을 인신매매하거나 포주가 감금하는 시대도 아닌데, 왜 스스로 불법을 선택한 여성을 ‘착취 피해자’로 보거나 지원해야 하냐는 물음이다. 그런데 빈곤과 생계의 문제, 가정과 사회의 취약한 청소년 보호, ‘2차는 없다, 월수 천만원 보장’ 같은 알선자들의 거짓말, 여성의 수입을 교묘하게 갈취해 빚을 지게 하는 문화, 성매매 여성에게 가해지는 낙인과 차별, 성별 임금격차, 성·계급의 문제 등 사회구조적 문제를 떼어놓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논할 수 있을까. 오히려 가난하고 어린 여성들에게 유독 이런 형태의 ‘자발성’을 이끌어 내는 우리 사회 환경과 시스템에 주목해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더 많은 이들이 당사자의 성매매 경험담을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동안 우리가 접해온 미디어나 문학작품, 남성들의 무용담 속 성매매 여성의 모습은 타자화된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매수자 입장에서 화려함과 웃음, 돈과 서비스 등 몇몇 편린만 존재하니 미화와 혐오의 극단을 오가기 쉽다. 그런데 오히려 성매매가 업이었던 이의 경험은 일상이자 연속되는 삶 그 자체라 차이가 있다. 한편으론 자본주의가 인간의 노동을 착취하고, 한국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치외법권적 요소로 넘쳐나지만 이토록 타인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노동현장’이 있을까 싶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인권과 노동에 보통의 감수성을 가진 평범한 시민들이 공동체의 또 다른 일원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더 많아지길 희망해 본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haeyoonj@naf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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