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준형 공인노무사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다중이 이용하는 운송수단 중 오로지 버스만이 운전자가 고객을 직접 대면한다. 지하철과 비행기도 운전자가 승객을 마주칠 수는 있지만, 우연에 불과하다. 고객을 대면하는 빈도는 어느 운송수단도 버스를 따라올 수 없다. 모든 승객은 버스 운전직 노동자와 마주치며 요금을 지불해야만 탑승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만남의 빈도가 잦은 만큼, 감정노동의 수위는 높아진다. 버스 노동자가 승객과 직접 대면하며 당하는 폭언과 욕설의 수위를 듣고 있자면, 이들의 일상생활까지 영향받지 않을까 걱정할 수밖에 없다. 청소년에게 “어이, 3명 찍어”(3명 탑승할 테니, 교통카드 시스템에 등록하라는 말이다)라며 무시당하는 경험은 일상이고,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 눈을 왜 그렇게 뜨냐”“시민이 왔으면 깍듯이 인사해야지, 왜 설렁설렁 인사하냐”“너 때문에 지각했으니, 책임져라” 같은 폭언도 수시로 듣는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승객한테 상시적으로 듣는 폭언보다도 서울시 버스노동자에게 더 큰 고통을 주는 대상이 있다. 바로 서울시가 익명으로 행하는 ‘운행실태 점검’이다.

서울시는‘시내버스 서비스 개선’이라는 목적으로 상반기와 하반기 각각 시내버스의 운행실태를 점검한다. 서울시 공무원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승객으로 가장해 시내버스에 탑승한 뒤 친절도, 안전운행, 운행실태, 차량 내·외부 상태 등을 점검하며 버스 운행실태를 점검한다. 서울시는 매년 서울시 버스회사를 평가한 뒤 성과이윤을 배분하는데, 서울시는 운행실태 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회사 평가점수를 감점하고, 회사는 감점으로 인해 성과이윤 배분에서 수억 내지 수십억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회사의 불이익은 온전히 버스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버스회사는 수억 내지 수십억원의 불이익을 받게 한 노동자에게 징계, 인사조치 등 할 수 있는 한 온갖 불이익을 부여한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생각해보라. 누군가 내가 일하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고, 그 결과를 회사에 통보한다. 심지어 나는 평가자가 누구인지, 언제 나를 지켜볼지 알 수 없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없다. 평가 기간도 연간 10개월 내지 11개월이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극한의 노동감시다.

불안감은 노동자를 굴복시킨다. 승객에 대한 응대 태도 등 친절도에서 감점당할 수 있기에, 버스 노동자는 각종 악성 민원에 대해도 항의할 수 있는 힘을 잃는다. 한 손으로 운전을 해도 감점받고, 라디오 음량을 크게 틀기만 해도 감점을 받을 수 있는 현행 제도에서 운전직 노동자는 항상 극도의 긴장 속에서 일하고, 부당한 대우에 항의조차 할 수 없다.

대안은 간단하다. 서울시 공무원은 신분을 밝히고 탑승한 뒤 운행실태를 점검하면 된다.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부여하는 감점 제도를 가점 제도로 변경하면 된다. 현행 운행실태 점검의 목적은 승객의 타당한 민원 제기에 대한 사후처리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제도는 시민의 일상을 공기처럼 지탱해주고 있는 버스 노동자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가와 서울시는 버스 노동자의 노동을 개선해야 할 서비스로 보기 전, 존중해야 하는 소중한 노동으로 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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