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진희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가장 최근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매년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50년 이후 1년에 60만명씩 사라지게 되고, 2100년에는 우리나라 총인구가 불과 2천만명이 채 안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중앙정부는 이달 인구구조 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17개 전 부처가 참여하는 ‘인구정책기획단’을 발족했다. 그간 인구부양을 위한 정책이 각 부처별로 흩어져 있어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부처 간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물론 부처 간 긴밀한 협력은 정책의 실효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간 우리나라 저출산 내지 저출생 정책이 실패한 본질은 부처 간 칸막이가 아니라 인구감소의 직접적이고 정확한 원인을 정확하게 짚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여러 부처에서 해외취업 지원이나 CCTV 설치, 예술강사 파견 등 인구부양과 전혀 무관한 사업을 저출생 대책으로 둔갑시키고 저출생 해결이라는 명목하에 예산을 배정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해당 사업의 예·결산 자료 어디에도 ‘출산’ 혹은 ‘출생’이란 단어조차 찾아볼 수 없거나, 해당 사업이 저출생 해소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조차 나와 있지 않다. 즉 국가적 문제인 저출생을 빌미로 그저 예산을 받아 내는 것에 불과한 현실에서 부처 간 칸막이가 해소된다고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미국 피터슨경제연구소(PIIE)의 제이컵 펑크 키르케고르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인구절벽 문제 원인을 ‘성불평등’으로 진단했다. 특히 노동시장 내에서의 성 격차(gender gap)와 혼인·자녀가 주된 원인임을 강조했다. 혼인과 자녀가 왜 노동시장 내 차별을 결정짓는 인구절벽의 중요한 요인으로 판단할까. 여러 이유 중 하나로 우리나라 노동시장 내 고착된 이상적 노동자 규범을 들 수 있다. 이전에도 본 칼럼을 통해 가정생활이 없는 것처럼 일할 것을 강조하는 이상적 노동자 규범 해체가 중요함을 주장했고, 그간의 연구 등을 통해서도 지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이상적 노동자 규범은 너무나 견고한 성과 같다. 무엇보다 가사와 육아는 주로 여성의 일로 여겨지는 우리 사회에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여성은 훌륭한 어머니가 될지언정 직장에서는 회사에 충성하지 않는 불성실한 노동자로 낙인찍힌다. 물론 남성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남성 역시도 회사에 충성도가 낮고 승진에 욕심이 없는 무능력한 직원으로 분류된다. 그러다 보니 당연하게도 자녀양육으로 인해 초과노동, 장시간 노동을 할 수 없는 수많은 노동자는 승진 등에서 제외되고 직장내 따돌림이나 조직적 괴롭힘에 노출된다.

이상적 노동자 규범에서 벗어나는 가장 대표적인 예로 육아휴직을 들 수 있다. 얼마 전 네이버에서 근무하던 여성 개발자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는 과정에서 부당한 부서 배치와 직장내 괴롭힘을 당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부산의 한 기업에서 일하는 남성노동자 역시 육아휴직 뒤 집에서 430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으로 발령을 받았다. 중견기업의 한 노동자는 육아휴직 복직 뒤 원래의 업무에서 배제되고 대기발령 상태로 두 달간 출근하다 결국 고위직 간부에게 무릎을 꿇고 자재관리 부서의 청소 같은 업무로 배정된 것으로 보도됐다. 이러한 문제들이 지속해서 수면으로 올라오자 고용노동부는 올해 초 모성보호 신고센터를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신고하더라도 결국 노동자가 그 사업장에 남아 있는 한 ‘신고한 괘씸죄’가 추가돼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노동자를 괴롭힐 것이 너무나 뻔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의 육아휴직을 사용한 노동자는 회사생활에서 낙오를 각오한 용자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직장내 괴롭힘을 포함한 여러 법·제도는 사후 대응책으로 그 한계가 명확하므로 사전 예방할 방안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이상적 노동자 규범에 관한 인식변화가 가장 시급하다. 주로 ‘무자녀 남성노동자’를 이상적 노동자로 꼽았던 기존의 인식에서 ‘육아와 돌봄을 병행하는 남녀노동자’로 변화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각 기업으로부터 육아휴직 대상자와 사용자를 제출받고 수시로 모니터링하며 비율이 낮은 기업에게는 강력한 페널티를, 그리고 비율이 높은 기업에게는 인센티브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19조4항을 개정해 육아휴직 복직 후 전과 같은 업무 또는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복귀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같은 근무지, 같은 업무와 동일수준 임금수준’ 보장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경영상의 이유 등으로 이를 준수하지 못할 시에는 근로감독관 등을 통해 점검하고 확인하는 방식도 필요하다. 혹자는 지금이 인구정책의 골든타임이라고 하지만 대체출산율을 고려해보면 이미 골든타임은 지난 듯하다. 이제는 그간 정책의 틀을 넘어서 나열식이 아닌 핵심적 원인을 명확히 식별한 후 대응하는 방안이 시급하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jhjang8373@inoch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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