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지심 공인노무사(법무법인 오월)

“아메리카노 먹어도 될까요?”
“사치입니다. 아리수 먹으세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거지방’에서 나누는 대화다. ‘거지방’이란, 자신의 지출을 공유하고 평가받기도 하면서, 절약하는 생활을 만들어가는 오픈채팅이다. 작은 것도 지출할 때마다 보고하고, 몇 만원 단위의 지출은 허락을 구한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소비일 때는 서로 혼을 내기도 한다. 절약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 “우리는 거지입니다”를 채팅 참여자가 다 같이 복창하기도 한다.

재치있는 대화 내용으로 인기를 끌게 된 거지방을 마냥 젊은 세대의 재미있는 문화 정도로 보고 넘겨도 될까? ‘휴거’ ‘개근거지’ 라는 말이 내포하는 차별과 비하는, 거지방하고도 무관하지 않다. 소득이 낮은 사람을 ‘거지’라고 부르는 사회에서 스스로를 ‘거지’라 부르는 이들의 자존감과 긍지는 영향이 없을까?

‘거지방’은 그 자체로 ‘생존’이다. 일상에서 매일 치르는 전투다. 이제 웬만하면 1만원이 넘는 식당 밥을 사 먹기가 부담이다. 겨울 난방비 폭탄의 충격을 넘어 이제 전기세 폭탄이 기다리는 여름이 다가왔다. 공공영역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에서 개인이 살기 위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참고 또 참는 것뿐이다. 그나마 거지방을 통해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라는 안도감과 위안을 받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존재감을 가지는 공동체란 고작 이 정도다.

지방이 존재하는 2023년 현재, 2024년 최저임금을 논의하고 있는 최저임금위원회의 모습이 더욱 기이하게 느끼게 한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사용자위원은 올해도 ‘업종별 차등’을 주장했다. 표결 결과 업종별 차등적용은 일단 부결됐지만 이 과정에서 차등적용 대상으로 특정된 업종들이 너무 상징적이어서 의미를 계속 곱씹게 된다. 이번에 거론된 차등적용 대상은 편의점업, 음식숙박업, 택시업이다. 사용자위원은 이 업종의 소상공인이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고 최저임금 미만율이 높은 업종이라서 차등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일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노동자는 최저임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오로지 ‘상품’으로 규정되고 최저임금은 그 상품의 ‘가격’으로 취급된다. 그들이 말하는 노동력 상품은 물건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존재다. 구체적인 얼굴을 가진 청년, 여성, 이주노동자, 그리고 고령 노동자다.

이 사회에서 노동력 상품의 값어치는, 실제 그 노동이 가진 가치보다는 그 노동을 제공하는 자와의 힘 관계로 결정된다. 편의점업, 음식숙박업, 택시업종에서 특히 최저임금 미만율이 높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사용자가 최저임금법을 지키지 않아도 이를 문제 삼거나 싸우기 어려운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유례없는 물가폭등과 가구 적정 생계비 등을 근거로 2024년 최저임금으로 250만원을 주장하고 있다. 경영계는 현실을 도외시한 과도한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현실을 도외시’한 것은 과연 누구인가. 거지방을 만들어 삶을 쥐어 짜내는 이들을 더욱 쥐어짜는 것은 과연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는 모습일까.

대선 후보들이 너도나도 최저임금 1만원을 이야기하고 가장 보수적인 후보도 2022년 1만원을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번엔 1만원을 넘을 수 있을지”가 관전포인트가 된 올해, 당연한 기본값을 당연하게 말할 수 없는 현실이 참담할 뿐이다.

매 순간 열심히 일했기에 더 값진
당신의 소중한 시간에 대해 약속합니다. 
2023년 최저임금 9천620원
소중한 시간에 일한 당신에게 전합니다. 
당신의 시간에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korea.kr) 블로그에서 감성을 듬뿍 담아 작성한 2023년 최저임금 홍보 문구다. 영혼 없는 감사는 때로는 더 큰 상처와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노동자는 소중한 시간에 대한 감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삶을 개인에게만 맡겨버리지 않고 함께 책임지는 사회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공동체는 “소비를 최대한 줄이자”고 독려하는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들, 집, 의료, 교육 등을 걱정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2023년 여름,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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