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연 변호사 (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만약 첨단산업이나 특정 규모 이하의 사업장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제한하고, 대신에 정부가 최저임금위원회 같은 사회적 기구에서 근로조건 개선방안을 정하는 방안을 투표에 붙인다면? 노동조합이 인기가 없어 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다고 치자. 그런 내용을 법으로 제정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적어도 대한민국헌법 33조가 개정되지 아니하는 한 불가능할 것이다(33항2조, 3조 문제는 별도로 본다).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민주주의에서도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질서와 기본권을 정한 것이 헌법이다.

그런데 집회와 시위에 관해서는 현재 ‘인기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6월 12일부터 7월 3일까지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에 대한 의견을 들려주세요’라면서, 소음 기준 강화·출퇴근시간 금지·심야/새벽시간 금지·주거지역/학교/병원 인근 금지·벌칙 강화 총 다섯 가지의 방안에 대해 찬반투표를 진행 중이다. 23일 오후 6시 기준으로 규제 강화 찬성은 8만2천163명, 반대는 4만1천446명을 기록하고 있다. 찬반 대결 구도를 만들고서 ‘조화로운 방안’을 의견으로 남겨 달라는 공허한 주문도 덧붙였다. 이미 선례도 있다. 정부는 지난 3월 한 달간 TV수신료와 전기요금을 통합 징수하는 방식을 국민제안을 올려 총 5만6천226명이 분리징수에 찬성하고 2천25명이 반대했는데, 이를 토대로 지난 6월 16일 TV수신료를 분리징수하는 방송법 시행령을 입법예고 했다.

‘인기투표’에 불과한 대통령실 국민제안의 문제는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 규제를 찬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국민 다수가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국민제안’으로 그것이 다수의 여론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오만이다. 더구나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건설노조의 1박2일 노숙집회에 대해 지난달 23일 “불법집회에 경찰권 발동을 포기한 결과”라며 “공공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질타했다. 이어 같은달 30일 윤희근 경찰청장은 “야간문화제를 명목으로 불법집회를 강행하거나 집단 노숙형태로 불법집회를 이어가 시민 불편을 초래하면 해산조치 하겠다”고 선포했다. 그렇게 법률적으로 결론이 나와 있다면 찬반은 왜 조사한단 말인가?

사실은 그들도 답이 없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는 ‘집회’에 관한 정의가 없다. 대법원은 ‘공동의 의견을 형성해서 대외적으로 표명할 목적 아래’ 모이면 집회라고 본다(2008도3014). 그런데 문제는 옥외에서 여는 기자회견도 이런 정의에 정확히 해당된다는 점이다. 법원은 옥외집회에 대한 사전신고제의 취지를 감안해 일반 시민과의 ‘이익충돌의 예방 필요성’을 기준으로 집회와 기자회견을 구분하고는 있으나, 이 역시 소음이나 통행장애 발생 여부를 소급적으로 따진다는 측면에서 불명확하다. 분명한 것은 기자회견이라고 결코 피켓을 사용하거나 구호 제창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평화적인 집회·시위, 기자회견, 문화제를 해산하려고 할 때 우리는 관할 경찰서 경비과장이나 정보외사과장에게 분명히 물어야 한다. 1) 기자회견이나 문화제인 경우, 이 행사를 옥외집회로 보는 근거가 무엇이냐. 의견 표명 활동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이냐. 2) 평화로운 집회·시위의 경우에는, 이 집회로 인해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초래된 것이 무엇인가. 지금 소음이나 자동차 교통이나 인도 통행에 불편을 겪고 있는 시민들이 있는가. 3) 만약 현행범 체포를 하려고 한다면 혐의가 집시법 위반이냐 도로교통법 위반이냐, 도로교통법 68조(교통에 방해되는 방법으로 눕거나 앉거나 서 있는 행위) 위반이면 내 성명과 주거가 이러이러한데 현행범 체포 요건이 성립하는가. 4) 지금 법원 앞이라면 법관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무엇이냐, 이 사건 판사가 누구고 지금 청사 안에 있는지 당신이 알 수 있냐. 5) 지금 투입되는 기동대가 어느 청 제대 몇 소대 누구냐. 물어보고, 대화 당사자가 분명히 녹음해 둬야 한다. 녹음 중임을 알릴 의무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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