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프로축구 울산 현대 소속이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박용우 선수가 징계를 받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인종차별과 관련한 징계다. 팀 동료인 이명재, 이규성도 1경기 출장정지와 제재금 1천500만원이 각각 부과됐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회는 아울러 팀 매니저의 행위와 선수단 관리책임을 물어 울산 현대 구단에도 제재금 3천만원의 징계를 부과했다. 해당 SNS 대화에는 참여했으나 인종차별적 언급을 하지 않은 정승현 선수는 징계 대상에서 제외됐다.

1983년 K리그 출범 이후 인종차별과 관련해 사상 최초의 징계다. 의미가 있다. 그들의 대화를 잠깐 복기해 보자. 그들은 SNS 대화 도중, 먼저 이규성이 이명재에게 “동남아 쿼터 든든하다”고 적었다. 이에 정승현은 “기가 막히네”라고 짤막하게 답을 남겼는데, 이후 이명재가 “니 때문이야 아시아쿼터”라고 답글을 썼다. 여기에 박용우가 “사살락 폼 미쳤다”라고 태국 선수의 실명을 언급했다. 여기에 팀 매니저가 가담해 “사살락 슈퍼태킁(슈퍼태클)”이라고 썼다.

아시아 최고 축구선수에 대한 편견·혐오

우선 태국 선수 사살락을 알아 보자. 1996년 부리람 출생으로 현재 27세, 축구 선수로서는 절정의 나이다. 일찌감치 태국의 유소년 유망주로 발탁돼 방콕 수라삭몬트리 스쿨에서 성장했다. 방콕 유나이티드와 부리람 유나이티드를 거쳐 전북 현대에서 활약하였다. 지금은 고국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고향이자 태국 축구의 강자인 부리람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다.

부리람은 최근 몇 해 사이에 태국 리그를 선도하는 구단으로 리그 최다 우승, 태국 FA컵 최다 우승, 태국 리그컵 최다 우승 등을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들은 대체로 2015년을 전후로 작성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 선수 중에 고슬기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유준수가 2018년에, 그리고 2020년에는 포항 스틸러스의 정재용이 태국 리그 사상 아시아 선수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부리람으로 떠난 적 있다.

2021년 사살락은 전북 현대로 와서 세 경기를 뛰고 돌아갔다. 포지션 경쟁과 피지컬에서 밀려 더 많은 경기를 뛰지는 못했지만 수준급의 실력은 물론 팀 분위기에 빠르게 적응하려는 밝은 성격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태국 축구와 한국 K리그가, 그들과 우리가, 사살락과 한국 선수들이 서로 연관이 있고 그래서 인연도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박지성과 손흥민에 의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토트넘이 국내에서는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는데, 따지고 보면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구단들이 서로 섞여서 만들어 가는 축구장 풍경이 더 다양하다.

그런데 인종차별 행동이 터진 것이다. 사살락 선수의 피부색을 빚대어 국내 선수들이(그리고 팀매니저까지) SNS에서 웃고 떠드는 것은, 사적 공간의 사적 대화 차원을 넘어선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동남아시아와 그 지역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깔려 있다. 열정적인 응원문화만큼은 아시아 최고 수준인 태국과 그 선수들에 대해 한국 선수들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편견과 혐오가 어느 순간 인종차별의 언어로 튀어나온 것이다.

한국 스포츠계 대응, 성숙했지만 여전히 부족

일단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징계를 내렸다는 사실 자체는 중요하다. 예전에는 주의나 경고였고 구단에서도 ‘말 실수’ 정도로 넘어갔다. 2013년 포항 스틸러스의 노병준 선수는 베이징 궈안과의 AFC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앞두고, 해당 팀 소속 카누테를 겨냥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일 경기 뛰다가 카누테 한번 물어 버릴까?”라는 글을 올렸다. 당시, 리버풀에서 뛰던 수아레즈가 첼시와의 경기에서 상대 수비수의 오른팔을 물어뜯은 것을 활용한 글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노병준은 “씨껌해서 별맛 없을 듯한데”라고 썼다. 순간, 축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팬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노병준은 인종차별 논란에 기름을 퍼부었다. “웃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덤비면…”이라고 썼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다음에야 구단과 노병준은 공식 사과문을 게시했다.

그게 전부였다. 사과라도 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음에도 일부 선수들은 여전히 인종차별에 무감각하다. 그때, 10년 전에, 2013년에 강한 징계를 했더라면 스포츠 현장에 만연한 인종차별은 훨씬 더 감소했을 것이다. 비슷한 사건이 같은 해에 또 있었다. 2013년 프로야구 한화이글스의 김태균 선수가 인종차별 발언을 했다. 이때도 흐지부지 넘어갔다. 프로야구를 관할하는 KBO의 당시 홍보 책임자는 “선수들이 농담이라도 그런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농담’을 가지고 징계를 하기도 그렇고, 선수 본인이 실수했다고 인정했으니 따로 선수나 팀에 경고를 하거나 재발 방지 교육을 할 계획도 없다고 했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 의미 있는 변화도 있었다. 무엇보다 팬들의 감수성이 달라졌고 언론의 비판적인 시선도 있었다. 연맹이나 구단 또한 기본적인 교육 정도는 실시하고 있다. 그렇기는 해도 여전히 과제가 더 많다. 연맹과 구단과 선수들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공통적인 정서를 외면한 채 그저 한두 선수의 ‘말 실수’ 정도로 축소하려는 상황이 문제다. K리그 규정에 따르면 인종차별적 언동을 한 선수는 최대 10경기 이상의 출장정지와 1천만원 이상의 제재금 징계까지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출장정지 1경기와 제재금 1천500만원이 내려졌다. 사안의 심각성에 비하면 경징계다.

엄정한 징계, 그리고 캠페인·교육

사실에 부합하는 징계와 더불어 더 중요한 것은 캠페인과 교육이다. 2021년 포항 스틸러스는 인종차별과 혐오범죄에 반대하는 글로벌 캠페인 ‘리브투게더(LiveTogether)’에 참여했다. 이런 일이 더 많이,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전개돼야 한다. 축구는 기본적으로 산업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이제 그 산업도시에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들이 함께 살고 있다. 그러니 그들의 문화적 배경과 이주의 과정을 왜곡하지 않는 섬세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각 프로스포츠 연맹은 시즌 개막 직전에 ‘신인 선수’를 위한 교육을 진행한다. 경기와 대회 규정, 언론 대응, 금융자산 관리 특강 등과 더불어 윤리 교육도 진행하는데 일회적이다. 도핑이나 승부조작에 대한 교육 중심인데 여기에 스포츠 인권이나 인종차별이 포함돼야 한다. 그것도 ‘실수하지 말라’는 경고와 주의만이 아니라, 스포츠 인권과 스포츠의 새로운 사회적 가치에 대해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 그 속에 인종차별 금지가 내재돼 있다.

이렇게 당부하는 중인지만, 그러나 한편으로 답답하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클린스만 감독은 논란의 핵심이 된 박용우의 대표팀 선발과 관련해 “선수 이전에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선수들이 도움을 필요할 때 항상 제가 가장 앞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클린스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특히 어리고 젊은 선수들은 더 많은 실수를 한다. 지도자로서 이 선수들이 실수할 때 조언을 통해 성장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글쎄, 박용우 선수는 29살이고 팀의 부주장이다. 아직 한국 선수 파악이 안 된 것일까. 아니, 그보다는 스포츠인권이 발달한 독일과 미국에서 활동한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나는 클린스만 감독이 박용우 선수를 발탁하지 않거나, 발탁했더라도 출전시키지 말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팀의 감독으로서 박용우 선수의 선발과 기용은 전적으로 그의 권한이며 또한 경기 내적으로 이유 있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젊은 선수의 실수’라거나 ‘조언을 통해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는 발언은 의아하다. 클린스만 감독이 박용우 선수를 대놓고 비난하거나 짜증 내라는 게 아니다. 스포츠 인권이 발달한 독일 출신의 거장답게, 카타르 월드컵 기술연구그룹 리더답게, 인종차별에 대한 엄격하고도 정확한 가치와 방침을 제시해야 했다. 그 점이 이 사안의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스포츠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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