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사용자 찾기 어렵고, 단체교섭하기도 어려웠던 특수고용직·플랫폼 영역의 노사관계는 최근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원청 대기업의 사용자 회피와 특수고용 노동자의 진짜 사장 찾기 ‘숨바꼭질’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플랫폼 업체는 얼굴을 숨기지 않고 노사관계 전면에 등장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자성을 둘러싼 긴 싸움 끝에 특수고용직 노사관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연 것은 택배·대리기사다. 택배노조 전신인 택배연대노조는 2017년 8월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하고 같은해 11월 교부받았다. 대리운전노조는 대구지역대리운전노조 설립신고증을 전국 단위로 변경하는 노조조직변경을 추진하다 반려당하고, 2020년 7월에야 신고증을 받았다.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의 노조활동이 합법적인 공간에서 본격화 됐다.

합법 노조는 있는데
|합법 사용자가 없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일찌감치 설립신고증을 받은 택배노조는 여전히 노사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택배 대기업으로부터 물량을 받아 처리하는 대리점주와 교섭은 하지만 원청과 대화가 없다. 택배노조는 설립신고증을 받은 직후인 2017년 11월13일 “진짜 사장 찾기 대장정”을 선언하며 택배 원청과의 교섭으로 택배노동자 고용안정·처우를 개선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2020년 3월 단체교섭을 CJ대한통운에 정식으로 요구했지만 다음달 교섭 거부 통보를 받았다. 이후 CJ대한통운은 ‘사용자 회피 대장정’에 나섰다. 2021년 1월 중앙노동위원회가 단체교섭 거부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택배노조 구제신청을 받아들이자 CJ대한통운은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2년여 끝에 지난 1월 서울행정법원은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없더라도 원청에 단체교섭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며 중노위·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같은달 CJ대한통운은 항소했다. 택배노조는 항소했더라도 대화는 시작하자고 원청에 요구했다. 양측이 만났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는다.

대리운전 시장은 모바일 대리운전기사 호출서비스를 운영하는 플랫폼 업체, 지역에 거점을 두고 소비자와 기사를 연결하는 중계업체 등이 얽히고설켜 굴러간다. 노사관계는 시장의 절대강자인 카카오T대리 앱을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와 대리운전노조가 주축이다. 카카오모빌리티도 노조 설립 초기에는 숨바꼭질을 시도했다. 2016년 대리운전서비스를 처음 출시했을 때는 법외에 있던 대리운전노조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협력했지만, 노조설립신고증이 나오자 얼굴을 바꿔 대화의 문을 닫았다. 대리운전 노동자를 중노위가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하고, 카카오모빌리티를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하는 판정을 하자 행정소송으로 번졌다. 대리운전·택시호출 등 중계 플랫폼으로 문어발식 확장 시도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일고,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되자 2021년 10월에서야 단체교섭 요구를 수용했다. 1년 만인 지난해 10월 단협을 체결했는데 대리요금·수수료·배정 등 핵심 노동조건과 관련한 의제를 미래의제로 남겨뒀다.

플랫폼 노사 단체교섭하는데
노동조건 개선 미미한 까닭은?

플랫폼 노사관계는 일부 사업장에서 교섭 해태 논란이 있지만 단결권이나 단체행동 침해 논란은 적은 편이다. 문제는 사용자 회피가 아니라 단체교섭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소모전이다.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 배달노동자를 주로 조직한 배달플랫폼노조는 단체교섭 타결을 주장하며 지난달 5일 어린이날 1차 파업, 같은달 27일 석가탄신일 2차 파업을 진행했다. 2020년 최초로 단협을 체결하고, 지난해 임금협약, 지난 5일 단협 체결에 합의했다. 같은 업종의 라이더유니온도 지난달 27일 파업을 하며 플랫폼 사용자 압박에 나섰다.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는 “플랫폼노동에서 특징은 사람이 관리자가 아니라 앱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라며 “대면 노사관리가 없어 비인간적인데, 이는 역설적이게도 노조 만들기가 쉽고 단체행동도 비교적 쉽게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플랫폼 노동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단체교섭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있다. 플랫폼 업체를 대략적으로 도식화하면 모기업 아래 프로그램 개발사·운영사·고객서비스사 등이 계열화한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표 참조> 기능별로 법인을 쪼개는 구조가 최근 플랫폼 회사들의 특징이다. 그런데 교섭하는 노사관계는 대체로 운영사만을 대상으로 형성한다.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결정하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기능별 법인은 여러 곳에 쪼개져 있는데, 정작 교섭 사업체는 한 곳이라는 얘기다. 이를테면 배달노동자는 배차 방식 등 프로그램 알고리즘, 수수료 배분 등이 교섭 핵심 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노동조건과 직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만드는 개발사, 수수료를 사실상 결정하는 모기업과는 교섭하지 못한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운영사와 단체교섭을 하더라도 노동자가 만족할 만한 수준을 도출하기 어렵다. 대리운전·배달플랫폼노조 등이 교섭 타결 이후에도 웃음 짓지 못하는 까닭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화섬식품노조 카카오지회·네이버지회의 교섭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네이버지회는 본사뿐만 아니라 네이버클라우드·라인업·라인플러스·앤테크서비스 등 기능별로 분사된 계열사 중 조합원이 있는 법인의 교섭을 모두 맡고 있다. 카카오지회도 카카오뱅크·케이앤웍스 등 크고 작은 계열사에 분회를 두고 단체교섭을 한다. 두 지회가 계열사 전체의 사실상 최저임금을 정하고, 임금인상률·임금체계 등을 협상한다. 계열사 간 자금흐름이나 수익구조 등을 기초로 교섭에 나서면서 계열사 간 노동조건 격차를 해소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1월 한국비정규노동센터·대리운전노조·라이더유니온·웹툰작가노조 등이 모여 출범한 플랫폼노동희망찾기는 두 지회의 계열사 내 교섭, 혹은 초기업교섭을 플랫폼 노동에 적용할 수 있을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기능별로 쪼개진 플랫폼 계열사 전체와 교섭을 하고, 모기업 혹은 원청이 나서야 노동자 노동조건을 실제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흐름은 ‘원청 책임 부여’로 귀결

국제적 흐름은 이미 원청에 사용자의 책임과 의무를 더욱 명확하게 지우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지난해 2월 유럽연합(EU)에 상정된 공급망 실사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이 대표적이다. 선량한 사용자 의무 지침이라 해석되기도 한다. 기업 운영과 기업 지배 구조에서 인권·환경을 고려해 부정적 영향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라는 것이 지침의 취지다. 인권에는 노동기본권도 포함된다. 지침에 따르면 기업은 계열사와 하청 등 공급망 전체에서 노동권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논의 중인 단계지만, 지침을 각 나라가 입법하면 EU 역내·외 기업은 공급망에서 노동 인권과 환경문제 등에서 부정적 영향을 나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8일 발표한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도 EU 지침과 유사한 내용이 담겼다. 2011년 이후 12년 만에 개정된 이번 가이드라인의 가장 큰 특징은 기업에 기후위기 대응에 노력할 것, 공급망 전체에 포함된 사람을 보호할 것 등의 의무를 부여한 점이다.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다국적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는 국제규범으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당연히 이 가이드라인 개정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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