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8개 상장사 주가가 지난 4월24일 검은 월요일의 폭락을 겪었다. 라덕연 호안투자컨설팅 대표 등이 외국계 증권사 SG증권을 통해 주가 조작에 나선 게 발각됐다. 라 대표는 2019년부터 지난 4월까지 통정매매 등으로 서울도시가스, 대성홀딩스 등의 주가를 조종해 7천305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기고 1천944억원을 수수료로 챙겼다.

주가 조작 세력이 금융당국 조사 직전 급하게 매물을 팔면서 8개 회사 주가는 폭락했다. 서울도시가스는 올 들어 주가가 50만원을 웃돌았다가 지난달 말에는 8만원대로 추락했다. SG발 작전세력이 돈을 쓸어 담을 때 단순 투자자 수백여 명은 1조원을 날렸다.

증권사나 투자사에 분노가 폭발하는 이 시점에 매일경제는 뜬금없이 국민연금은 못 믿을 것이니 개인연금에 투자하라고 보도했다. 매경은 6월2일 1면에 는 머리기사를 쓰고, 3면도 모두 털어 <“은퇴 후 월 300만원 따박따박” 2030 개인연금 ETF(상장지수펀드)로 투자>라는 제목의 해설기사도 썼다.

이 기사는 매경이 키움투자자산운용과 어피티와 함께 20~30대 2천778명에게 설문한 결과다. 설문 결과 MZ세대 10명 중 9명이 국민연금 소진 우려 때문에 불안하다고 답했다. 여기까지는 설문 결과를 담았으니 뭐라 할 수 없다.

문제는 매경이 내놓은 답이다. 매경은 “국민연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젊었을 때부터 개인연금에 별도로 가입해 적극 운용해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단언했다. MZ세대가 개인연금에 몰린다는 통계치는 없다. 다만 설문결과 MZ세대는 노후 대비를 위한 최우선 수단으로 ‘개인연금’을 꼽았다. 또 개인연금 운용에서도 원금이 보장되는 예·적금보다는 주식형 상장지수 펀드를 활용해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겠다고 답했다.

이번 주가 조작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선수는 떼돈을 챙기지만 단순 투자자는 막대한 손해를 입는 게 주식 판인데 매경은 오갈 데 없는 MZ세대에게 도박판 같은 이 시장을 권한다.

노후 자산을 공적 연금이 아닌 민간 투자사에 맡기면 SG발 주가 폭락 같은 일은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연금을 운용하면서 생기는 ‘리스크’야 어쩔 수 없다지만, 연금을 운영하는 투자사 임직원 월급은 누가 챙겨주나. 그 돈도 투자자 손에서 나온다. 결국 투자사가 장난치지 않아도 내가 개인연금에 100원을 넣으면 수수료와 관리비용을 빼면 잘해야 85원쯤 받는 게 상식이다. 이런데도 매경은 개인연금만이 살길이라고 장담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31일 사회보장 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보육과 돌봄서비스도 시장 경쟁을 통해 품질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윤 정부의 ‘사회서비스 고도화’ 정책이다.

대통령 발언을 중앙일보는 <보육·돌봄서비스, 경쟁 도입해 품질 높인다>며 다음날 10면에 보도했다. 조선일보도 지난 6월2일자 12면에 <경단녀, 9년 만에 다시 늘어>라는 기사에서 대통령에게 힘을 실었다. 경쟁하면 품질이 향상된다는 망상은 대체 어디에서 나왔나. 사회서비스는 수치로 품질을 측정하기도 어렵지만, 설사 품질이 향상돼도 돌봄노동자의 저임금과 희생 위에서만 가능하다.

값싼 이주 가사도우미를 들여오겠다는 윤석열 정부는 노르웨이가 내년 1월부터 ‘오페어(Au pair)’ 비자 발급을 중단키로 한 이유를 곱씹었으면 한다. ‘오페어’는 1960년대부터 선진국 문화를 경험하고 언어를 배우고 싶은 가난한 나라 청년을 데려와 적은 임금을 주고 가사노동을 맡기는 제도다. 프랑스, 노르웨이 등 선진국이 저임금 국가 여성을 육아보조로 고용했다. 노르웨이노총은 정부에 이주노동자를 착취하는 오페어 폐지를 요구했고, 정부도 반인권, 비윤리적 오페어 폐지를 발표했다. 차별도 차별이지만, 저임금 이주 가사도우미 공급이 출생률 상승으로 연결되지도 않았다.(한국일보 5월30일 17면 <“값싼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노동 착취”… 노르웨이 인권 택했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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