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위험성 추정 절차를 간소화한 고용노동부의 위험성평가 제도 개정으로 노동자 참여 기회가 축소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개정 이전 수준의 위험성평가가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노조가 사업주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위험성평가 작동 노력 없이 추정 절차 없애”

한국노총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위험성평가 노동자 참여 활성화와 사업장 현장정착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정부는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현장에 구축·안착하겠다는 목표로 기존의 위험성평가 제도를 손질했다.

사업장의 위험성평가 부담을 낮추기 위해 제도 운용 과정 중 하나인 위험성 추정의 절차를 생략한 것이 핵심이다. 위험성의 빈도와 강도를 고려해 위험 정도를 계량화하는 위험성 추정 과정을 없애면 제도의 현장 안착이 쉬워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고시)을 지난달 22일부터 시행했다.

발제를 맡은 정진우 서울과기대 교수(안전공학)는 위험성평가 핵심인 추정의 절차가 빠지면서 제도 자체가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있으나 마나 한 제도가 됐다는 의미다. 그는 “정부는 위험성평가 저조가 제도 복잡성 때문이라고 분석했는데 이는 무능과 직무태만을 덮으려는 무책임한 진단”이라며 “그러면 다른 나라도 제도가 어려워서 이 제도를 운용하지 못한다는 거냐”고 반문했다. 정부가 위험성평가가 작동하도록 여태껏 대책을 펴지도 않아 왔다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위험성평가 기준 하향화로 실시 비율은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범이 돼야 할 대기업의 위험성평가 수준까지 하향평준화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며 “위험성을 빈도와 강도 조합으로 보는 것은 국제기준과 선진국 기준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보편적 기준이자 상식”이라고 강조했다. 정말로 제도가 어려워 중소기업이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소규모 사업장에 걸맞은 안전활동기법을 개발·보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제시했다.

노동자의 참여를 가장 필요로 하는 추정절차가 생략되면서 노동자의 제도 참여 길이 좁아졌다고도 주장했다. 위험성평가를 통한 안전확보 실효성이 줄어든 상황에서 노동자 참여를 강조하면 되레 사업주가 자기 책임을 회피하는 빌미로 작동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노조는 고시 개정으로 인해 위험성평가가 하향화되는 일이 없도록 견제해야 한다”며 “위험성평가가 본래 취지에 맞게 실시되도록 현장에서 독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동자 참여 강조’ 사업주 책임 회피 변명 될 수도”

노동계의 입장도 정 교수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강훈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선임차장은 토론에서 “산재 대부분이 발생하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위험성평가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제도 수준을 낮출 게 아니라, 지원과 혜택 다양화 등이 필요한데 이번 대책에는 보이지 않는다”며 “근로자의 참여를 확대했다지만 권한 등은 부여되지 않은 탓에 산재사고 책임만 노동자에게 가중하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평가했다.

정부측은 위험성평가가 소규모 사업장에 안착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항변했다. 김인성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실장은 “소규모 사업장에서 중대재해 대부분이 발생하지만 안전보건 관련 인력·예산을 투입할 여력이 부족하다고 한다”며 “그러나 해당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과 실제 발생한 재해는 이미 널리 알려진 경우가 많아서 사고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고위험요인을 집중적으로 파악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공단은 사고사망재해를 분석해 재해 당시 실시한 작업과 재해를 직접 발생시킨 요인을 파악해 소규모 사업장의 위험성평가에 활용하도록 기술지원을 하고 있다. 위험성평가 지원시스템(kras.kosha.or.kr)에 최근 6년간 발생한 재해사례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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