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이 오고 있다. 냉방장치 없이 무더위에 일하는 노동자의 고통도 어느 때보다 빨리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쿠팡 물류센터처럼 강도 높은 심야 노동이 이뤄지는 현장이 위험하다. 쿠팡 물류센터 ‘폭염 산재’의 구조적 문제를 조명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글을 4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송지훈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의원 원장)
▲ 송지훈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의원 원장)

지난 2021년 초 쿠팡물류센터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졌다, 사망한 노동자들은 정황상 과로사가 의심됐다. 숨진 이들은 대부분 야간노동, 고강도 육체노동을 했다. 쿠팡 물류센터가 여름에는 찜통이고 겨울엔 냉골이라는 증언이 쏟아졌다. 야간노동, 고강도 육체노동, 저온 및 고온 모두 뇌심혈관계 질환의 잘 알려진 위험인자다. 도대체 어떤 작업환경이길래 이처럼 사망자가 속출하는 것일까. 당시 필자는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김형렬 교수 연구팀의 소속으로 쿠팡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 연구를 진행했다. 당시 360여명의 노동자들이 공유해준 경험을 2년이 지난 지금 다시 곱씹어 본다.

당시 연구팀은 고용형태, 근무형태, 노동강도, 작업환경, 근로시간, 일반적 건강문제, 정신건강상태 등을 조사했다. 연구 결과 대다수 노동자들이 상당한 수준의 노동강도를 호소하고 있었다. 과거 다른 연구에서 조사한 건설업 형틀목수의 평균 노동강도보다 상당히 높은 수치였다. 비교하자면 건설업 본층 알폼 종사자의 노동강도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73.2%가 빨리 걷는 수준의 힘듦을 호소하고 있었고, 28.4%가 100미터 달리기 수준의 힘듦를 호소했다. 근무형태, 계약관계, 센터규모에 따른 차이는 없었다. 모두가 상당한 강도의 노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전체 응답자의 47.7%가 근무시간 대부분을 매우 빠른 속도로 일한다고 응답했다. 2명 중 1명(50.8%)은 작업 후 육체적으로 항상 지친다고 응답했다. 또 68.3%가 식사시간을 포함한 휴식시간이 1시간 이하라고 답했다. 이마저도 반수 이상이 휴게실에서 쉬지 못하며 근무 공간, 복도 등에서 쉰다고 응답했다. 적절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고강도 노동은 뇌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정신건강 상태도 심각했다. 전 국민 평균과 대비해 우울감 및 자살 사고 경험과 수면문제를 앓고 있는 노동자의 비율이 2배 이상 높았다. 고강도 노동은 수면장애와 우울감, 나아가 자살 사고의 위험을 높였다.

근무환경의 문제점으로 더위(74.4%), 부족한 휴게 공간(61.0%), 장시간 노동(58.4%), 추위(57.6%), 먼지(50.6%), 중량물 취급(50.3%)을 꼽았다. 실내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응답자의 4명 중 3명이 더위를 문제삼은 셈이다. 이는 주목할 만한 지점인데, 일정 수준 이상의 고열에 노출되는 경우 심장에 추가적인 부하를 가져와 무리를 주게 되고, 특히 여름철 폭염에서 무리한 일을 계속하면 열경련, 열탈진 등의 열성 질환뿐만 아니라 뇌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이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 참여자의 근속연수 중윗값은 13개월이었고, 쿠팡이 이들의 유일한 직장이라고 응답한 노동자의 비율은 69.2%다. 또 77.2%는 계속 근무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에게 쿠팡물류센터는 생계를 이어나가는 소중한 삶의 터전인 셈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일용직 혹은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기준을 알 수 없는 평가체계로 계약 연장 여부가 결정된다. 스스로를 혹사시킬 수밖에 없는데, 끊임없는 과로를 조장하는 구조다.

연구 결과를 발표하자 연구대상자가 적다는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본 연구는 당시 특별한 펀딩 없이 문제에 공감하는 연구자들의 자발적 지원으로 이뤄졌고, 쿠팡 노동자의 대다수가 일용직·계약직이기 때문에 연구대상자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어려웠다. 개인적인 아쉬움은 있지만, 당시의 상황에서 쿠팡의 노동실태를 확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보다 연구대상자가 더 늘어난다고 근로환경에 산적한 위험요인이 더 잘보이는 것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의 노동자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당시 여론이 악화되자 쿠팡은 약 2천300억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해 ‘쿠팡케어’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건강증진사업을 도입해 뇌심혈관계 질환 예방 노력을 기울인다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노동환경이다. 골병 위험이 있는 노동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골병든 노동자를 상대로 건강증진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조사 응답자 70% 이상이 적절한 휴게시간과 휴게공간 보장, 냉난방 확충을 개선 방안으로 꼽았다. 쿠팡은 이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근로계약 조건을 개선하고, UPH(시간당 물량 처리량)를 없앴다고 하지만, 평가체계는 아직도 미궁이다. 합리적인 평가체계를 구축하고 노동자에게 공개해야 과로사 행렬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세상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2년 전에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코로나19의 공중보건 비상사태가 종식됐으며, 챗GPT 등장과 함께 AI시대 기대감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쿠팡의 노동환경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본 연구결과가 현재는 적용되지 않고, 그저 과거의 유산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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