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들 중에는 법률조항들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판례해석이 너무 제한적이어서 실제 현실엔 적용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비정규직의 근로조건 격차를 해소하는 법률적 근거가 될 수 있는 노조법상의 '일반적 구속력'을 살펴봐도 그렇다.

같은 사업장에서 똑같은 업무를 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과 그 외 근로조건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중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사용자쪽은 인건비 절감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의 효율화 차원에서 정규직을 우대하고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으나, 대부분 정규직으로 구성돼 있는 노조도 비정규직의 근로조건 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이와 관련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 35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일반적 구속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노조법 제 35조 (일반적 구속력)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상시 사용되는 동종의 근로자 반 수 이상이 하나의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게 된 때에는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 사용되는 다른 동종의 근로자에 대하여도 당해 단체협약이 적용된다.

대강 살펴보면 '사업장 단위의 효력확장 제도'라고도 불리는 이 조항을 이용해 비정규직을 보호할 수 있겠다하는 생각이 들지만, 제도의 요건이나 내용이 불분명한 점이 많아 현실적으로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근거로 활발히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효력확장 제도의 요건은 △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 △ 상시 사용되는 △ 동종의 근로자 △반수 이상이 하나의 단체협약을 적용받는 때이다.

이중 해석이 분분한 것은 '상시사용'과 '동종의 근로자' 개념이다. 상시사용의 개념은 근로계약상의 형식적인 형태와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상시 사용되는 자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용직 근로자의 경우는 상시사용되는 것으로 봐야 하나, 계절적 근로자 등은 상시사용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또한 개별 근로자가 실질적으로 계속 사용되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근로자가 행하는 업무 자체의 계속성을 기준으로 상시사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상시사용의 개념보다 더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동종의 근로자' 개념이다. 판례는 '동종의 근로자'에 대해 "당해 단체협약 규정에 의해 그 협약의 적용이 예상되는 자"라고 하면서 "사업장 단위로 체결되는 단체협약의 적용범위가 특정되지 않았거나 협약조항이 모든 직종에 걸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경우에는 직종의 구분 없이 사업장 내의 모든 근로자가 동종의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판례는 단체협약의 효력을 확장하기 위한 요건중 하나인 '동종의 근로자'에 대해 단체협약 적용여부에 따라 판단하는 모순된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동종의 근로자'는 객관적 관점에서 근로의 성질, 내용, 형태, 인사체계 등을 비교해 판단해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일반적 구속력'이 적용받는데는 특별한 절차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요건이 충족되는 즉시 미조직 노동자에게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용자가 단협에 미달하는 임금을 지급할 경우, 미조직 노동자는 차액에 대해 재판상 이행청구를 할 수도 있게 된다.

■ 체신노조의 상시위탁집배원에 대한 별도의 단협
'일반적 구속력'과 관련해 '동종의 근로자' 요건에 대한 이견으로 쟁점이 됐던 곳이 체신노조다.
체신부문에는 우정부문의 구조조정으로 지난 98년 6월 기능직공무원 집배원을 감축한 결과, 대체인력인 비정규직 상시위탁집배원이 3,000여명이 존재하고 있다. 상시위탁집배원은 공무원관계법을 적용받는 정규직 집배원과 달리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에 의해 당해 우체국장과의 고용계약에 의해 채용하는 비정규직인 임시계약직(1년 단위 계약)으로서 노동관계법을 적용받는다. 상시위탁집배원 일부는 지난해 2000년 상시위탁집배원들의 모임을 구성해 '일반적 구속력'에 의거해 자신들의 근로계약보다 유리한 기존 체신단협을 적용해 임금을 소급지급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체신노조의 질의에 대해 노동부는 99년 6월24일 체결한 기존 체신단협은 기능직 공무원과 별정우체국집배원을 대상으로 체결해 적용범위가 특정돼 있으므로, 2001년 5월 체신노조에 가입한 상시위탁집배원들에게 기존 단협을 적용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또한 사용자는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관해 채용법령, 채용방법 및 절차, 근로자의 작업내용·형태, 직종, 숙련정도, 전문성, 근로조건 적용법령 등 사회적 합리성이 인정되는 기준에 따라 고용계약을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상시위탁집배원모임은 체신노조 규약상 '체신사업 또는 체신사업과 관련되는 사업장에 종사하는 자로서 경영자를 대표한다고 인정되는 자를 제외한 전원'을 조합원 자격으로 규정하고 있어 비정규직도 당연히 조합원 자격이 인정된다며 '일반적 구속력'을 적용할 것으로 요구했다. 체신노조는 당시 규약상 '소정의 절차'를 거쳐야 노조에 가입된다는 조항을 들어 상시위탁집배원에 대한 단협의 확대적용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또한 공무원 신분인 정규직과 상시위탁집배원에 대한 관계법령이 달라 이들에 대한 근로조건을 달리 정하는 것을 합리적 차별로 노동관계법 위반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일반적 구속력' 적용여부를 둘러싸고 공방을 벌이던 체신노조와 상시위탁집배원모임쪽은 체신노조가 지난해 4월 대의원대회에서 상시위탁집배원들을 일괄적으로 노조에 가입시키기로 결의해 논의가 휴면기를 맞았다. 그러나 단협의 확대적용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이던 체신노조는 상시위탁집배원에 대한 별도의 단협을 체결해 '일반적 구속력' 적용을 주장하던 상시위탁집배원들로부터 반발을 사기도 했다.

최근 '일반적 구속력'을 주장하던 상시위탁집배원모임쪽 대표자들에 대해 정규직 발령이 나면서 이 논의는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체신비정규직대책위로 활동하던 이들은 지역 대표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활동을 중단하자, 전국집배원노동자협의회(집노협)로 조직을 변경,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서광주우체국 앞에서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집노협쪽은 '일반적 구속력'과 관련해선 "상시위탁집배원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판단으로 법적투쟁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집노협 박석기 의장은 "아직 상시위탁집배원들 사이에 '일반적 구속력'과 관련해 이해와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 일반적 구속력 적용위해 정규직노조의 의지 중요
결국 비정규직에 대해 단협을 확대적용하는 문제는 현행법상 보장돼 있다고 볼 수 있으나, 판례에서 '동종근로자'의 해석을 좁게 하고 있어 원칙적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단협의 확대적용을 원칙적으로 막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도 '일반적 구속력'에 대한 규정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판례에서 동종근로자의 개념을 근로의 종류로 파악하고 있어 비정규직에 대한 단협의 확대적용을 보장하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단협의 확대적용이 법적으로 보장돼 있으므로,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 문제해결에 대한 의지를 갖고 대응할 경우 이 문제는 쉽게 풀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부산대 이승욱 교수(법학과)는 "한 사업장내 다수파를 차지하는 근로자 집단이 소수집단 근로자에 대해 합리적 근거없이 차별적 대우를 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할 경우 '공정대표의무 위반'이라는 학설이 있다"며 비정규직에 대한 별도의 단협체결에 대한 법률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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