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인천국제공항에 있는 한 면세점에서 일하는 ㄱ씨는 2층에서 근무한다. 그런데 2층 화장실을 두고 지하층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2층 화장실은 고객용이라는 이유에서다. 면세점은 입점업체에 “고객용 화장실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ㄱ씨는 “고객 화장실을 사용하지 말라고 아침 미팅 때 상급자에게 이야기를 듣거나 매장 포스기에 공지사항으로 올라오기도 한다”며 “실명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압박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백화점·면세점 판매노동자의 고객용 화장실 사용을 자제·금지하는 행위는 위법행위라는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에도 노동자 10명 중 3명 가까이는 여전히 고객용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는 지난 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지난 2월1~12일까지 백화점·면세점 판매노동자 3천456명(무노조 1천180명, 유노조 2천276명)을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했다. 노조 의뢰를 받아 조사를 실시한 일하는시민연구소는 응답 결과 중 유효표본 2천472명을 분석했다.

조사결과 노동자 34.7%는 고객용 화장실 사용자제를 회사에게 권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 금지를 통보받은 노동자도 25.5%나 됐다. 6.9%는 고객용 화장실을 이용했다가 불이익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 고객용 화장실을 아무런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다고 답한 노동자는 48.7%에 불과했다.

“직원용 화장실이 충분히 마련돼 있다”거나 “직원용 화장실이 매장과 가까운 곳에 있다”고 고 답한 노동자는 각각 절반(43.1%, 41.0%)도 되지 않았다.

노동부는 2019년 7월 지침을 통해 “고객전용 화장실 사용금지 조치는 관련 법령 위반”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해 4월 롯데·현대·신세계 등 12개 백화점·면세점 노동자들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는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다. 그러자 노동부는 행정안전부 행정해석에 근거해 지침을 내렸다. 행안부는 “공중화장실법에 따라 제공하는 화장실은 누구나 이용 가능해야 한다”고 답했다. 백화점이나 면세점에 있는 고객화장실을 공중화장실로 본 것이다.

노동부가 지침을 발표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이 고객용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는 이날 토론회에서 “백화점과 면세점이 법을 준수하도록 근로감독이나 행정지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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