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런 스티븐스 <영국 산업안전보건협회(IOSH)>

중대재해 등 산업재해·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원청 대기업의 안전보건 투자 의지가 중요하다는 영국 안전보건전문가의 주장이 나왔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경청해 예방 대책에 반영하고, 재해예방기관 활동은 산재 발생과 예방의 근본적 원인을 찾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기업살인법 앞서 만든 영국
“노사 함께하는 안전문화 조성도 필요”

앨런 스티븐스(Alan Stevens) 영국 산업안전보건협회(IOSH) 전략기획실장은 최근 영국 현지에서 안전보건공단과 가진 인터뷰에서 “영국은 안전보건을 위해서 입법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해 법률제정을 통해 사업주와 노동자에게 규정을 준수하도록 했지만 안전문화도 (노사가) 함께 조성해 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우리나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은 2007년 영국에서 제정된 기업 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기업살인법)을 참고해 만들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확보 의무에 집중하는 구조이고, 기업살인법은 법인에 주목해 책임을 묻는 것이 조금 다른 점이다. 기업살인법을 담당하는 영국 보건안전청(HSE)은 산업안전보건협회나 안전협의회 등 민간기관과 협조하며 안전보건 교육·안전보건전문가 양성과 같은 산업안전보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1월 내놓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따라 ‘자기규율 예방체계’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위험성평가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앨런 실장은 “한국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과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서 자기규율 예방체계나 위험성평가 등을 강조하는 이유도 (안전문화 조성을 강조하는 영국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처럼 재해예방 정책 수립과 집행이 빠르게 진행되는 국가는 우수한 데이터 구축력을 기반으로 국가의 산업안전보건 시스템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해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축적하고, 이를 기반으로 산재예방 정책을 수립·집행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영국 기업살인법이 법인에 주목하는 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경제적 관점의 접근이 사업주의 (안전보건) 의무이행을 끌어낼 수 있다”며 “사업주는 효율성과 비용에 민감하기 때문에 안전관리 활동을 근거로 보험료 절감과 같은 경제적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커피 유통산업을 예로 들며 원청의 안전보건 활동 중요성도 강조했다. 앨런 실장은 “최근 재화나 서비스가 윤리적으로 생산된 것인지에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고 여기(윤리적 생산)에는 노동자의 안전보건도 포함된다”며 “사업주들이 윤리적 생산방식에 자본을 투자하고 노동자 안전보건을 증진한다면, 공급망에 속해 있는 중소규모 기업 노동자의 안전보건 증진과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고 기대했다. 안전한 산업현장을 위해 사업주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점은 만국 공통이다. 앨런 실장은 “사업주에게 안전보건은 ‘비용’이 아닌 투자 유치 등을 가능케 하는 ‘가치 창출의 매개’라고 인식하게 해야 한다”며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은 사업주의 수익과 연결되고, 한국의 젊고 영리한 최고의 미래 노동력은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환경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기업경쟁력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면 인재를 등용하고 유지해야 하고, 안전한 일터가 인재 유지를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얘기다.

“감독자와 노동자 간 일상적 협업 이뤄져야”

안전문화를 조성·확산하는 데 사업주와 노동자의 협업이 있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노동자와 관리자가 스스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시합 전 축구선수와 감독이 전략을 논의하듯 산업현장에서 감독자와 작업자 간에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날의 작업에 관해 이야기하는 TBM(Tool Box Meeting, 안전점검회의)은 산업현장의 안전을 증진할 것이다”고 거듭 설명했다.

앨런 실장은 안전보건공단에 대해서는 “형사 콜롬보와 같이 활동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TV 프로그램 형사 콜롬보에서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주인공 콜롬보는 다양한 질문을 하면서 범인을 추적해 나간다"며 “공단이나 산업안전보건 분야에 있는 기관·조직의 역할은 이 형사와 같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려면 계속 질문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산재 발생과 예방의 원인을 찾는 데 중점을 두자는 의견으로 읽힌다.

1945년 설립된 IOSH는 산업안전보건 전문가와 종사자 간의 교류를 위해 설립된 비영리 단체다. 200여명 직원과 130개 국가 5만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교육·훈련, 간행물 발간 등을 통해 사업장에서의 산업안전보건 활동을 유지·촉진시키는 데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국제노동기구(ILO)는 직업안전보건협약(155호)·직업안전보건체계증진협약(187호)을 기본협약으로 채택했다. IOSH는 기본협약 채택을 지지하고자 ILO와 협업해 산업안전보건 증진 사업에 참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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