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2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손해배상 소송 파기환송심 첫 재판 직후 대리인인 장석우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와 진행 상황을 논의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대법원이 국가 책임을 인정했지만, 삶은 2009년 여름에 멈춰있습니다. 하루빨리 기억을 잊고 싶은데 (국가에) 멱살이 잡힌 것처럼 고통스럽습니다. 해고되는 동료들과 어깨를 함께 했다는 이유로 죄를 뒤집어쓴 것 같습니다.”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당시 경찰 진압에 저항하다가 손해배상이 청구된 쌍용차 노동자 A씨는 지난 2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첫 변론기일 직후 <매일노동뉴스>에 이같이 말문을 열었다. 재판에 참석한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 13명은 “빨리 소송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노동자 정당방위’ 판결에 정부 “할 말 없다”

서울고법 민사 38-2부(부장판사 민지현·정영근·박순영)는 이날 대한민국이 금속노조와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 36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파기환송심 1차 변론기일을 열었다. 지난해 11월30일 대법원 판결 이후 6개월여 만이다. 대법원은 경찰의 과잉진압에 저항한 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파기환송심 쟁점은 ‘헬기 파손’과 ‘기중기 수리’ 부분이다. 법원이 인정한 전체 손해액 약 11억원 중 헬기(2심 인정 5억2천만원)와 기중기 수리비(5억9천만원)가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심리만 6년5개월이 걸리며 지연이자가 붙어 배상액 규모는 30억여원으로 불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09년 8월 경찰의 헬기 진압이 적법한 범위를 벗어났다면 이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경찰장비가 손상됐더라도 정당방위라고 봤다. ‘기중기 손상’ 부분도 노동자들 책임 비율을 80%로 인정한 항소심 판결이 과도하다고 판단했다.

이날 재판에서도 헬기 진압의 적법성과 책임 비율을 두고 정부와 노조가 공방했다. 노동자들을 대리한 장석우 변호사(금속노조)는 “이 사건 본질은 정리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국가폭력이며, 이에 따른 국가의 전략적 봉쇄 소송에 해당한다”며 “위험한 진압 작전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헬기와 기중기 손상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측 대리인은 서면을 통해 조합원들의 불법점거가 진압 원인이 됐으므로 노동자들의 헬기와 기중기 파손행위는 정당방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대법원 판결 취지가 과도하게 수용돼 노동자들이 과소한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면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소 취하 ‘검토’만, 노조 “기억 소환돼 고통 가중”

정부 주장은 국가기관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2018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경찰 진압이 폭력·과잉진압이라고 봤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이듬해 손배소가 노동 3권을 후퇴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대법원에 냈다. 국회 역시 2021년 이사건 소 취하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지난달 25일에는 야 4당 국회의원 160명이 서울고법 파기환송심 재판부에 손배소 취하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대법원 판결 직후 소 취하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소송을 취하하지 않은 상태다.

이와 관련해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은 “경찰이 인권침해사건을 조사하고 ‘쌍용자동차 사태 백서’까지 발간해 뒤늦게라도 진실이 밝혀졌다는 안도감이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소를 취하하지 않고 있다”며 “노동자들은 피를 말리는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는 지난 4월16일 윤희근 경찰청장 면담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특히 피해자들은 윤석열 정부의 경찰 진압을 보면서 심적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했다. 김 지부장은 “과거 기억이 다시 소환돼 일부 조합원들은 다시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있다”며 “재판이 계속될수록 당사자들은 끝없이 국가폭력에 노출된다. 현재진행형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날 변론을 종결하고 19일 조정기일을 지정했다. 재판장은 대법원에서 최종 결론이 내려져 조정으로 종결하는 사례가 있다는 점을 들어 양측에 조정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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