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동물 중에 인간만이 자아를 성취하고, 더 나아가 자아를 초월하고자 하는 꿈을 꾼다. 이는 직업(노동)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직업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현대 문명사회에서는 인류 공동체를 위해 공급자 또는 소비자로서 유일한 ‘나’만의 역할이 직업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성장하는 과정부터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모두가 직업인이다. 인간이라면 평생 ‘잡(자아) 디자인’이 필요한 이유다. 40년 경력의 직업전문가가 8회에 걸쳐 잡 디자인을 위한 설계도를 보여준다. <편집자>
 

이연복 협동조합 더나은내일 이사장
▲ 이연복 협동조합 더나은내일 이사장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진다. 이 시간을 늘리거나 줄이고 절약해 다음에 사용할 수는 없으나 하루에 주어진 24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자유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에 주어진 24시간 중 몇 시간이나 자신의 자유의지로 사용하고 있을까.

지구촌 인구가 80억명을 넘었고 올해(140일째인 5월20일) 출생한 자는 5천123만여명, 사망한 자는 2천566만여명(이중 자살 41만여명)으로 1초에 평균 4명이 태어나고 2명이 죽음에 이른다. 이중 누구도 자유의지에 의해 태어나고 죽음(자살 제외)을 맞는 자는 없다.

인류 공동체 사회는 구성원들의 처한 상황에 따라 분업화되고 계층이 형성됐다. 기회를 포착한 소수의 계층이 그렇지 못한 다수의 계층을 감언이설과 겁박으로 지배하면서 지식을 독점하고 신격화하기에 이른다. 이를 대대로 계승하면서 폭정이 이어지고 다른 공동체와의 분쟁과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했다. 이렇게 수백 세기 동안 이어진 전제주의가 정보와 지식이 대중화되면서 민주주의로 전환돼 개인의 자유가 회복됐다.

현대 사회에서 자유와 권리는 인간이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원초적 기본권이라는 것이 보편적 인식이다. 이는 인간은 누구나 같기에 평등해야 한다는 개념이지만, 물질적인 측면뿐 아니라 저마다의 가치관이 달라 평등의 기준조차 설정할 수 없다. 특히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 사회에서 무조건적 평등은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도 있다.

우리의 평등은 “인격 가치의 평등” 즉 남녀노소, 인종, 빈부나 직업의 다름과는 관계없이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자아실현을 넘어 자아 초월의 욕구를 추구하는 행복추구권이 평등해야 한다. 이를 위한 자유와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와 권리를 구분한다면, 자유는 “타인에게 주장하고 요구하는 권리”와 다르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상태”로 “자신에 대한 의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유는 개인, 즉 자신에게 속한 자유로 제한적이지도 한정적이지도 않으며 자유 행위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가 부과되지 않는다. 이를 누구에게도 양도나 위임할 수 없고 타인으로부터 침해받지도 않으며 자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소멸한다. 이는 개인의 자유를 그 개인에 속하거나 사전 동의를 얻었다 하더라도 공동체나 단체, 기관, 타인 등이 대리해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함께하는 공동체 사회에서 각자의 자유와 자유는 서로 부딪히게 돼 서로가 반목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고 자신의 자유 행위로 인해 의무나 책임보다 더 자기 자신에게 미치는 대가는 회피할 수 없다. 결국 자유는 자신이 숨을 쉬고 있는 동안 공동체 사회의 규범을 준수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추구할 수 있는 소중한 것이다. 꼭 밀폐된 공간 속의 산소와 같은 존재인 것처럼.

이런 자유가 오·남용되는 것에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는 자유를 집단이 주장하고 외치는 것이다. 의무나 책임이 부과되지 않는 자유를 집단의 이름으로 주장하고 외치면서 그 집단을 부드러운 전제주의로 만든다. 예를 들면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의 집단적 자유의 외침이다. 집단적 자유의 외침은 그 집단에 속한 개인의 자유가 배제될 수 있다. 이는 다양성을 통해 건전하고 발전적인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 집단이 자기 집단을 중심으로 사회를 양분시키는 우를 범한다. 이러할 경우 사회적으로는 혼란이 야기되고 그들은 집단 뒤에 숨어 버린다.

두 번째는 자유를 저버리는 것이다. 가뭄이 들어도 홍수가 나도 국가(왕)의 책임이고 백성들은 왕의 소유물이었던 전제주의에서의 DNA가 아직도 우리들의 몸속에 남아있는 것이다. 물론 국가가 구성원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잘못 행사한 경우에는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국가에 자신을 의탁하고 자신의 자유 행위에 대해 국가로부터 보상받고자 한다면 민주주의 구성원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는 부모들로부터 시작된다. 자녀를 보육하는 것은 부모의 의무일 뿐 이를 이유로 소유하거나 자유를 대리할 수 없다. 넘어져 보지 않은 사람은 설 수 없고 걸을 수도, 뛸 수도 없다. 평생을 같이 손잡고 뛸 것이라는 과욕을 버리고 자녀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

직업선택의 자유는 어떤 직업에 종사할 것인가 뿐 아니라 그 직업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모두 자유다. 현대 사회에서 이 자유는 능력에 따른 권리이다. 따라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이 어떤 노력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가 자유다. 비록 자유의지에 의해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자신 삶을 윤택하게 하고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 자유의지에 의해 자유를 디자인하라. 당신의 하루가 24시간밖에 안 될 수도 있고 24시간이나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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