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차별이다. 요즘 내가 변호하고 있는 것은 비정규직 차별, 고령자 차별사건이다. 비정규직 차별에 관해서는 20년 넘게 하고 있고, 이에 더해 최근에는 고령자 차별에 관해서도 하고 있다. 차별받는 이가 비정규직과 고령자뿐은 아닌데도 나는 이렇게 해 온 것이다. 남녀 차별에 국적과 종교, 나아가 사회적 신분 등까지 차별을 하지 말라고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것이니 차별 피해자가 찾아와 상담하고 법적 대응을 의뢰하면 변호사로서 그 차별사건들을 맡은 것인데, 어찌된 일인지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고령자를 차별하는 사건들투성이다. 노동사건을 하는 노동변호사라서 그런 것일까. 근로관계 내지 노사관계에서도 나머지 차별이 존재할 텐데 내가 소송을 맡아 진행하는 경우는 없고, 요즘은 비정규직·고령자에 관한 차별을 다투는 사건들뿐이다.

2. 규정해야 차별이다. 유감스럽지만 이 세상은 법에서 ‘차별이다’ 해야 차별이다. 세상은 이렇게 저렇게 사람의 높이를 갈라 다르게 대우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그중 극히 일부만 법은 차별로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규정한 것만 차별로 취급한다. 혹시라도 당신이 이 세상이 사람을 달리 취급하는 걸 차별로 취급한다고 여기고 있다면 세상을 잘못 산 것이라고 나는 말해 줄 수밖에 없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세상은 법에서 ‘차별’이라고 해야 차별로 취급하고 있을 뿐이다. 괜히 이 세상을 높게 보아선 안 된다. 우리는 하늘 위에 고상하게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온갖 오물까지도 쌓인 지상에 서 있을 뿐이다. 수준 높게 세상을 보지 말기 바란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을 차별이라고 규정해 놓고 있는지 이 나라 법을 살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기본권으로 보자면, 자유와 평등을 빼고서 말할 수 없다. 수시로 이 세상은 자유와 평등이고, 시도 때도 없이 이 나라는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었다. 나라와 시대에 따라 그중 하나를 더 내세우고, 특히 요샌 자유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해도 평등권을 기본권 목록에서 제외하는 경우는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법 앞의 평등을 선언하고 있는 11조에서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보듯이 이 세상에서 평등이란 “차별을 받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차별을 받지 않는 기본권이 평등권이다. 이 헌법 규정은 구체적으로 성별·종교·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이 헌법 규정은 성별·종교·사회적 신분 등에 의한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는 것이니 대한민국에서는 성별과 종교, 그리고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은 허용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에서는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해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6조에 균등한 처우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남녀의 성·국적·신앙·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사용자가 근로자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이니 성별·국적·신앙·사회적 신분에 의한 근로조건에서 사용자가 근로자를 차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근로기준법 규정 말고 별도 입법을 통해서 차별을 규정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은 남녀 성차별을,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비정규직 차별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은 고령자 차별을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법으로 차별을 규정하고 있으니 나는 차별받는 자를 대리해서 차별하는 자인 사용자를 상대로 소송하고 있다.

3. 선언해야 차별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세상에서는 그렇다. 앞에서 본 것처럼 법은 차별을 규정하고 비정규직 차별, 고령자 차별에 관해서는 요즘 내가 맡은 사건들인데 이 나라는 비정규직이, 고령자가 차별받고 있다는 걸 선뜻 인정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법에서 정한 차별을 차별이라고 선언하는 건 법원의 일이다. 하지만 법원이 차별이라고 판결하는 건 많지 않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차별받는다고 사용자를 상대로 위법, 무효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법원이 판결로 차별로 선언하는 건 일부고, 나머지는 차별로 판결받지 못한다. 이 세상에서는 법원이 차별로 선언하지 않으면 차별일 수 없다. 아무리 부당해도 차별로 인정되지 않는다.

지난 20여년간 내가 맡아 온 수많은 차별사건들을 통해서 보면 비정규직 차별은 거의 대부분 사내하청 노동자가 파견근로를 주장하며 원청 사업주를 상대로 근로자로 인정해 달라고 청구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법원이 사내하청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차별받고 있다고 판결했던 것은 아니다. 현대차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조를 조직해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외치며 투쟁하기 시작한 2003년께부터 곧바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차별을 받고 있다고 법원이 판결로 선언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비정규직 차별 주장을 거부했다. 2007년 서울중앙지법이 최초로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해 파견법에 따라 원청 현대차의 근로자라는 판결을 선고하면서 비로소 사내하청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차별받고 있다는 게 이 나라에서 선언됐다. 그 뒤 2010년 대법원이 최병승 사건에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은 파견근로라는 판결을 선고하면서 본격적으로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 차별이 인정되기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법원에서 사내하청 노동이 파견근로라고 인정해서 파견법을 위반한 비정규직 차별이라고 선언하기 전에 많은 사건에서 비정규직 차별을 주장했지만 인정하지 않다가 위 사건들 판결을 계기로 각급 법원에서 태도가 달라졌다. 그리고 이제는 현대차 등 완성차는 물론이고 자동차부품회사, 제철소, 나아가 서비스 사업장까지도 다양하게 파견법을 위반한 비정규직 차별로 선언하고 있다.

이에 비해 고령자 차별은 예외적이다. 이 나라에서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몇 년 앞둔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여서 고령자 차별이라고 주장해도 여간해서는 법원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5월 대법원이 임금피크제가 고령자 차별이라고 판결했어도 오늘 하급심법원은 대법원 기준에 따르면 고령자 차별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쏟아내고 있다. 5월 초 KB신용정보의 임금피크제는 고령자 차별로 무효라고 서울중앙지법이 판결한 것이 특별하게 여겨질 정도로 요즘 임금피크제 사건에서 고령자 차별로 법원은 선언하지 않고 있다. 지난주에 사측 항소 등을 협의하기 위해 KB신용정보 사건의 원고 노동자들이 찾아왔는데, 그들도 최근 임금피크제 사건마다 기각을 선고하는 법원이라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이 사건 판결이 나오고 나서 다시 임금피크제에 관한 문의가 쏟아지고 있는데, 하나같이 고령자 차별로 인정돼 이길 수 있는지 하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차별은 법에서 규정해도 법원이 선고해야 차별로 인정받는 것이라서 이렇게 오늘도 이 나라 고령노동자들은 임금피크제에 관해서 문의하는 것이다.

4. 차별은 차별이다. 아무리 부정해도 차별은 차별인 것이다. 앞에서 말한 사건들, 즉 사내하청 노동자와 고령노동자에 대한 차별사건들은 비정규직 차별이고 고령자 차별이라는 것을 사실 누구나 알고 있다.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 노동이 원청 사업을 위해 사용되고, 그 필요에 따라 사내하청업체를 거느려 노동자를 제공받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나라 사업장들에서 고령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기 위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시행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아무리 법원에서 차별로 선언되기 어려워도 차별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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