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투자·출연기관 노조 18개가 함께하는 서울시투자출연기관 노조협의회는 지난 18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기술연구원 졸속 통폐합을 규탄했다. <정소희 기자>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중 가장 먼저 통폐합 대상으로 지목된 서울기술연구원이 서울연구원과 기관 통합이 위헌·위법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달 13일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서울연구원 운영 및 지원 조례’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지난해 서울기술연구원이 서울연구원으로 통폐합되는 것이 결정되며 예고된 조례안이다.

해당 조례안의 핵심 내용은 서울기술연구원이 갖고 있던 각종 자원을 서울연구원이 ‘포괄적으로 승계’한다는 것이다. 서울기술연구원이 갖고 있던 채무와 채권 등 모든 재산은 서울연구원이 승계하고 서울기술연구원이 갖고 있던 사업, 법률관계도 서울연구원의 사업으로 보기로 했다.

포괄적 승계, ‘근로조건은 빼고’

눈에 띄는 점은 임직원에 대한 조치를 설명한 부분이다. 대법원 판례가 오래전 정립한 개념인 ‘포괄적 승계’와 정반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조례안에는 ‘서울기술연구원에 재직하던 직원을 서울연구원에 채용된 것으로 보되 근로계약 방식과 보수체계, 승진 등 제반 근로조건을 서울연구원의 정원과 규정에 따른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1994년 한국무선국관리사업단이 한국무선종사자협회의 권리의무를 승계한 사안에서 “사업단이 협회의 모든 권리의무를 승계함에 따라 협회에 소속된 근로자의 근로관계는 당연히 피고에게 승계된다”며 “근로관계가 포괄적으로 승계되는 경우 근로자의 종전 근로계약상 지위도 그대로 승계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서울기술연구원이 서울연구원으로 통폐합되는 과정이 포괄적 승계에 해당한다면 서울기술연구원 노동자들은 서울연구원이 아닌 이전의 근로계약에 따른 노동조건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해당 조례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서울시가 지난달 확정한 ‘서울연·기술연 통합계획안’이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서울기술연구원 연구직 최하위 직급 노동자는 연봉이 2천만원 삭감되고, 모든 연구직 노동자는 정년이 보장되는 근로계약에서 3년마다 근로계약을 갱신하는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서울기술연구원노조(위원장 조요한)는 과반수 노조다. 노조가 사실상 취업규칙 불이익에 해당하는 통합계획에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례안이 강행되면 근로기준법 위반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타 기관 조례 부칙에 ‘기관 폐지’ 조항 삽입
서울기술연구원노조 “꼼수 조례안” 비판

조례안의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서울기술연구원은 서울연구원과 마찬가지로 별도의 운영 조례가 있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연구원 조례 개정안에 ‘서울기술연구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폐지한다’는 내용의 부칙을 넣어 조례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사실상 조례 폐지 절차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졸속 논란’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조례를 폐지하려면 일정 주민수 이상이 서명을 통해 시의회에 조례의 폐지를 요구하거나, 시의원·시장이 조례 폐지안을 발의해 시의회 심의·의결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민의힘이 서울시의회 다수당이 되면서 300여개에 가까운 조례안을 폐지 대상으로 지목해 각종 폐지조례안을 발의해 ‘마구잡이 폐지’ ‘전임시장 지우기’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 같은 방식의 기관 폐지에 대한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통폐합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기술연구원노조는 현재 서울시의회가 조례안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정례회까지 매일 점심마다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조요한 위원장은 “법률검토 결과 이번 조례안에 따라 노동조건이 저하될 경우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보호하는 헌법 32조에 반하며, 헌법 33조1항의 노동 3권을 형해화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받았다”며 “조례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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