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혜영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영동지사)

강릉은 커피의 도시이자 여행자의 도시다. 맛집도 많다. 여행을 오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 좋은 풍경에 걸맞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이 사는 도시기도 하다. 그렇다면 강릉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어떨까?

몇 가지 장면을 소개한다. 노동조합은 없고, 사업장 규모는 작고,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사건이나 상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다른 지역이라면 노동권익센터·비정규노동센터 같은 곳에서 상담이나 조력을 받을 만한 일들이다. 즉 돈을 내고 상담하거나 사건을 의뢰하기 어려운 기초적인 노동법 위반 사건들이라는 의미다. 어디서라도 도움받고 싶은데 노동 전반에 지식을 가지고 응대해 주는 사람은 없는, 그런 상황은 강릉에서 생각보다 많다. 고용노동부가 있지 않냐고? 한 번이라도 노동부에 가본 사람은, 노동부가 있지 않으냐는 반문을 못 할 것이다. 확신한다.

집이 동해인 21세 청년이 방학 동안 물회 전문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했다. 하루 12시간 일했지만 최저임금도 못 받고, 휴게시간도 없었다. 근로계약서 같은 것도 전혀 안 쓰는 눈치다. 사장님에게 물었다. “사장님, 최저임금은 줘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런 거 안 줘.”

몇 달 후 청년과 사장은 노동부에서 만났다. 사장은 그런 거 다 챙겨 주면 무슨 사업을 하냐고 말했다. 그 물횟집은 꽤 유명한 맛집이다.

최근 강릉으로 이사 온 24세 청년이 호텔 로비에서 일했다. 휴게시간도 없이 일했다. 억울해서 노동부에 휴게시간을 못 썼다고 신고했다. 노동부에서는 증거를 요구했다. 청년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아무리 뒤져도 가진 증거가 없었다. 거기서 막혔다. 몰랐다. 증거를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니. 지난해 한 해 동안 노동부에서 휴게시간 위반으로 처벌한 사례가 과연 몇 건이나 될까. 1건은 있으려나.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유명한 빵집, 브런치 카페, 또 다른 호텔에서도 노동자의 상담이 쌓인다. 이들이 알고 있는 노동법은 현실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원래 살던 사람, 강릉이 좋아 살러 온 사람 대부분 그런 현실에 좌절한다. 최저수준이라도 지키는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난다. 대도시는 좀 나으려나 하면서.

강원도에는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운영되는 노동센터가 단 한 곳도 없다. 시·군별로 상담센터는 간혹 있지만 지역의 산업과 노동의 특성을 포괄해 ‘노동’만 제대로 다루는 기관이 하나도 없다. 얼마 전 ‘노노모의 노동에세이’에 실린 고양시 노동권익센터에서 일하는 노무사의 글이 기억에 남는다. “노동자 지원센터가 필요한 까닭”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그나마 있던 노동센터의 예산이 삭감되거나 폐쇄된다는 내용이었다. 강원도는 아직 아무것도 없는데, 다른 지역은 센터 운영이 나빠지다니, 윽.

강릉살이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괜찮은 노동환경의 기초를 닦는 일이다. 노사 모두가 최저수준 이상으로 지켜야 하는 기준을 인식하고, 서로 존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절실하다. 누구는 대관령이 가로막아 동네가 좀 오래돼(?) 힘들 것이라 하는데, 생각보다 ‘힙한’ 사람들도 많으니 충분히 가능하다. 그래서 놀러 오는 사람, 살러 오는 사람, 살고 있는 사람 모두 팍팍함 대신, 웃음을 짓게 하고 싶다. 오늘처럼 하늘이 맑아 바닷물도 빛이 나는 날, 관광지에 사는 노동자의 삶도 빛이 나길 바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요원해 보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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