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려진 페트병이 재생원료로 재탄생되길 기다리고 있다. 선별장에서 선별된 폐트병을 압축해 강선으로 묶은 형태다. 기계가 아닌 노동자가 강선을 직접 자르다가 산재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강석영 기자>

플라스틱은 썩지 않는다. 버려진 페트병, 고추장통, 샴푸통은 각각 다른 플라스틱 제품으로 만들어진다. 자원을 버리지 않고 계속 사용하는 ‘순환경제’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정작 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은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특히 플라스틱은 재질이 다양해 종이·금속·유리보다 재활용 공정이 복잡하다.

폐기물 재활용업의 가장 큰 특징은 ‘영세함’이다. 10곳 중 7곳 이상이 상시노동자 10명 이하 사업장이다. 고물상에 뿌리를 둔 탓이다. 규모가 영세한 만큼 공정은 위험하고, 기본 안전수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열악한 노동환경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지금처럼 영세한 산업구조에선 고품질 재활용 제품을 만들기 어렵다.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가 세계적 추세인 상황에서 플라스틱 재활용업의 기계화·규모화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산재 발생 위험은 줄겠지만 일자리 소멸 위험이 커진다. ‘정의로운 전환’을 고민해야 하는 또다른 산업현장이다.

<매일노동뉴스>가 분리·배출된 폐플라스틱이 재생원료로 재탄생하기까지의 노동을 좇았다. 전국에서 재활용 플라스틱 선별 작업부터 파쇄·세척·용융·압출 공정들을 취재했지만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있는 업체들은 철저한 익명을 요구했다.

선별 작업부터 베이고 끼이고 골병들고
주민 쾌적함 위해 재활용 선별 작업장 지하화

재활용의 시작은 선별이다. 수집·운반된 폐플라스틱은 선별장으로 모인다. 노동자들은 컨베이어벨트에서 나오는 플라스틱을 PE(폴리에틸렌)·PP(폴리프로플렌)·PET(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 등 재질별로 분류한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항동 구로자원순환센터에서 만난 재활용 선별 노동자들은 근골격계 질환부터 호소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자세를 바꿀 새도 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뿐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부터 동물 사체까지 온갖 것들이 뒤섞여 있는 탓에 피부병도 일상이다. 유리·칼 등에 베이는 일이 비일비재해 파상풍 주사부터 맞아야 한다. 컨베이어벨트 또는 스티로폼을 분쇄하는 감용기, 선별된 플라스틱을 큰 덩어리로 만드는 압축기에 끼일 위험성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월 발표한 연구용역보고서 ‘생활폐기물처리 관련 종사자 노동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재활용 선별장 안전조치 중 안전장갑 미지급이 39%, 이물질 제거시 집게 등 보조기구 미사용이 36%로 높았다. 컨베이어 작업에서 2인1조 작업을 수행하지 않는 비율이 25.3%, 이물질 제거시 ‘수리 중’ 표지를 설치하지 않은 비율이 23.5%였다. 기본적인 안전조치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가장 큰 건강상 문제로는 상지 근육통(85.5%)이 꼽혔다.

폐기물관리법은 쓰레기 수집·운반만 환경부 장관에게 안전기준을 마련하도록 했다. 안전기준을 위반할 경우 업체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하지만 선별장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또는 민간위탁으로 운영하는 등 공공이 개입하고 있음에도 무방비 상태다.

최근 두드러진 문제는 선별장의 지하화다. 주민들이 기피하는 재활용 선별 작업장을 지하로 옮기고 지상은 공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구로자원순환센터가 대표적이다. 푸른수목원 지하에 위치한 구로자원순환센터 곳곳에는 ‘창문을 열지 마세요’ ‘문을 꼭 닫아주세요’란 팻말이 붙어있다. 쾌적한 공원을 위해 지하 노동자들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악취와 습기 문제를 떠안고 있었다. 장영일 민주일반노조 구로자원순환센터분회장은 “지하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안전보건 기준이 없다”고 비판했다.

페트병 재활용을 위한 준비과정인 선별 작업은 힘들고 위험하지만 그나마 공공이 개입하는 영역이라 노동환경이 나은 편이다.

플라스틱 녹이는 펠릿 공정
50도 넘는 작업장, 사우나 같아 숨 안 쉬어져

선별이 끝난 폐플라스틱은 본격적인 재활용 단계에 들어간다. 여기서부터 100% 민간 영역이다. 플라스틱을 잘게 파쇄하고 세척을 통해 이물질을 제거하면 플레이크(flake)가 된다. 이를 녹여 국수가락처럼 길게 뽑아낸 뒤 식혀서 쌀모양으로 끊으면 재생원료, 펠릿(Fellet)이 만들어진다. 물리적 재활용 방법이다.

일부 업체를 살펴보니 위험 작업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압축된 플라스틱 더미를 묶고 있는 강선 해체 작업부터 시작이다. 기계가 아닌 노동자가 직접 자르다 강선이 튀면 심각한 상해로 이어진다. 플라스틱은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파쇄기로 향한다. 노동자가 직접 삽으로 밀어넣거나, 파쇄기 사이 이물질을 제거하던 중 옷자락이라도 말리면 사망사고로 이어진다. 폐기물 처리업체 산재사망 사고 원인 1위는 ‘끼임’이다. 업계 관계자 A씨는 “파쇄기 소음이 심해 옆 동료가 사고가 나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잘게 파쇄된 플라스틱은 물로 세척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B씨는 “사람, 기계, 물이 같이 있으니 감전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감전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플레이크는 더 나은 원료가 되기 위해 펠릿이 된다. 플라스틱 용융점(녹는점)은 보통 섭씨 200~300도 사이다. 펠릿 공정은 엄청난 열로 인해 내부 온도가 50도 가까이 올라간다. 업계 관계자 B씨는 “고온 다습 사우나 같아 숨이 안 쉬어진다. 한여름이 아닐 때도 2분 만에 땀으로 옷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라고 말했다. 녹이는 과정에서 유해가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 C씨는 “가스 포집 시설이 있다고 하지만 내부는 매캐하다”고 말했다. 더워서 마스크도 못 쓴다. 심지어 지하에 있다면 문제는 배가 된다.

이러한 작업은 선별 공정보다 노동환경이 더 열악하다. 12시간 맞교대가 일반적이다. 성형 기기를 멈추면 가열까지 1시간씩 걸리기 때문에 연속해서 돌려야 손실이 적다. 적은 용량의 기계를 사용해도 생산량을 맞출 수 있다. 야간노동으로 비용은 줄일 수 있지만 위험성은 커진다. 세척 이후 공정은 99% 이주노동자로 채워진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 D씨는 “비용 절약도 있지만 노동환경이 열악해 돈을 더 줘서라도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다양한 색깔의 페트병 뚜껑을 분쇄해 녹이면 검정색 펠릿이 나온다.<서울환경연합>
▲ 다양한 색깔의 페트병 뚜껑을 분쇄해 녹이면 검정색 펠릿이 나온다.<서울환경연합>

재활용업체 74% 10명 이하 영세사업장

산재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영세사업장이 지목된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재활용업체는 6천720곳이다. 이 중 절반 이상(53.8%)이 5명 이하 사업장이다. 10명 이하 사업장까지 더하면 73.7%에 달한다. 반면 100명 초과 사업장은 약 1.5%에 불과했다. 2인1조 등 안전수칙을 지키고, 안전설비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사업장이 대다수다.

고물상, 넝마주이에 기원을 둔 업계의 역사가 있다. 해외에는 고물상이라는 업태를 찾아보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 D씨는 “탈플라스틱 정책 이후에야 재활용업이 주목받았지, 그전까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기술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 B씨는 “고물상이 조금씩 확장해 재활용업까지 온 것”이라며 “사업주 연령대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5명 미만 사업장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20년 5월 광주 폐기물업체에서 파쇄기 끼임사고로 아들 김재순씨를 잃은 아버지 선양씨는 “모든 사업장 노동자들이 중대재해처벌법 테두리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며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에 강한 제재를 해야 노동자들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의 근로감독관들은 5명 미만 사업장 감독에 어려움을 토로한다. 익명을 요구한 근로감독관은 “모든 자산을 투입해 더는 여력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라며 “한 번의 감독으로 사업장이 무너질 수 있다. 감독이 아닌 지원의 문제로, 사업주가 아닌 산업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세사업장서 고품질 재생원료 못 만든다

영세한 규모로는 고품질 재생원료를 만들 수 없다. 재활용업체가 더 영세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재생원료 품질이 좋아야 페트병이 다시 페트병(bottle to bottle)이 되는, 순환경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은 부직포와 솜을 만드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업사이클링이 아닌 다운사이클링이다. 두 번 이상 재활용이 불가능해지고, 매립 대상이 된다. 페트병을 재활용해서 만들었다는 의류는 업사이클링이지만 대부분 중국산 재생원료를 사용한다.

고품질 재생원료에 대한 수요는 환경적 측면을 넘어섰다. 재생원료를 사용하지 않은 플라스틱 제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관세 장벽이 확산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은 제품이 수출 규제를 받으면서 기업들이 너도나도 RE(Renewable Electricity)100을 외쳤던 것과 같은 상황이다. 이에 재생원료는 귀한 몸이 됐다. 신규 플라스틱제품보다 가격이 비싼 것은 물론 원료인 유가와 상관없이 일정 수준의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재활용의 핵심은 세척이다. 이물질을 완벽하게 제거하기 위해 수차례 세척 공정을 거쳐야 한다. 광학 선별기 등을 통해서도 이물질을 골라낼 수 있다. 성능 좋은 기계와 넓은 부지, 즉 돈이 드는 일이다. 한 공정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재활용 시스템은 고품질 재생원료을 생산할 준비가 안 됐다. 투명 페트병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고품질 재생원료를 만들 수 있는 투명 페트병을 분리배출했으나 선별장에 별도 라인이 없는 탓에 다른 플라스틱과 섞이면서 분리·배출은 무용지물이 됐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고품질 재생원료 스펙을 기준으로 재활용 시스템을 바꿔 나가는 다운스트림 밸류체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영세사업장 탓만 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플라스틱은 생산 자체부터 여러 재질이 섞여 태생부터 재활용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활용 시스템 재정비는 여전히 중요하다.

E 재활용 업체 대표는 “투자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닌데 여력이 안 된다. 재생원료 품질을 맞출 수 없으니 더 영세해질 수밖에 없다. 악순환 구조를 못 벗어난다”고 토로했다.

기계화·규모화 어떻게 할 것인가

재활용 업체의 기계화·규모화는 정해진 수순으로 보인다. 그 기간이 빠르게는 내년, 길게는 10년까지 걸릴 수 있지만 재활용 산업이 전환의 순간에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관계자는 없다. 홍수열 소장은 “인력에 의존하는 방식은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순환경제를 위해 규모화·기계화가 바람직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당장 비싸더라도 비용을 들여 고품질 재생원료를 만들지 않으면 국가적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이 재활용 산업에 진입하고 있다. SK지오센트릭, LG화학 등은 열분해 기술 경쟁에 나섰다. 플라스틱을 통째로 녹여 원료인 나프타를 뽑아내는 화학적 재활용이다. 아직은 재질별 선별이 어려운 비닐류에 한정하지만, 점점 확장할 수 있다. 업계는 열분해 방식으로 블랙홀처럼 흡수될 것으로 내다본다. 다만 열분해 방식은 정답이 아니다. 물리적 재활용보다 탄소 발생량이 크기 때문이다.

영세사업장들은 불안하다. 가장 큰 걱정은 물량 부족이다. 대기업이 안정적 물량 공급을 위해 선별장까지 진입할 경우 물량은 대기업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현재 무료로 거래되는 폐비닐을 돈 주고 사겠다는 순간, 다른 재질의 폐플라스틱 가격이 오르는 것은 시간 문제다. 업계 관계자 D씨는 “동네 골목에 대형마트가 들어오는 격”이라며 “모든 재생원료가 고품질일 필요는 없다. 구조조정은 대기업 논리다. 물량 공급을 위한 영세사업장 죽이기”라고 경계했다.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재활용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는 게 하나의 방법이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선별과 물리적 재활용에 대한 대기업의 진입 자제를 담은 대-중소기업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대기업이 열분해로 나프타를 추출하면 뒷공정을 중소기업에 맡기는 방안도 나온다.

문제는 정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홍수열 소장은 “재활용 산업의 기계화·규모화 흐름은 이미 대세”라며 “정부가 당장 태스크포스(TF)를 꾸려서 장기계획을 세우고 세부 로드맵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흐름이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기업이 아닌 정부 주도로 구조조정이 연착륙하는 게 중요하다”며 “정부가 중소기업을 지원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규모화·기계화되면 노동환경은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사람의 자리를 기계가 대체하면서 일자리 문제가 발생한다. 재활용 산업의 변화도 정의로운 전환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재원 사람과환경 대표는 “기계화·규모화의 양면성이 있다”며 “일방적 구조조정은 안 된다. 재활용업도 정의로운 전환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모 처의 선별장. 외부에 공개되는 선별장은 그나마 작업환경이 좋은 곳이다. <서울환경연합>
▲ 서울 모 처의 선별장. 외부에 공개되는 선별장은 그나마 작업환경이 좋은 곳이다. <서울환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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