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2030 청년들은 진학과 일자리를 좇아 서울에 왔다. 제 한 몸 뉠 자리를 구하긴 쉽지 않았다. 정부의 청년전용 전세자금 대출제도로 평생 본 적도, 만져 본 적 없는 돈을 은행에서 빌렸다. 어떤 청년은 셋방살이를 선택했다. 한 달 꼬박 일해 손에 쥐는 돈은 250만원이 안 됐다. 숨만 쉬고 살아도 나가는 월세를 줄이려 햇볕이 들지 않는 땅 아래 집, 서울 밖 근교에 둥지를 튼다. 일자리는 신용을, 대출을, 주거의 근거를 결정했고 삶의 터전을 갈랐다. ‘노동-금융-부동산’고리 속 한 번 갈라진 틈은 이어 불일 수 없을 만큼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벌어지는 틈을 막을 기운도, 희망도 청년들에게 사라져 가고 있다. <편집자>

네 명의 청년은 모두 서울·인천 등 수도권에 산다. 나고 자란 곳은 부산·울산·경남 등 제각각이지만 대학 진학, 취업 등을 이유로 타향살이를 택했다. 부모에게서 독립과 함께 집 없는 설움이 시작됐다. 이들의 노동 경로는 삶의 터전과 집의 형태를 결정했다.

7년차 한국지엠 사내하청 노동자, 내 집 장만 포기한 까닭

경기도 광주에 살던 이정민(31·가명)씨는 대학을 강원도로 진학하게 되면서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모든 대학이 그렇듯 기숙사 수용 인원은 집을 필요로 하는 재학생 수보다 적었고, 2학년이 되던 때 그는 방을 구해 나가야 했다. 보증금 100만원·월세 20만원, 3평(9.9제곱미터)짜리 옥탑방 생활이 시작됐다. 무더운 여름이면 직사광선으로 쬐는 햇볕에 집이 달아올랐다. 새벽 6시 땀을 삐질삐질 흘린 채 눈을 떴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주말에도 아침부터 도서관을 찾았다. ‘청춘의 로망’ 옥탑방의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그의 삶터를 결정한 것은 일터였다. 콜센터 상담사로 일하며 잠시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 머물렀고, 2017년 10월 한국지엠 부평공장에 일자리를 구해 인천으로 이주했다.

집을 구할 목돈이 없던 탓에 입사 후 한동안은 서울 사는 ‘아는 형’ 집에서 신세를 졌다. 돈은 아낄 수 있었지만 몸이 고됐다. 주간조로 일할 때는 새벽 5시30분 첫차에 몸을 실었다. 야간조로 일할 때는 자정이 넘어 통근버스를 타고 퇴근했다. 잔업이 있는 날엔 새벽 2시께 일을 마쳤다. 격주로 바뀌는 밤낮, 긴 통근시간에 코피를 쏟는 일이 잦았다. 6~7개월간 일한 월급을 꼬박 모아 보증금 1천만원·월세 40만원짜리 집을 구했다. 한 가구용 주택에 가벽으로 방을 쪼개 임대를 놓은 집주인한테 “삼촌이 살고 난 뒤부터 바퀴벌레가 나온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계약 기간이 남아 설움을 꾹 참고 버텼다.

현재 거주하는 곳은 재건축을 앞둔 저층 아파트다.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35만원짜리 집인데 방 2개에 16평(52제곱미터)쯤 된다. 고정비를 아끼려 친구와 함께 거주 중이다. 통근거리는 15~20분으로 단축됐다.

방충망과 창틀이 낡아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지 오래인데 “나가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 참고 산다. 이씨는 “올해 초 계약 종료를 앞둬 주변 시세를 알아보니 부동산에서 지금 있는 돈으로는 원룸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며 “집주인이 월세를 올릴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말 없었다. 몇 년 더 살 수 있게 됐다”고 안도했다.

그는 ‘내 집 장만’ 꿈을 접은 지 오래다. 7년째 한국지엠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이씨의 근속연수는 여전히 1년 차 머물고 있다. 원청이 도급계약을 맺는 하청업체를 바꿀 때마다 퇴사와 입사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저랑 비슷한 시기에 들어와 7년째 일한 형이 있어요. 집을 옮겨야 해 은행에 대출을 알아봤더니 입사한 지 1년 미만이라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제가 무슨 회사를 다니고 있나 싶더라고요. 그 형은 퇴사한대요.” 이씨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2017년 입사한 이씨의 소속은 세 번 바뀌었다.

▲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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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세가 정하는 햇볕의 값

노동의 경로가 터를 결정했다면, 집세는 창문의 크기를 결정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김영민(26·가명)씨는 대학에 진학하며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지금은 노조 상근 활동가로 일한다. 고시원에서 친구와 살다 2년 전쯤 혼자 살 월세방을 구했다. 친구에게 꿔 급하게 마련한 보증금 100만원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은 많지 않았다. 햇볕 절반을 포기한 덕에 서울 관악구에 있는 6평(19.8제곱미터) 원룸을 구했다. 월세는 관리비를 포함해 36만원만 내면 됐다.

“처음에 집 구할 때만 해도 잘 구했다고 생각했어요. 반지하지만 신축이고 이 가격에 못 구하는 집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점점 반지하에 산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말하길 꺼리게 됐다.

“집 바로 앞에 하수구가 있는데 쓰레기가 많이 쌓여 종종 막혔어요. 지난해 8월 비가 퍼부었을 땐 나가서 손으로 뚫고…. 바깥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소리나 담배 냄새가 창으로 들어오고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반지하가 얼마나 기형적인 공간인지 생각할 수 있잖아요. 계속 우울했어요.”

김씨가 큰비로 고생했던 그때, 서울 관악구에서 일가족 3명이 폭우로 침수된 반지하 방을 빠져 나오지 못해 숨졌다.

최근 김씨는 정부의 중소기업 청년 전세보증금 대출로 1억원을 구해 반지하 탈출을 결심했다. 그가 기한의 정함이 없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조건을 충족해 가능했다. 보증금이 100만원에서 1억으로 백 배 올랐지만 공간은 18평(59제곱미터)으로 세 배 커졌다. 월세는 38만원으로 조금 올랐다. “서울시에서 2년 동안 매달 20만원(반지하 거주가구 대상 특정 바우처) 지원금이 나오니깐, 한 번 넓은 집에서 사람답게 살자는 마음으로 구했어요. 방이 세 개예요.” 김씨의 목소리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근로기준법 밖 노동자는
정부 청년 전세자금 대출 정책에서도 배제

‘노동-금융-부동산’이란 연쇄고리 속 노동자 소득(부채) 격차는 선명한 계급 격차로 이어진다. 국내 주요 은행이 중·저신용 대출을 꺼리며 위험을 회피해 곳간을 채운 피해가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최민아(33·가명)씨가 그런 경우다. 최씨는 스튜디오와 용역계약을 맺고 일하는 프리랜서 웹툰 스토리 작가로 정부의 중소기업 청년 전세자금 대출을 신청할 수 없었다. 소득이 불안정한 프리랜서란 이유로 1금융권은 외면했다. 결국 그는 2금융권을 찾았고 10%란 고금리를 울며 겨자 먹기로 택했다. 한 달 소득은 200만원 정도인데 4분의 1인 50만원은 숨만 쉬어도 나가는 월세다. 한 달 관리비 약 20만원에 대출이자까지 내다 보니 저축은 꿈도 못 꾼다. 불안정 고용형태와 낮은 소득이 비용과 부채를 키우는 것이다. 실제로 최씨는 부족한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추가 대출을 받았다.

그는 “분명 노동자인데 노동자로서의 지원은 못 받고 있다”며 “예술인 지원 사업이 있기는 한데, 2년간 일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지금 스튜디오와 일한 지 1년6개월이라 대출을 받을 수 없다”고 전했다. 최씨는 “사회 초년생에게 2년의 경력을 요구하는 건 부조리하다”며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생활자금도 고금리로 빌릴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완성차 공장 하청업체 노동자 이정민·노조 활동가 김영민·웹툰 스토리 작가 최민아씨의 상황이 보통의 청년들보다 특별히 더 열악한 것은 아니다. 이들의 임금은 200만~250만원 수준이다. 지난 3월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 평균소득은 세전 252만원이다. 평균 근속은 3년이 채 안 됐다. 우리나라 보편적인 청년 모습인 셈이다.

▲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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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차 심화시키는 부동산 금융시스템

‘99.9:0.1’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가 공개한 우리나라 중소기업과 대기업(300명 이상)의 비율이다. 0.1%에 불과한 바늘구멍에 통과한 18.7%의 대기업 노동자는 81.3%의 중소기업 노동자와 출발점이 다르다. 4대 시중은행 중 한 곳에 입사한 정현수(43·가명)씨는 16년째 일하고 있다. 현재 부지점장이라는 직책을 달았고, 연봉은 성과급 포함하면 1억원 수준이다. 서울 서대문구에 34평(112제곱미터)의 아파트에 거주한다. 자가다. 대출 원리금으로 매달 150만원을 지출한다. ‘내 집이 아니라 은행 집’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매달 원리금을 갚아 나가며 프리랜서 최씨가 지불하는 월세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김성태(42·가명)씨는 운이 좋은 케이스다. 중견기업에서 일하다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0 일자리통계에 따르면 중소기업 노동자가 대기업에 이직할 확률은 10.1%다. 10명 중 운 좋은 1명인 셈이다. 그의 회사는 국내 재계 서열 30위 안에 든다. 서울 마포구 25평(82제곱미터) 아파트에 산다. 반전세로 보증금 4억원에 월세 30만원짜리 집이다. 전세보증금 5천만원이 모자라 은행에 대출을 받았지만, 김씨가 적용받은 금리는 3.405%다. 한달 거주비용은 월세 30만원, 대출이자 15만원을 합쳐 45만원 수준이다.

1·2차 노동시장으로 나뉜 노동자는 은행에서도 달리 대접 받았다. 빈자는 더 가난해지고, 부자가 더 배불러지는 금융 시스템이다.

4대 시중은행의 전세자금 대출제도를 살펴보면 직장인의 경우 최저 3.56%의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지만 프리랜서를 대상으로 한 상품은 마련해 놓고 있지 않다. 신용대출에서 차별도 뚜렷하다. 신용등급이 좋은 프리랜서는 기껏해야 6~7%의 금리로 최대 300만원 정도를 빌릴 수 있다. 직장인은 통상 연소득 2천200만원 이상인 경우 연소득의 1.5~2배의 대출이 가능하다. 금리는 6%대로 높지만, 최저 4%대도 가능하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신용이 높은 경우다.

양질의 일자리로 불리는 1차 노동시장 진입에 실패한 노동자가 감수하는 고난은 1차 노동시장 노동자가 누리는 안락함과 치환되는 셈이다.

자본가 지대추구, 청년의 눈물이 되다

청년의 ‘주거’를 위해 정부가 확대한 저리의 전세자금 대출제도는 본래 의도와 달리 부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켰다. 쉬운 전세 대출제도와 매매가에 근접한 전세가가 결합한 결과다. 매매가의 90~100%에 달하는 전세자금 대출이 가능해지자 전세자금을 레버리지로 활용한 갭투자가 성행했다. 정부의 대출지원제도로 서민이 대출을 받아 이자를 내고, 투기 목적으로 집을 이용한 임대인의 사금융을 조달해 준 셈이다.

돈을 좇던 이들은 이 틈을 파고 들었다. 싸지만 쾌적한 집을 찾던 청년들이 먹잇감이 됐다. 지난해 12월 일명 빌라왕 사태로 공론화된 전세사기 사태다. 최근 김학용 국민의힘 의원실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받은 전세사기 피해 사례 3천761건 중 74%는 2030 청년이었다. 전세사기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서울 강서구 화곡동과 인천 미추홀구는 수도권이지만 집값이 싼 편이다. 돈 없는 청년층이 모여들었다.

이철빈(30)씨도 ‘빌라왕’ 사기 피해자 중 한 명이다. 두 곳의 셰어하우스를 거쳐 2021년 11월 전셋집을 마련했다. 회사와 버스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서울 송파구 오피스텔이 6평 남짓한 원룸인데 금싸라기 땅이라 전세보증금만 2억1천만원이었다. 모자란 전세자금 1억2천만원은 버팀목대출을 이용해 조달했다. 2.5% 고정금리가 적용돼 이자부담이 매달 22만원으로 적은 편이다. 잘 구한 집이라는 기쁨은 잠시였다. 임대인의 전세보증보험 가입 약속이 차일피일 늦어지던 지난해 1월 보증보험 가입이 애초 불가한 사실을 알게 됐다. 전세사기였다. 이씨의 임대인은 주택 1천139채를 보유한 김아무개씨로 지난해 10월 숨졌다.

철빈씨는 한동안 자신을 책망했지만, 구조적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고 싸우기로 결심했다.

그는 “사람들이 부동산, 주거 영역을 너무 사적인 영역으로 취급하는 것 같다”며 “헌법 35조에도 국민의 주거권이 명시돼 있는데 (주거권이) 개인과 시장에 맡겨져 운영되도록 방치한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헌법 35조1항은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는 “임대인의 귀책으로 보증금을 안 돌려줘도 은행은 결국 임차인에게 책임을 묻는다. (전세대출금은) 제 통장 한 번 거치지 않고 임대인 통장으로 바로 들어가는 돈”이라며 “은행에는 전세사기의 책임이 없는지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말했다. 2년 뒤 전세자금을 돌려줘야 할 임대인의 신용도는 고려하지 않은 채 이뤄지는 쉬운 대출제도를 꼬집은 것이다.

이성영 희년함께 토지정의센터장은 “전세보증금이 다주택자들이 집을 사는 자본이 됐다”며 “부동산이 돈이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집을 사려 하니 천정부지로 집값이 올라, 노동소득으로 집을 사기가 더 어려워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청년들이 평생 한 번 만져본 적도, 가져본 적도 없는 억 단위 전세자금 대출이 집값을 올리고, 청년의 ‘주거의 사다리’를 부러뜨린 셈이다.

자료 : 매일노동뉴스 재구성, 편집 김효정 기자
자료 : 매일노동뉴스 재구성, 편집 김효정 기자

청년, 전세사기 잠재적 피해자
노동소득으로 감당 못 하는 주거비 ... 악질적 착취의 계급사회

주거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매일노동뉴스>가 인터뷰한 청년 4명 중 3명은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할 뻔했거나 사기를 당했다. 김영민씨는 “공인중개사가 대출 없는 집이라고 해서 믿고 집을 봤는데 등기를 떼 보니 융자금이 4억~5억원이 있었다”며 “공인중개사도 못 믿겠고, 더 이상 신축은 쳐다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전했다.

이정민씨는 “동네 2층짜리 큰 건물 공인중개 사무소에 ‘청년 전세대출 환영’이란 문구가 도배 수준으로 적혀 있었다”며 “당시 살던 월세방보다 조금 큰 평수로 이사갈까 하는 생각에 잠시 지나치며 대출 상담을 받을까 한 적이 있었는데, 생긴 지 몇 달도 안 돼 중개사무소가 사라졌다. 내가 그곳을 갔더라면 전세사기의 피해자가 됐을 것이라 생각하니 전세사기 피해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년들의 고통이 고스란이 전해져 힘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2월28일 인천 전세사기 피해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 이어 이달 24일 네 번째 전세사기 피해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청년들은 말한다. 노동소득으로도 벌 수 없는 돈을 주거의 조건으로 떠넘기는 사회는 악질적인 착취의 계급사회라고.

강예슬·홍준표·임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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