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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지난 버스 운전기사에게 ‘촉탁직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는 취지의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어 관심이 쏠린다. 사업장 내 갱신 관행이 있다면 재고용 기대권이 인정되고, 합리적 사유가 없는 갱신 거절은 위법하다는 판례가 축적되는 경향이다.

정년 앞두고 재고용 거절, 노동위는 사측 손

2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촉탁직 버스 운전기사들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각각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 등에서 4건 모두 원고 승소 판결이 나왔다. 특히 1심 2건과 상고심 1건은 재판부가 모두 중노위 판정을 뒤집고 노동자 손을 들어줬다.

가장 최근 사건은 지난 1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정용석 부장판사)가 내린 판결이다. 인천의 한 버스회사에서 2014년부터 운전기사로 일한 A씨는 2018년 8월 다른 업체가 인수한 상황에서도 고용이 승계됐다. 그런데 2020년 8월 정년을 두 달 앞둔 시기에 사측은 재고용을 거절했다.

그러자 A씨와 전국버스개혁노조는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다. 다른 노동자들과 달리 A씨만 정년 두 달 전에 정년을 통보했고, 정년퇴직 전에 인사위원회를 열어 부당해고라고 주장했다. 또 인사위원회에 노조 참여를 배제한 것은 불이익 취급과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인천지노위는 이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중노위는 촉탁직 재고용 기대권은 인정하면서도 A씨의 운행수칙 위반 이력과 교통사고 건수 등 거절의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보고 초심을 유지했다. 그러자 A씨는 직원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해 형평에 어긋난다며 소송을 냈다.

법원 “다른 노동자 형평 위반, 합리성 없어”

재판부는 A씨 손을 들어줬다. 회사의 재고용 거절에 합리성이 없다고 봤다. 거절 사유로 삼은 ‘사고경력’과 관련해 재판부는 “교통사고 횟수나 피해금액은 근무기간이 길수록 증가하는데, 평균 사고 발생건수 및 피해금액 등을 반영해 갱신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단순히 사고 건수, 보험 손실비용 총액만을 검토해 재고용 여부를 결정해 합리성과 공정성을 갖췄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운행수칙 위반’도 조작 실수나 기계 오류 가능성이 있는데 영상기록장치를 통해 확인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운행수칙 위반을 이유로 징계한 사례가 없는 점도 근거로 삼았다. 더구나 A씨보다 교통사고 발생 횟수가 많은데도 갱신된 운전기사도 있었다.

회사가 제출한 ‘촉탁직 고용 반대 근로자 탄원서’도 직원들이 내용을 모른 채 서명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사자만 알 수 있는 운행수칙 위반 이력이 탄원서에 기재된 부분도 ‘조작 정황’이 됐다. 재판부는 “회사는 근무 중 주의를 촉구하거나 징계 절차에 회부하는 등 조치를 할 수도 있었다”며 “회사가 주장하는 사정들은 재고용 거부를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중대한 사유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앞서 나온 판결도 맥락은 비슷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강우찬 부장판사)는 지난달 21일 인천의 버스회사인 C사 소속 운전기사 B씨가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6년 넘게 일한 B씨는 2018~2019년 두 차례 촉탁직 근로계약을 체결했는데, 계약종료 한 달을 앞둔 2020년 5월 계약기간 만료를 통보받았다. 하지만 다른 기사들은 여러 차례 재고용이 이뤄졌다. C사도 A씨 사건처럼 사고이력·근무성적 등을 따졌다. 역시 형평성이 쟁점이 됐다. 사고 피해금액이 더 큰 기사들이 있는데도 A씨만 계약이 만료됐다. 재판부는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편법 활용’ 버스회사 제동 판결 의미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가 지난달 13일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선고한 사건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원고 승소가 확정됐다. 올해 선고 모두 갱신기대권 거절의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모두 깔렸다. 버스회사는 갱신기대권을 회피하기 위해 근로계약 사이마다 일정 기간을 단절하는 등 편법을 활용했다. 운전기사들이 실업급여를 받아 갱신이 아니라 퇴사한 후 재고용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판례 태도는 확정적 퇴사 후 재입사가 아니라며 갱신기대권을 인정하는 추세다. 사고이력 등 거절 사유도 법원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운전기사들을 대리한 오세정 변호사(법무법인 신효)는 “버스 사업장에서 갱신기대권 존재 여부와 갱신 거절의 합리성 판단을 위해선 다른 노동자와의 갱신 내역과 사고이력을 비교·검토해야 하는데, 중노위는 주로 회사가 왜곡해 제출한 자료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며 “그러나 소송에서 버스공제조합의 사고이력자료 등 제 3기관 자료를 조회해 객관적인 증거조사를 토대로 갱신기대권이 인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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