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31명의 폐암 환자. 전국 14개 시·도 교육청 소속 학교 급식노동자 2만여명에 대해 폐CT 검진을 해 확인한 숫자다. 대략 계산해도 우리나라 전체 50대 여성 폐암 발생률의 3배가 넘는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직업성 폐암의 대표 직종으로 탄광부, 용접공, 주물공, 도장공과 함께 바로 조리사를 떠올릴 정도다. 폐암뿐 아니다. 학교 급식조리사 산재사고도 심각하다. 2022년 국정감사에서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학교 급식조리(실무)사의 산재 세부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9년 871건 △2020년 758건에서 △2021년 1천206건으로 증가했다. 산재 발생형태는 △넘어짐 327건 △화상 307건 △근골격계질환 156건 △끼임 83건 △부딪힘 74건의 순으로 많았다. 2021년 전체 급식인력(영양교사·영양사·조리사·조리원 등 7만2천876명)을 고려해 재해율을 계산하면 대략 1.65%이다. 산재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교육서비스업’에 속하지만 산재가 흔히 발생하는 업종으로 여겨지는 제조업(0.80%), 건설업(1.26%)의 2021년 재해율보다도 높아서 깜짝 놀라게 된다.

위험한 일터라는 사실이 확인되고 노동조합도 꾸준히 열심히 투쟁한 덕에 학교 현장에 대한 산업안전보건 규정은 강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교육서비스업’이라는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의 여러 규정에서 제외됐으나 2017년 고용노동부가 학교 급식실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적용된다는 지침을 내리고 2018년 교육부 또한 전국 교육청에 강화된 산업안전보건 규정을 준수하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2020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 후에는 급식실 이외에도 대상 직종이 확대되고 사용자 책임도 강화됐다. 산재 발생시 기록과 보고, 법령 요지 게시와 안전보건 표지 부착, 건강진단, 안전보건교육,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 조사, 위험성평가 등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규정들이 학교 현장에서도 꼭 지켜야 하는 의무가 된 것은 다행이기도 하고 당연하기도 한 일이다.

다만 법이 적용된다고 이 법이 추구하는 목표가 저절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필자가 교육청 산업보건의로 활동하며 학교의 산업안전보건이 어떤 모습인지 조금이나마 엿보게 되면서 이런 생각이 더 굳어졌다. 일회성 활동에 불과하지만 학교에 방문해 현업 노동자들을 만나면 이들은 무슨 일로 의사가 와서 상담하는지 궁금해 하기도 하고 학교에 대한 건의사항을 묻는 질문에 생각을 풀어놓기도 한다. 어떤 학교에서는 현재 진행되는 여러 산업안전보건 활동에 대한 깊은 불만도 들을 수 있었다. 특별한 사례려니 하고 넘기기엔 심각하고 분명히 개선이 필요한 문제였다.

학교의 현업 종사자들의 산업안전보건 교육은 분기별 6시간으로 규정돼 있다. 집체교육을 받기도 하고 온라인 교육을 받기도 하는데 학기 중에는 따로 시간을 내 모이기가 어려워 각 학교에서 온라인 교육을 받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교육의 상당 부분이 노동자 업무에 맞지 않다는 점이다. 근로시간 중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 일을 다 끝내고 피곤한 상태에서 동영상 교육을 시청하는데 그 내용이 급식실과 상관없는 추락재해의 예방이거나, 급식실에서 쓸 일 없는 기계의 사고 예방이라면 과연 도움이 되겠는가. 도움은커녕 시간 낭비에 산업안전보건 교육 반감만 높이는 꼴이다. 교육청에서도 이런 문제를 인지는 하고 있지만 필수적이고 급한 일을 처리하는 데 인력이나 자원이 부족하다 보니 일단은 법에 명시된 ‘시간’을 맞추는 데 우선 신경을 쓰는 상황이다.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나 위험성평가도 초기부터 제대로 자리를 잡도록 할 필요가 있다. 각 학교별로 이러한 조사를 수행하도록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괴로워하다 많은 경우 부족한 예산을 쥐어짜 외부 업체에 위탁해 수행한다. 훨씬 오래 전부터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를 수행한 제조업 사업장에서 이미 드러난 문제(이를테면 노동자 참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조사의 결과가 작업현장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들을 그대로 따를까 우려된다. 갑자기 늘어난 산업안전보건 활동에 안전보건 관련 실무자(행정실장, 영양교사)의 피로도 또한 제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데 걸림돌이다. 분명히 일은 늘었데 인력의 추가 투입은 없고, 효과도 의심스러운 산업안전보건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직업성 정신질환이 생길 지경이라는 하소연도 들린다. 물론 내가 만난 일부의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현장이라도 노동자를 위험에서 보호하고 건강을 증진시켜야 할 산업안전보건이 귀찮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될 일이다.

법 조항의 형식적인 준수가 아니라 진짜 효과가 있는 산업안전보건 활동이 이뤄지도록 작은 것부터라도 내용을 제대로 채워나가야 한다. 예를 들면,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각 직종에 맞춰 흥미로운 내용으로 개발하거나 교육 시간을 노동조합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해결이다. 아무리 산업안전보건 교육에서 바닥의 물기를 조심하라고 강조해도 물기를 먼저 제거할 시간이 없고 일이 바빠 허둥대다 보면 넘어지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근골격계질환 관리 요령을 배워도 대체인력을 구할 수 없어 아파도 참고 일하다 보면 근골격계질환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높은 재해율만 봐도 급식실 배치기준 개선과 인력충원이 시급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최근 전국에서 급식실 조리실무사 채용 미달 사태가 심각하다. 충분한 임금과 충분한 인력으로 누구나 일하고 싶은 직장으로 만드는 것이 건강과 안전의 토대다. 그래야 한국 교육의 자랑인 양질의 무상급식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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