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 공인노무사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금속노조법률원)

지난해 7월부터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활동을 하고 있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queerdong.net)는 퀴어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노동상담, 교육, 정책사업이나 법률구제사업을 하겠다며 뜻이 맞는 퀴어와 앨라이 노무사들 8명이 모여 지난해 7월 야심차게 출범한 단체다. 그런데 어디 가서 이런 활동을 한다면 꼭 듣는 이야기가 있다. ‘퀴어노동자와 관련해 특별히 할 일이 있느냐’ ‘퀴어노동자만 겪는 특별한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이미 지역마다 노동자를 위한 노동권익센터나 노동자종합지원센터가 있고, 노동법률사무소나 노무법인도 엄청나게 많은데 퀴어노동자를 위한 단체가 별도로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법적 구제’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타깝게도 지금은 필요성이 크지 않다. 노무사마다 주로 하는 일은 다르지만, 노무사는 보통 일단 어떤 사건, 예를 들어 징계나 해고·임금체불·직장 내 괴롭힘 등이 일어나면 상담이나 사건 해결을 위한 진정·구제신청 등 ‘후처리’를 담당하는 직업이다. 그런데 퀴어노동자는 대체로 직장에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동성애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내 주위엔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처럼 일터에 성소수자가 존재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의 퀴어노동자는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것을 조건으로 일터에서의 자리를 허락받는다. 일터에서 퀴어라는 점을 드러내지 않는 것에 성공한다면 실제로 성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이나 불이익은 겪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사실 일터에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없는 것 자체에 있다. 일터에서 일만 하면 되지 굳이 ‘개인적인 일’을 드러내야 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일터는 실제로 일만 하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과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술도 마시면서 관계를 맺는 곳이다.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심지어 알고 싶지 않아도 직장에서 틈틈이 조금씩 이야기하다가 동료들의 별별 사정을 다 알게 된다. 나도 같이 일하는 동료가 연애를 하는지 안 하는지, 하면 상대는 누구인지, 아이는 몇 살이고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자녀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누구와 함께 사는지 등 상당히 많은 사정들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알고 있다. 직장 또한 결국 인간관계의 장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관계를 쌓을 수밖에 없는 공간이라면, 직장에서 퀴어임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한지’가 아니라 ‘가능한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없는 직장환경에서 퀴어노동자는 불가피하게 거짓말을 택하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직장 내 관계들로부터 일정 거리를 두게 된다. 혹여 차별과 불이익에 노출되더라도 직장 내 지지기반이 약한 만큼 대응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의 목표는 일단 퀴어노동자가 직장에서 어떤 문제를 겪을 때 혐오와 차별에 노출될 걱정 없이 안전하게 상담과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퀴어노동자의 존재가 직장에서 지워지는 것 자체가 차별이자 다른 많은 문제들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퀴어노동자 당사자를 포함해 모든 노동자들에게 알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면서 퀴어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괴롭힘도 ‘직장 내 괴롭힘’의 일종이라는 것,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차별도 ‘성차별’에 해당한다는 것이 당연한 법적 사실이자 상식이 되게끔 하고 싶다.

궁극적인 목표는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라는 단체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어느 책의 제목처럼 퀴어가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퀴어노동자들이 어디에서나 안전하게 지원받는다면 가능하다. 참고로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의 줄임말은 ‘퀴어동네’인데, 여기서 ‘동네’는 모두가 알다시피 자신이 사는 집의 근처를 뜻한다. 동네가 커지고 커져서, 머지않은 미래에 더 이상 동네라는 구분조차 의미 없어질 때가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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