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전경. <한국노인인력개발원 홈페이지>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위탁기관에서 일한 책임컨설턴트(행정보조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첫 판결이 나왔다. 위탁기관을 통해 노동자를 사용하는 공공기관 ‘편법 운영’이 여전히 만연하다는 비판이 인다. 개발원은 2021년 국정감사에서 불법파견 사례가 생기지 않도록 조치하겠다고 답변하면서도 소송을 끌었다.

컨설턴트, 실질적 계약관계 여부 쟁점
기관 교체 공백 기간에도 개발원서 근무

22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최수진 부장판사)는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소송 발단은 개발원이 2017~2018년 ‘성장지원센터’ 전문 컨설팅을 수행할 사단법인 두 곳과 위탁운영계약을 체결하면서 시작됐다. A씨는 다섯 차례 걸쳐 위탁기관과 근로계약 또는 위촉계약을 체결하고 센터에서 고령자친화기업 기술·인증 분야 책임컨설턴트로 근무했다. B씨는 2019~2020년 위탁기관과 위촉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2021년 2월 위탁기관이 한국표준협회로 바뀌며 문제가 불거졌다. 협회는 그해 3월 A·B씨에게 ‘현장 컨설팅 40건’을 골자로 하는 업무약정 체결을 요구했다. A·B씨가 거부하자 개발원측은 책임컨설턴트 업무 중단을 통보했다. 하지만 이들은 새로운 위탁기관과 계약을 맺기 전(공백기간)까지 센터에서 동일한 업무를 했다.

결국 A·B씨는 노동위원회로 향했다. 형식상 위탁기관과 계약을 맺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개발원에서 직접 노무를 제공받았다고 주장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적어도 새로운 기관이 계약을 체결하기 전까지 A·B씨와 개발원 사이에 계약관계가 성립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데 개발원이 일방적으로 근로계약을 종료했다”며 부당해고로 판단했다. 또 해고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아 위법하다고 봤다.

중노위도 초심을 유지하자 개발원은 지난해 1월 소송을 냈다. 개발원측은 “A·B씨 업무는 노인일자리를 지원하는 업무와 구별돼 위탁기관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라며 “구체적인 업무를 지휘·감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위탁운영계약 기간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원, 사용자성·근로자성 모두 인정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일방적 해고”

법원은 개발원의 ‘사용자성’과 A·B씨의 ‘근로자성’을 모두 인정했다. 적어도 공백기간에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했고, A·B씨가 센터 소속으로 일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A·B씨가 수행한 업무는 센터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수적인 업무로 개발원 컨설팅사업 담당자에게 업무를 보고해 승인받았다”고 설명했다. 개발원이 업무 진행 상황과 결과를 구체적으로 지휘한 데 반해 위탁기관의 지휘·감독 여부는 없었다는 의미다.

일일 업무일지 작성 등 근태와 휴가도 개발원이 직접 관리하고, 공백기간에 개발원이 직접 보수를 지급한 점도 근거가 됐다. A씨가 고령자친화기업 공모 선정 심사업무와 관련해 심사료를 받아 ‘프리랜서’였다는 개발원 주장도 “추가로 부담한 업무”라고 일축했다.

특히 ‘공백기간’의 근로계약관계는 존속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B씨와 운영기관 사이의 계약기간이 종료된 이상 컨설팅 업무를 수행할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공백기간에 업무를 수행한 것은 개발원에 근로를 제공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형성돼 있는데도 개발원이 업무종료를 통보한 것은 해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법파견’ 정황은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다. 법원이 전체 근무기간을 근로계약관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을 대리한 양정은 변호사(법무법인 이평)는 “A씨의 경우 2017년부터 계약직으로 일해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됐어야 한다”며 “하지만 계속 위탁기관 계약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해 새 국면의 소송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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