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다. 노동시장 개혁을 최우선 국정과제라고 강조했지만 좌초 직전이다. “근로시간 단축”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허울 좋은 이유를 내걸고 내놓는 정책이 시대를 역행하는 탓이다. 주 최장 69시간 근로가 가능하도록 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은 반대 여론에 재검토 의사를 밝혔지만 노동개혁으로 포장한 노동정책 후퇴와 노조 때리기는 지속 중이다. 노·정 대화는 실종됐다. 갈수록 심화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할 해법은 안갯속이다.

<매일노동뉴스>가 김종진(50)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이사장과 만나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평가를 들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20여년간 몸담은 김 이사장은 이달 25일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개소식을 연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연구소는 확대하는 불안정 노동과 청년에 대한 탐색과 지원사업을 병행한다. 인터뷰는 지난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매일노동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거꾸로 가는 노동정책
“법정 노동시간 놔두고 주 최대 근로시간 확대”

- 오랫동안 일해 온 한국노동사회연구소를 떠나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을 차렸다.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
“‘일하는 시민연구소’ 이름에서 드러나듯 고용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이들로 연구·활동의 영역을 넓히려 한다. 정책연구는 플랫폼과 프리랜서, 타투유니온(타투이스트)과 같은 불안정 노동, 세브란스 병원의 주 4일제 등을 연구하고 있다. 다른 재단과 협력을 맺어 직접 사업도 한다. 우분투재단에서 비용을 지원받아 청년유니온과 함께 플랫폼·프리랜서를 상대로 직무교육, 상담사업을 하기도 한다. 녹색병원과 협력해 20대 청년 프리랜서 노동자 건강검진 사업도 진행할 계획이다.”

- 윤석열 정부가 주 최장 69시간 연장근로를 가능하게 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내놓았다.
“지난 10~20년 새 우리 사회가 많이 변했다. 20·30세대는 태어날 때 혹은 어렸을 때부터 주 52시간제였다. 40~50대도 주 6일 일하다 현재 주 5일까지 왔는데 다시 토요일에 일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후폭풍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아이러니다.”

- 정부는 월·분기·반기·연 단위 근로시간 총량을 줄여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프랑스는 연간 최대 연장근로에 220시간 캡(상한)을 씌운다. 유럽연합은 주 최대 48시간으로 제한한다. 프랑스처럼 220시간은 아니더라도 300시간대로 연간 단위 캡을 씌우는 것이 맞다. 그런데 연 근로시간을 440시간까지 열어뒀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노동부는 지난 3월 현행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상한제를 허물고 관리 단위에 비례해 연장근로 총량을 감축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공개했다. 분기(90%)·반기(80%)·연(70%) 단위 연장근로 총량은 월에서 연 단위로 갈수록 줄어든다. 정부 정책에 따르면 연 단위 연장근로는 440시간까지 가능하다.

- 어떻게 했어야 할까.
“우리는 2003년 주 5일제(주 40시간)를 도입하고 2015년 노사정이 2020년까지 1천800시간대로 연간 근로시간을 줄이기로 합의한 정신이 있다. 그러면 정부가 적어도 연간 근로시간은 1천700시간이든 1천800시간대로 맞춰 놓고(캡을 씌우고) 다음 논의를 하면 이야기를 할 여지가 있는데 그렇지 못했다.”

- 근로시간 총량을 줄이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하나.
“노동시간 단축의 핵심은 법정 노동시간 조정·주 최대 연장근로시간 단축·연차휴가 확대 및 사용 촉진 세 가지다. 이것들을 조합해 근로시간 단축의 효과를 보는 것이다. 프랑스와 같은 유럽은 하루 8시간 근무를 7~7.5시간, 주 40시간 근무를 35시간~38시간으로 줄이거나, 주 최대 연장근로시간을 35·38시간으로 줄이는 게 쟁점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시대를 역행하는 방식을 택했다. 근로시간 단축의 핵심인 법정 노동시간은 비껴가고 주 최대 연장근로시간을 확대하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의식 맞지만 해법 틀려

-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을 위해 ‘노동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나 노동개혁을 보면 질문과 답이 모순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1차 노동시장 2차 노동시장의 격차다. 중소영세기업의 노동시간이 더 길고 임금이 적으니 2차 노동시장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 문제의식은 맞지만 해법은 틀렸다. 2차 노동시장의 노동조건을 끌어 올리는 상향 평준화를 해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는 양대 노총을 타깃으로 1차 노동시장이라는 소수의 유노조 사업장의 노동조건을 끌어내리려 하니 문제다.”

- 플랫폼·프리랜서·특수고용직 등 비전형 노동이 빠르게 늘고 있다.
“미국 뉴욕·시애틀주는 배달플랫폼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전통적인 근로계약을 체결한 2천만명의 노동자만이 아니라 일하는 모든 시민을 위한 노동정책으로 진일보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프리랜서 최저 단가·표준 임금을 논의할 시기가 됐다고 본다.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서라도 배달 라이더에게 매달 하루의 유급휴일수당을 주거나, 웹툰작가에게 휴재권을 보장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임금노동자와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의 격차를 좁힐 수 있다.”

- 노정관계가 얼어붙었다. 사회적 대화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빨리 복원하는 게 맞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변화하는 산업구조나 기후위기, 취약노동 사각지대 안전망과 관련한 지속가능한 의제를 놓고 대화의 틀을 유지하는게 맞다고 본다.”

“가맹사업 대상 최저임금 차등적용 시도할 것”

-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무엇을 주목해야 할까.
“올해는 전년보다 380원(3.95%)만 오르면 최저임금 1만원이 된다. 1만원 넘냐, 안 넘냐는 것보다 문재인 정부 때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조정한 것을 원위치시켜야 한다. 재계는 업종별 차등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가 꼭 저지해야 할 문제다. 전 세계에서 업종별 차등을 두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업종별 차등은 오히려 구인이 어려운 업종의 경우 고용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서 한다. 임금을 올리지 않으려는 수단이 아니다.”

- ‘더 주는’ 업종별 차등적용이 가능할까.
“현행 최저임금법으로 할 수 있다. 표준산업분류로 하기에는 적용되는 인원이 너무 많아 힘들 것이고,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이 적용되는 가맹사업체를 대상으로 하자고 주장할 수 있다. 편의점·주유소·PC방·패스트푸드점 등은 조직되지 않은 노동인데다 국민들에게 단순 아르바이트 업무라고 설명하면 설득하기도 쉽다.”

- 윤석열 정부는 성공할 수 있을까.
“단연코 성공하기 힘들다고 본다. 성공의 조건을 평가하는 지표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국민의 지지율이 너무 낮은 게 큰 문제다. 국민의 지지 없이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기 힘들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