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2017년 노동절 오후 2시50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골리앗 크레인이 이동 중 다른 크레인을 충격해 하청노동자 31명이 사상했다는 끔찍한 소식을 들었다. 800톤급 크레인과 부딪쳐 무너진 크레인에 깔려 6명이 목숨을 잃었고, 동료의 사상을 목격한 노동자들은 사고 후 몇 년이 지나도록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산재로 인정받았다. 참사 후 5년이 흐른 지난해 6월에야 법원은 원청인 삼성중공업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인정하고 벌금 2천만원을 확정했다. 원청이 ‘크레인 간 중첩 작업시 충돌예방을 위한 신호방법을 제대로 정하지 않은 부분’ 등 안전조치의무 위반을 했다는 것이다.

올해 노동절 아침,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양회동 3지대장이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그는 노조활동을 이유로 공갈, 업무방해죄로 기소돼 이날 오후 3시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네요”라고 남긴 그의 말을 읽으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지난해 9월부터 정부가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을 위한 일제 점검·단속’을 통해 노조활동을 탄압한 후 지금까지 15명의 조합원이 공갈, 업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됐고, 노조 사무실에 대해 12차례 이상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정부가 ‘불법’이라 단죄하는 행위들은 조합원의 고용을 요구하거나, 노사가 합의한 조합원 고용보장 이행을 촉구하거나, 건설 현장의 산업안전보건법령 위반을 감시·고발하는 활동 등이다.

심지어 정부는 지난 2월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대책’을 발표하면서 타워크레인 기사가 ‘성실의무 위반’을 할 경우 면허정지를 하겠다는 방안까지 내놓았다. 국토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타워크레인 기사가 원청이 정한 작업개시 시간 전까지 조종석 탑승을 하지 못한 경우, 저속 운행하는 경우, 작업 개시 후 원청 또는 타워크레인 임대사의 승인을 받지 않고 안전점검을 실시하는 경우, 작업장 내 순간풍속이 기준치를 초과했더라도 원도급사의 승인 없이 조종석에서 임의로 이탈하는 경우 근무태도 불량으로 면허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의 전신인 타워크레인기사노조가 결성된 2000년,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의 최우선 요구도 바로 노동안전의 문제였다. 90년대 중반 외주화된 이후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타워크레인임대업체 소속으로 고용불안과 임금삭감, 잦은 노동재해에 시달렸다. 안전조치를 무시하는 원청의 압박으로 사고가 나면, 동료의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할 수 없었던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피눈물 속에 노조 결성이 이루어졌고 2001년부터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노조의 투쟁과 단체협약을 통해 2001년 건설현장 최초로 일요휴무제가 실현되고, 2009년에야 주 40시간제를 쟁취했다. 노조는 타워크레인 산재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개선 투쟁도 끈질기게 벌였다. 2007년 타워크레인을 건설기계관리법상 등록시키고, 타워크레인기능사 자격증이 신설됐으며, 타워크레인 관련 산업안전 기준 규칙도 제정하도록 만들었다. 2017년에는 타워크레인 풍속제한 개정을 이뤄내고 2018년에는 타워크레인 전담신호수 도입을 쟁취하기도 했다.

만약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노조로 조직되어 있었다면 기본적 안전수칙도 무시한 채 작업을 강요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수십 명의 노동자가 피를 흘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건설현장 불법행위’라며 단죄하고 있는 노조의 활동은 노동자들을 장시간·위험 노동으로부터 지키고자 하는 조합활동이며 매일 2명꼴로 산재 사망자가 발생하는 죽음의 건설현장을 바꾸기 위한 몸부림이다.

31명의 노동자가 희생된 삼성중공업 원청이 받은 처벌이 벌금 2천만원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건폭’으로 낙인찍은 건설노조가 내야 하는 과징금과 과태료가 건당 수억원, 공갈범으로 구속된 조합원들은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자본 무죄, 노동 유죄라 아니할 수 없다.

삼가 고 양회동 지대장의 명복을 빈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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