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3월6일자 이 칼럼에 같은 제목으로 글을 쓴 바 있다. 그때 못다한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한다.

윤석열 정권은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국정의 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그 가운데서도 노동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노동을 개혁해야 경제가 잘 굴러갈 수 있고, 경제가 잘 굴러가야 민생이 잘 될 수 있고, 민생이 잘 돼야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져서 다른 개혁(악)이나 수구보수 정책을 관철할 수 있다는 접근방식이다. 그러므로 윤석열 정권의 실정을 저지하려면 그의 노동개혁부터 제대로 박살 내야 한다.

하지만 노동운동·사회운동은 윤석열 정권의 노동개혁에 맞서 효과적으로 싸우고 있지 못하다. 윤석열 정권의 다른 국정수행에 대해서도 그러하지만 노동 개혁에 대해서도 민주당식으로 접근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온정적 부르주아 계급의 시각에서 접근해서는 개악 저지에 성공할 수 없고, 설사 성공한다고 하더라고 노동자·민중의 삶에 별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컨대 노란봉투법이 제정되면 노동자의 삶이 달라질까? 민사책임을 묻는 손배가압류의 강도는 다소간 완화될 것이다. 그러나 손배가압류는 노동자에 대한 족쇄로 계속 존재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노동자의 파업은 지금처럼 대부분 불법파업으로 남을 것이고, 불법파업에 엄한 형사책임을 묻는 현재의 관행도 그대로 존속될 것이다. 이처럼 노동자의 파업을 불법으로 간주, 원천봉쇄하는 현행 노동법을 전면적으로 폐기하지 않는 한 노동자의 파업권은 헌법에만 적혀있는 공문구로 계속 남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행 노동법은 독소조항 몇몇을 개정하는 방향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폐기하고 새로 제정하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난 2월 조경배 교수가 필자가 몸담은 노동대학에서 ‘한국 노동법의 문제점- 집단적 노동관계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했다. 그는 2014년 ‘쟁의행위와 책임’ 문제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 발표를 통해서, 또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 주최 ‘결사의 자유 관련 ILO 핵심협약 비준 방안 토론회’에서, 한국 노동법은 법체계가 일제의 치안경찰법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이번 강의에서 더 풍부하고 확실하게 그 점을 폭로했다.

조 교수는 강의 첫머리에서 ‘한국 노동 3권의 실제’라는 소제목으로 이야기했다. 그는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2001년 한국의 사회권의 상황에 관한 최종견해에서 ‘국가보안법을 통해 강제되고 있는 요새 심리(fortress mentality)의 만연이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의 향유에 계속해서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고 밝힌 바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이어갔다. “2022년 8월 기준 노조 조직률 12.4%, 이 가운데 정규직 18.9%, 비정규직 3.1%. 이 지표는 한국에서의 노동 3권의 위상을 바로 보여준다. … 노조 조직률이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은 대체로 그 나라의 임금 불평등이나 복지 수준, 즉 그 사회의 노동자가 처한 사회적·경제적 지위와 깊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경험적으로 보여주기 때문 … 노조 조직률의 저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자기방어 권리조차 무력화된다는 것을 뜻한다. … 1948년 제헌헌법 시부터 노동 3권은 헌법적 권리로서 문서화됐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장식물에 지나지 않았고, 현실의 법령과 제도 속에서 쉽게 무시된다. 이런 사정은 지금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정치적·시민적 권리는 상당 부분 회복돼 가고 있지만, 노동 3권은 견고한 자본의 힘과 정부의 통제 아래 거의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으며 이성적인 담론에 따른 법과 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여전히 노동자의 단결과 고통 어린 투쟁을 통해서만 힘겹게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87년 민주항쟁으로 군사독재가 후퇴하기 시작한 이후 36년이 지난 지금, 노동 3권은 과연 보장되고 있는가? 복수노조 금지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전국총연합체 결성을 가로막고 있던 노조법 3조5호는 1996~97년 노동법 개정 총파업 투쟁을 통해 폐기됐다. 그리고 이 투쟁을 통해 정치활동의 자유, 구체적으로는 선거정치활동의 자유를 쟁취했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노동조합 이외의 사회단체의 경우에는 그런 자유가 불허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노동운동의 체제내화를 위한 특혜였다. 법 개선으로 민주노총이 합법화되고 민주노총의 주도 아래 민주노동당이 창당됐다. 그러나 이런 개선의 지점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 조직률은 전노협 건설로 나아가던 1989년의 조직률 19.8%에서 전진하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했다. 2010년에는 9.8%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것은 96~97년 노동법 개정이 한국 노동법의 치안경찰법적 성격을 거의 타파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렇게 노조 조직률이 저조한 데는 이 시기에 기승을 부린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공세가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선진 자본주의 권역 모두 신자유주의를 채택했는데 한국만 유독 극심하게 낮은 조직률을 보인 것은 노동악법의 존재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진보운동 안에서는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의 원인을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때문으로, 정책적으로는 신자유주의 때문으로 돌리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부와 소득의 양극화는 긴 설명할 필요 없이 자본주의의 법칙이다. 그리고 레이건·대처의 신보수주의와 클린턴·블레어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이 양극화를 심화시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양극화가 한국에서 이다지도 극심하게 나타나는 특수한 조건을 주목해야 한다. 생산양식 수준과 정책 수준의 중간에 ‘천민자본주의 파쇼’ 체제 수준이 있고, 이 체제의 중요한 한 축이 억압적 노동통제 체제이며, 그 통제체제의 주요 축이 노동기본권을 압살하는 파쇼 노동악법이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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