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건준 아유 대표

현장 간부의 고민

“우리는 어떻게 할 건지 판단해야죠.” “(절차 없이 불법 정치파업을 의미하는) 쌩파업은 어렵죠.” “그건 알아.” “총회를 소집하면 안 될까요. 총회를 소집하면 집회 참가 쪽수는 좀 늘 거니까.” “그것도 몇 시간은 일이 중단되는 부담이 있잖아요. 조합원 교육시간을 잡죠.” “뭐 총회 소집이나 조합원 교육을 잡는 거나 그게 그거지.” “총회 시간은 별로 없어요. 정 안되면 확간파업하죠.”

총파업 지침이 떨어졌는데 이걸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한 노조 현장간부들이 하는 대화다. ‘확간파업’이란 확대 간부의 파업이다. 노조 전임자나 집행부만이 아니라 대의원을 포함한 것이 확대 간부다. 조합원 파업은 어려우니 확대 간부만 집회에 참가하는 것을 ‘확간파업’이라고 한다. 현장조합원의 의지를 수렴하고 그걸 에너지 삼아 파업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까. 노조의 주인인 조합원은 총파업을 할 생각이 없는 모양인데, 위에서 떨어진 지침을 어떻게든 실행하는 시늉을 하는 간부들 고충이 안타깝다.

오래된 노조라면 그러려니 넘길 수도 있지만 신생노조 간부들은 이런 상황이 낯설다. 몇 가지 측면에서 더 생각해 보자. 첫째는 지침을 결정하는 곳과 실행하는 곳이 분리됐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이나 산별노조는 총파업을 결정했는데 정작 실행해야 할 현장은 난감해한다. 이건 분명 자치적 결사체로서 노조 운영원리에 어긋난다. 특히 직접민주주의 성격이 강한 결사체로서 노조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공론장을 만드는 능력

노조가 직접민주주의로만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대의원대회는 조합원의 직접 결정이 아니라 대의원이라는 대표를 통한 간접민주주의다. 그러나 노조는 현장에 존재하며 현장 의견에 민감하다. 조합원이 참가하는 대중행동이 주된 문제 해결 방식이라는 점에서 직접민주주의가 강하다. 정치는 간접민주주의로 가더라도 시민사회가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할 때 사회는 균형을 이룬다. ‘인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뜻대로 ‘조합원을 주인으로’ 여긴다면 위에서 총파업을 결정하고 현장은 난감한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둘째는 공론장 문제다. 간단하게 말하면 공론장은 여러 가지 의견들을 공개적으로 교환하고 공식적으로 논의해 공동체가 나아갈 바를 결정하는 공간이다. 노조의 단체행동에는 늘 찬반 의견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런 의견을 교환하고 소통하는 공론장이 충분할 때에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소외되지 않고 참가해 결정을 신뢰하고 함께 행동한다.

총파업을 결정하는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나 산별노조의 중앙기구도 하나의 공론장이다. 이런 공론장이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면 총파업 결정에 대해 현장 간부들이 곤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공론장이 조합원의 참여나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담아 내고, 현장 조합원에게 질문을 던지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면 노조의 대의원대회 결정에 힘이 실린다.

안 되는 걸 알면서 밀어붙여요?

긴급한 상황에서 지도부 긴급 결정으로 파업을 할 수도 있다. 절차를 뛰어넘을 만큼 ‘긴급성’에 대한 공감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요즘 결정하는 노조 파업에 이런 긴급성은 없다. 몇 개월 전에 총파업을 결정한다. 그럼에도 현장의 공감을 만들지 못해 간부들은 ‘쌩파업’을 피해 ‘변칙’을 찾는다. 민주노조운동이 빵빵한 전투력을 보여주고 싶을지라도 우선 생각할 것은 투쟁보다 공론장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지난해 말 이후, 정부가 노조를 공격할 때 지지율이 올랐다. 노조의 투쟁력은 물리적 힘으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특정 산업이나 전 산업적 총파업은 노조 내부 에너지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총파업은 시민사회의 공감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총파업을 결정할 때는 노조 내부만이 아니라 시민사회를 포함한 공론장을 만드는 능력을 요구한다.

총파업 지침을 두고 고민을 털어놓는 신생노조 간부들과 오랜 활동 경력을 가진 어떤 지역의 선배가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민주노총이나 산별노조 간부들이 총파업 안 된다는 걸 모르고 결정할 것 같아요?” “알면서도 그런 결정을 했다는 건가요?” “모르고 결정했으면 ‘아, 이게 아니구나’하고 바꾸지. 안 된다는 거 알면서 밀어붙이는 거야.” 신생노조 간부들은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밀어붙인다는 얘기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두 개의 오더를 가진 간부

이 때문에 세 번째 측면을 생각하게 된다. 산별노조나 총연합단체 간부의 이중 정체성이다. 인간은 교차하는 다양한 관계를 맺고 여러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 심하면 분열증을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양한 관계 속에서 통합된 정체성을 만들어 내면서 산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즘 총파업을 밀어붙이는 것은 대체로 민주노총이나 산별노조 간부들이다. 노조 간부라는 정체성만 가지면 현장 의견을 묻는 절차도 없고 현장 동력도 없는 파업을 고집하기 어렵다.

이들에게 또 다른 정체성이 있다. 정파 활동가라는 정체성이다. 노조간부는 조합원의 뜻을 모아 그 뜻에 따라 활동한다. 그런데 정파 활동가는 조합원의 뜻만이 아니라 자기 조직의 결정을 따르고 노조에 관철시키는 활동을 한다. 이들은 조합원으로부터 받은 ‘오더(Order-주문)’에 못지않게 정파로부터 받은 ‘오더’도 중요하다. 때로는 조합원의 ‘오더’를 무시하고 정파 ‘오더’ 관철에 집중한다.

이 중 오더는 공론장을 왜곡할 수 있다. 노조의 공론은 파업이 아닌데 정파 오더를 관철시키려고 파업을 고집하면 공론장은 무너진다. 왜곡된 공론장에서 총파업을 결정하고 지침을 받은 현장은 난감해진다. 이러면 상급단체 간부의 이중 정체성은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간부들에게 곤란을 준다. 노조 민주주의는 물론이고 ‘어거지 파업’이나 ‘뻥파업’으로 노조의 사회적 신뢰도 추락시킬 수 있다.

밀려난 조합원은 ‘안 하고 만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네 번째는 왜곡된 공론장에서 밀려난 조합원의 최종 결정이다. ‘위에서 결정하면 현장은 따른다’는 얘기는 상명하복의 군대에서나 통한다. 리더에 대한 맹신이 지배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집단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노조, 특히 민주노조라고 한다면 이건 완전히 빗나간 행태다. 공론장을 통해 조합원 공감과 의지가 강력하게 결집되고 그 결정의 집행을 위임받은 집행부가 추진할 경우에 총파업은 위력적으로 실행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본 현장 노조간부들의 얘기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지금 민주노조의 총파업은 사뭇 다르다. 수없이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라면 늘 그렇고 그런 일로 치부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문제다. 노조 공론장을 정파가 장악해 과두제가 심각해질수록 능동적인 참여를 통해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할 평범한 조합원(데모스)을 축출해 왔다.

공론장의 주체가 되지 못한 조합원의 최종 결정은 명확하다. 상급단체는 “한다면 한다”는 구호를 내세워 간부 수련회도 하고 조합원 교육을 한다. 그러나 왜곡된 공론장에서 만들어진 총파업 지침에 대해 조합원이 하는 시늉이라도 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다수 조합원은 ‘안하고 만다.’

아유 대표 (jogj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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