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두현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대법원 2023. 4. 13. 선고 2021다310484 판결

1. 사건의 배경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주식회사(피고)는 민간투자법에 따라 대구-부산간 고속도로 건설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로, 2006년께 고속도로 완공 후 30년간 관리운영권을 부여받은 특수목적법인이다.

피고의 운영개시 당시 한국도로공사가 영업소 근로자들을 차례로 도급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존 정규직 근로자들과 혼재돼 작업하던 용역업체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불법파견이 문제됐다. 그러자 피고는 사업운영 처음부터 영업소 근로자 일부가 아닌 전체를 도급으로 처리해 장소적 혼재를 제거하는 방식을 택했다. 피고는 고속도로 관리운영의 시작 단계부터 각 고속도로 영업소 운영업무 전체를 당시 피고의 최대주주이던 현대산업개발의 자회사인 아이서비스(자산관리회사)에 도급으로 처리했고, 이후 순차로 도급업체가 변경됐으나 영업소 근로자들의 근로계약은 그대로 승계돼 동일한 업무를 계속해서 수행했다.

2. 당사자의 주장

영업소 근로자들인 원고들은 한국도로공사 영업소 근로자들이 불법파견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기초로, 원고들이 피고의 파견근로자의 지위에 있으므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라 직접 고용의무의 이행을 청구했다.

피고는 △도로공사와는 달리 설립 당시부터 원고들과 영업소 내에서 혼재돼 근무하는 피고 소속 근로자가 존재하지 않았고 △신설회사로 영업소 운영의 경험이나 전문성이 전혀 없어 도급을 준 것이고 △상당한 지휘명령이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된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다. 또 설령 한국도로공사 판결과 같이 영업소 수납원들의 파견근로관계가 인정될 수 있더라도 △원고들 중 소장과 파트장 등 관리직들은 수납원들과 동일하게 판단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피고는 △민간투자법에 따라 설립된 특수목적법인으로 민간투자법이 우선해서 적용돼야 하고 △정해진 기간 동안만 관리운영권을 부여받은 특수목적법인의 특성상 영업소 운영의 도급화는 불가피하며 △고용노동부도 다른 민자고속도로에 대해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판단한 점에 미루어 피고와 같은 민자도로에 대한 불법파견 판단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 대상 판결의 요지

가. 파견 성립여부 쟁점: 영업소 전체를 도급처리한 경우에도 파견근로관계 성립

대상 판결은 다음의 사정을 종합해 피고와 원고들 간 파견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①원고들은 상호 유기적인 보고와 지시, 협조를 통해 업무를 수행할 필요가 있었고, 피고의 영업규정이나 지침 등을 통해 피고로부터 업무수행 자체에 관해 지시를 받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②피고는 영업소의 업무 전반에 대한 운영실태 점검을 목적으로 정기적으로 영업심사, 야간점검 등을 시행했고, 연간 운영평가를 실시해 피고 영업소의 운영실태를 확인한 후 그 결과를 각 영업소에 통보했으며, 피고의 대표이사가 직접 영업소를 순회점검 하기도 하는 등 원고들을 관리·감독했다.

③도급업체가 원고들에게 행한 업무지시는 대부분 피고가 결정한 사항을 전달하거나 기존의 업무방침을 반복·강조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④원고들은 피고가 지정한 복장과 피고의 로고가 새겨진 안전조끼와 명찰을 착용하고 피고 명의로 발행된 근무자 카드를 소지한 상태에서 피고가 제시한 각종 규정 등을 준수하며 작업을 수행하는 등 원고들은 피고의 직원들과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피고의 필수적이고 상시적인 업무를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피고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봄이 타당하다.

⑤원고들이 소속된 외주사업체는 이 사건 용역계약에 따른 업무 수행을 위한 독립적인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⑥원고들 중 소장과 파트장들의 수행업무도 피고의 영업소 업무에 포함되므로, 피고가 직접 고용하든 외주화하든 영업소 운영을 위해 소장, 파트장 업무 인원도 필요했다. 피고의 근로조건 결정이나 업무지시 등 근로자파견의 징표들은 대부분 소장, 파트장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므로 이들 역시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

나. 실효의 원칙·민간투자법 적용·정년도과자 쟁점

대상 판결은 원고들이 파견법에 따른 고용의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법원 판결을 통해 비로소 확인받았고, 법률전문가가 아닌 원고들이 그 권리를 오랜 기간 행사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원고들의 권리가 더 이상 행사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해 피고가 정당한 신뢰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민간투자법이 우선 적용한다는 피고 주장에는 피고의 원고들에 대한 근로자파견관계 성립 여부는 민간투자법에 규정되지 않은 사항이므로 파견법에 따른 판단기준으로 결정돼야 한다며 배척했다.

정년도과자는 원칙적으로 정년이 도래함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직접고용의무가 소멸했다 볼 것이지만, 원고들의 청구권원은 사실심 변론종결시를 기준으로 그 존재여부가 판단돼야 하므로 원심 변론종결 당시를 기준으로 피고에게 직접고용의무의 이행을 명한 원심 판단은 타당하다고 했다.

4. 평가

유사사건이라 볼 수 있는 한국도로공사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9. 8. 29. 선고 2017다219072 판결)과 이 사건의 주요한 차이점은 △이 사건 피고가 민자고속도로 사업자로 사업기간이 정해진 특수목적법인인 점, △처음부터 영업소 업무 전체를 도급으로 처리해 혼재근무자가 없었던 점 등이다.

먼저 처음부터 영업소 업무 전체를 도급으로 처리한 부분은, 역설적으로 원청 근로자와의 장소적 혼재나 동종, 유사근로자가 존재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파견의 징표도 약화될 수 있다. 피고 역시 이 점을 주요한 근거로 파견 성립을 부인했다. 심지어 고용노동부도 전국의 민자고속도로 불법파견 조사에서 거의 대부분이 파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주요한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비록 장소적 혼재근무가 없다 하더라도 영업소 업무는 피고의 필수적, 상시적 업무에 해당하는 데다 수행방식도 상호 유기적인 보고와 지시, 협조를 통해야만 하는 점을 비롯해 피고의 영업규정이나 지침 등을 통한 간접적인 업무지시도 파견의 징표로 파악하며 파견근로관계의 성립을 명시적으로 인정했다.

피고가 민간투자법에 따라 설립된 법인으로 고속도로영업소 업무에 전문성이 부재하고, 사업운영기간도 정해져 있는 점 등의 피고 주장은 파견법에 따른 법리보다 사회정책적 필요성에 대한 주장에 가깝다. 그러나 민간투자법과 파견법은 규율하는 내용이 서로 다르고, 노동관계에 관한 판단은 원칙적으로 노동관계에 관한 특별법인 파견법에 따라 우선 파악함이 타당하다. 대상판결은 민간투자법에도 불구하고 파견근로관계 성립여부는 파견법의 기준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고 해 이 점을 어느 정도 긍정한 것으로 보인다.

또 소장·파트장 등 관리자들은 오히려 피고의 직접적인 업무지휘를 받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피고는 ‘관리자’라는 지위를 강조하며 파견 성립을 적극 부인했는데, 대상 판결은 이들 역시 파견근로의 징표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파견근로관계 성립을 명시적으로 인정했다.

다만 이번 대상판결에서 원고들에게 적용되는 임금 등 근로조건은 판단하지 않았는데, 원고들이 파견 성립부터 빠르게 판단받고 근로조건은 단체교섭을 통해 우선 풀어보고자 상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견법 6조의2 3항은 파견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원청의 동종, 유사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따라야 한다. 동종, 유사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없는 경우에는 기존 근로조건의 수준보다 낮아서는 안 된다고만 규정돼 있다.

그런데 이 사건 피고는 도로공사에서 불법파견이 문제되자 이를 해소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영업소 전체를 도급으로 처리하는 기형적 방법을 택했다. 때문에 동종, 유사근로자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원심은 이 점을 간과하고 원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이 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파견법과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등 비정규직법은 헌법과 근로기준법 6조의 차별금지 원칙에 따라 고용형태를 이유로 한 근로조건 차별을 금지하는데 그 취지를 두고 있다. 따라서 피고와 같이 파견근로를 해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파견법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전체 업무를 파견했다면, 비록 동종, 유사업무 근로자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기존 정규직의 취업규칙 중 난이도나 업무책임 면에서 가장 가까운 근로자의 취업규칙을 추단하는 게 옳다. 그러한 해석이 비정규직법의 취지는 물론 합헌적 법률해석의 원칙에도 부합한다.

도로공사 불법파견 사건 하급심 중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2018년 10월12일 선고 2015가합15170, 15231, 2016가합15863(병합) 판결(현재 항소심 진행 중)이 “만약 원고들과 동종 유사한 직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손해액을 산정할 수 없다고 해석한다면, 전면 외주화를 통해 기존 직종을 모두 외주화한 후 직접고용의무를 불이행하는 피고에 외주사업체로부터 임금을 받는 파견근로자들은 비교 대상 근로자가 없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구할 수 없게 되는 부당한 결론에 이른다”고 했다. 이와 유사한 취지로 동종, 유사근로자가 없더라도 원청 정규직 취업규칙 중 하나가 적용된다고 추단된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다. 원고들의 상고 포기로 이 부분이 종국적으로 다퉈지지 않았으므로, 추후 단체교섭으로 원만히 해결되지 않을 경우 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아 봐야 할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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