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23. 2. 10. 선고 2022구합65528 재결취소의 소

1. 사실관계

▲ 김찬영 대표변호사·공인노무사(법무법인 사람앤스마트 서울분사무소)
▲ 김찬영 대표변호사·공인노무사(법무법인 사람앤스마트 서울분사무소)

고인은 벽돌 제작 및 골프장 잔디 관리 업무를 한 자로 2007년 5월경 원발성 폐암을 진단받아 우하엽 절제술을 받았고 2014년 4월경 폐암이 재발해 우상엽 절제술을 받았다. 고인은 2019년 7월경 근로복지공단에 폐암이 업무상 질병에 해당한다며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공단은 고인의 폐암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나 요양기간은 진단일인 2007년 5월경부터 2012년 5월경(1차 기간)이므로 고인이 요양급여신청서를 제출한 2019년 7월경에는 이미 보험급여를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이 도과해 시효의 완성으로 인해 청구권이 소멸했고, 2014년 4월경부터 2019년 4월경(2차 기간)에 발생한 폐암은 1차 기간 이후 재발한 재요양 기간으로 인정되지만 고인은 산재보험법 51조에서 정한 ‘요양급여를 받은 사람’일 것 등 재요양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요양 불승인 결정(이 사건 원처분)을 했다.

고인은 2차 기간에 대해 재요양이 아닌 최초요양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공단에 심사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고인은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피고)에게 이 사건 원처분에 대한 재심사를 청구했다. 피고는 “2014년 발생한 폐암은 새롭게 발생한 질병으로 판단되므로 최초 요양 신청에 해당하는바, 재요양에 해당하지 않고 소멸시효가 완성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고인의 폐암은 업무와 무관하게 발병한 것으로 판단되므로 원처분은 타당하다”고 기각(이 사건 재결)했다.

고인은 2021년 10월경 사망했고, 고인의 배우자인 원고가 고인의 재심사 청구인 지위를 승계했다.

2. 사안의 쟁점

이 사건 원처분 사유는 고인의 폐암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나 요양급여 청구권이 시효완성으로 소멸됐다는 것이다. 피고는 요양급여 청구권이 시효완성으로 소멸됐다고 볼 수 없으나, 고인의 폐암은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사건 재결을 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우선 이 사건 원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것이 보다 직접적인 권리구제 수단이므로 원고의 이 사건 재결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부정되는지 여부다. 또 이 사건 원처분과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처분 사유를 들어 고인의 재심사 청구를 기각한 이 사건 재결 자체에 고유한 위법이 존재하는지도 쟁점이다.

3. 판결의 요지

1) 행정소송법 제19조 단서에 따라 재결취소 소송의 경우 재결 자체에 고유한 위법이 있는지 여부를 심리할 것이고, 재결 자체에 고유한 위법이 없는 경우에는 원처분의 당부와는 상관없이 당해 재결취소소송은 이를 기각해야 한다. 원고는 이 사건 재결이 이 사건 원처분과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처분 사유를 들어 고인의 재심사 청구를 기각한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 원처분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사건 재결의 고유한 위법을 다투고 있는 것에 해당한다. 따라서 심리 결과 이 사건 재결의 고유한 위법사유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청구가 기각되는 것일 뿐, 원고가 이 사건 재결을 한 행정청인 피고를 상대로 제기한 이 사건 소가 부적법한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원고가 이 사건 원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하더라도 그 소송에서는 이 사건 재결 자체의 고유한 하자를 원처분의 취소를 구할 위법사유로 주장할 수 없다. 행정심판법 51조에 따라 이 사건 재결 및 이 사건 원처분에 대해 원고가 다시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도 없다. 결국 이 사건 재결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방법 외에 이 사건 재결 자체의 위법 여부를 다툴 다른 수단은 없다. 따라서 원고에게 이 사건 소를 통해 이 사건 재결의 효력을 다툴 법률상 이익이 인정된다.

2)행정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항고소송에서 처분청은 당초 처분의 근거로 삼은 사유와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한도 내에서만 다른 사유를 추가 또는 변경할 수 있고, 이러한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 유무는 처분 사유를 법률적으로 평가하기 이전의 구체적 사실에 착안해 그 기초인 사회적 사실관계가 기본적인 점에서 동일한지에 따라 결정되므로, 추가 또는 변경된 사유가 처분 당시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거나 당사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해 당초의 처분 사유와 동일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법리는 행정심판 단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사건 재결의 처분 사유는 ‘폐암과 고인의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기초로 하는 것이므로 ‘소멸시효의 완성 여부 및 재요양의 요건 충족 여부’를 기초로 하는 이 사건 원처분의 처분 사유와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다고 볼 수 없는 새로운 사유에 해당한다.

피고는 ‘직업환경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를 근거로 폐암을 업무와 무관하게 발병한 것으로 판단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위 역학조사 결과를 검토했으나 역학조사 결과와는 반대로 “고인이 폐암 발암물질에 장기간 낮지 않은 수준으로 노출된 것으로 보이므로 폐암은 작업 중 노출된 유해물질에 의해 유발됐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정했다. 공단은 위 판정을 근거로 고인의 폐암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 이 사건 원처분 당시에 위와 같은 직업환경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가 존재했고 고인이 이를 알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는 피고가 변경한 처분 사유가 당초의 이 사건 원처분의 사유와 동일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고인은 이 사건 재심 절차에서 2차 기간은 재요양이 아닌 최초요양에 해당한다는 점을 다투어 왔다. 폐암과 고인의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사유로 고인의 요양신청이 불승인될 수 있다는 점에 관해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고가 이 사건 재심 절차에서 고인에게 폐암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와 관련해 의견진술의 기회를 주거나 관련 자료를 제출하게 하는 등으로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했다고 볼만한 사정도 발견할 수 없다.

따라서 피고가 든 이 사건 재결의 처분 사유는 공단이 이 사건 원처분의 근거로 삼은 사유와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행정심판에서 처분 사유의 추가·변경이 허용되는 한도를 벗어나는 것으로서 이 사건 재결은 위법하다.

4. 판결의 의의

요양급여 부지급 결정이 있을 때 통상적으로 공단의 원처분을 소의 대상으로 삼는데, 이 사건의 경우 소의 대상이 재심사위원회의 재결이다 보니 소송 초반에 피고가 피고적격 및 대상적격을 다투기도 했다. 그만큼 재결 취소소송은 흔치 않은데 대상판결은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 유사 이래 처음으로 재심사위원회의 재결을 취소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산재보험법상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의 심사는 공단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심사를 통해 처분의 적법성과 합목적성을 확보하도록 하는 내부의 시정 절차에 해당하므로 당초 처분 사유 이외에 다른 사유를 추가해 심사할 수 있지만,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와 같은 행정심판기관은 심판의 범위가 원처분의 근거로 삼은 사유와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한도 내로 제한되어야 하고 재심사위원회가 판단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재결을 했다면 이는 재결 자체에 고유한 위법이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 유무는 처분 사유를 법률적으로 평가하기 이전의 구체적인 사실에 착안해 그 기초가 되는 사회적 사실관계가 기본적인 점에서 동일한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되고, 구체적 사실을 변경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단지 그 처분의 근거법령만을 추가·변경하거나 불명확한 당초 처분 사유를 구체화하는 정도 내에서만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 법원의 확립된 입장이다. 대상판결도 이와 같은 취지에서 2차 기간이 재요양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사유와 폐암이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사유는 처분 상대방의 방어권 행사의 대상과 방법이 전혀 다른 별개의 사유라는 점을 인정해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5. 결어

▲ 김인진 변호사·공인노무사(법무법인 사람앤스마트 서울분사무소)
▲ 김인진 변호사·공인노무사(법무법인 사람앤스마트 서울분사무소)

재심사 절차에서 원처분 사유와 전혀 다른 사유로 재결을 하는 것은 처분의 상대방의 방어권을 침해하고 신뢰 보호를 깨뜨리는 일이다. 대상판결을 계기로 재심사위원회는 원처분의 위법·부당 여부를 판단할 때 그 심사의 범위가 원처분 사유와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한 사유에 한정됨을 유념하고 실질적 법치주의 구현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