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무덤에서 요람까지’ 유명한 이가 했다던 말을 거꾸로 읽을 때 울림이 더 크다. 알 수 없는 미래 대신, 현재의 내가 있기까지 누구로부터 어떤 지지와 도움을 받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수많은 손길과 마음을 생각하다가, 내게 없었다면 안 됐을 것들로 추리고 추려보니 마침내 남은 것은 두 글자다. ‘돌봄’

타인을 돌보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서(아직도 미덕이기를 바란다), 동시에 타인을 돌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특히 그 타인이 혈연관계에 있을 때 미덕은 쉬이 의무로 바뀐다. 단순히 개인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말에는 실상을 지우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일이 현실에서 어떤 어려움을 수반하는가에 대한 실상을 말이다.

우리 사회는 사적으로 해결하던 돌봄을 공적으로 해결하는 시도를 해오고 있다. 요양보호사 혹은 노인생활지원사, 아이돌보미, 장애인활동지원사와 같은 다양한 돌봄노동자들이 등장했다. 여전히 충분하다고 말하기는 너무 어려우나, 비교하건대 여러 논의와 시도가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무엇과 비교했느냐고 물어볼지도 모른다. 나는 개인의 돌봄노동을 이어받은 다른 사람을 떠올렸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말은 개인의 어려움을 지웠는데, 이제는 그 말이 돌봄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지우고 있다. 나는 그 현실을 조금이라도 말하고 싶어 서론을 이리도 길게 적었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부설기관인 노동자권리연구소에서는 지난해 ‘돌봄노동자의 노동권 실태 및 법제도 개선과제’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1천200여 명의 돌봄노동자를 대상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실태를 분석하고 제언을 담았다. 공통으로 지적되는 가장 큰 문제는 ‘저임금’과 ‘고용불안’이다.

저임금은 단순히 돌봄노동자의 월급여 총액이 적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가나 지자체의 돌봄서비스 이용자의 수가나 바우처를 지원하나 영세업자의 난립으로 주 40시간은커녕 주 15시간조차 일하지 못하는 현실, 하루에 두세 가정을 방문해도 이동시간에 상응하는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현실, 심지어 그 교통비는 자비로 부담하는 현실이 저임금의 문제와 연결돼 있다. 일례로, 아이돌보미 10명 중 1명은 이동에만 1시간 넘게 걸리는데 교통비도 받지 못하는 비율이 68%다. 아이돌보미 대부분이 200만원 이하의 월급으로, 교통비와 이동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수익은 훨씬 더 적다. 무급 연장근무도 노동조건을 열악하게 만든다. 가령 장애인활동지원사 10명 중 1명은 거의 매일 연장근무를 하지만 그 추가 노동에 대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돌봄노동자는 고용불안도 겪고 있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92%, 즉 8%가 모자란 전부가 계약직으로 근무한다. 그중에는 상시로 지속되는 업무를 하지만 6개월 또는 1년 단위의 단기 계약을 반복하는 사람들도 속해있다. 그런데 일이 끊기는 것은 단순히 계약기간 때문만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노무를 제공하고 정해진 대가를 받으리라고 기대하며, 우리 법은 노동자를 보호하고자 사용자가 휴업할 때 천재지변 등의 사유가 아닌 한 휴업수당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상식과 근로기준법은 돌봄노동에서는 당연하지가 않다. 이용자의 사정으로 돌봄노동이 갑자기 중단될 때 사용자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관련 법정 수당을 받은 적이 있다고 보고하는 경우는 14%에 불과하니 말이다. 무급기간을 버티다가 퇴사할 경우, 재가요양보호사가 재취업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3.3개월이 걸린다.

퇴사와 해고의 반복은 임금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 경력과 달리 근속기간은 짧은데, 임금에 노동 숙련도가 반영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절반이 넘는 보육교사가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이나 근속기간 3년 미만인 보육교사가 63%에 달한다. 경력과 근속이 비례하지 않은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에 옮겨 적은 돌봄노동자 현실은 매일 마주치는 일상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그래서 오늘의 글이 당신에게 좀 더 돌봄노동자를 살피고픈 마음이 들었기를 바란다. 한 가지 더 바랄 수 있다면, 이 글을 잊고 지내던 어느 날 돌봄노동자의 투쟁에 대해 듣게 됐을 때 ‘아’하는 순간이 있기를. 서둘러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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