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건준 아유 대표

시민이 두 노총을 앞지르고 있다

놀랐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노회찬재단이 지난 11일 발표한 ‘불평등 사회 국민인식조사’ 2차 결과 때문이다. 지난 2월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69세 이하 2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 따르면 시민인식과 양대 노총 인식이 어긋날 뿐만 아니라 시민인식이 오히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보다 더 낫다고 할 정도다.

시민은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구조적 문제로 본다.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것이 양극화의 주된 원인이라는 진단에 동의하는 의견이 58.5%로 반대 11.1%의 다섯 배가 넘는다. 비정규직이 되는 것은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 때문이라는 응답보다 아니라는 응답이 1.6배 많다. 비정규직 규모가 너무 많다고 동의하는 비율은 68.6%다. 임금 등 노동조건 격차가 심각하다는 데 동의하는 비율은 76.0%다. 비정규직 규모보다 격차를 더 중요한 문제로 본다.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은 기업의 과도한 이윤추구가 42.1%로 가장 높고, 기업의 재정난 32.5%, 정규직의 기득권 보호는 17.0%다. 그런데 2012~23년 변화를 보면, 기업의 과도한 이윤추구를 원인으로 본 응답이 7.5% 줄어든 반면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 보호라는 응답이 6.5%나 늘었다. 시민들은 비정규직 문제에 정규직 노조의 책임도 꽤 있다고 본다.

경로 의존 벗고 경로 다양성 갖춰야

시민들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83.2%가 찬성했다. 비정규직을 감축해야 한다는 의견은 40.7%인데 임금 격차 해소는 51.5%다.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해 비정규직 임금을 올리는 점진적인 해결을 우선에 둔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 일반 원칙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70.4%가 찬성한다. 상시업무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데 찬성하는 57.5%보다 높다.

지금까지 비정규 운동은 정규직 되기를 유일한 길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국민의식조사 결과에서도 상시업무 정규직화에 과반 이상이 찬성했다. 그러나 더 많은 비율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나 임금 격차의 점진적 해결에 찬성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경로를 개척할 때 더 많은 지지를 얻을 것임을 시사한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대안에 정규직의 찬성 정도는 무고용 자영업자보다 더 낮고 전체 평균에도 미달한다. 조사 결과를 발표한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는 “정규직 이기주의 이미지는 시민은 물론 소속 노조원들에게조차 비호감 대상이 되게 한다”고 했다. 비정규직이 자신의 문제를 제외한 평등과 공정 및 사회경제 영역의 거의 모든 쟁점에서 정규직과 의식의 차별성이 없다는 점도 눈에 띈다. 비정규직도 자기 집단이기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운동이라고 마냥 지지할 수 없으며 이를 넘어설 계급운동이 필요하다.

자기 조합원에게 비호감인 두 노총

노조가 불평등 완화에 기여한다는 응답은 46.1%인데 비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응답은 15.4%에 불과하다. 양대 노총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고 보는 응답자 중 두 노총에 호감을 갖는 비율은 10%에 못 미쳤다. 두 노총이 시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그만큼 비정규직 문제에 전향적 모습을 보여야 한다.

양 노총 조합원이 자기 상급단체에 대해 호감을 갖는 비율도 절반에 못 미쳤다. 조합원이 민주노총을 꽤 멀게 느낀다는 것을 현장을 만나면 익히 알 수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 가운데 민주노총에 호감을 갖는 비율이 42.8%에 불과해 과반 훨씬 넘는 조합원이 민주노총에 비호감이라는 점이 심각하다. 이 발표 결과를 SNS에 알리자 정치권이나 관료집단에 대해서도 별로 호감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별로 놀랄 일이 아니라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젊을수록 오히려 “비호감이 그 정도밖에 안 나왔냐”며 두 노총에 강한 불신을 내보였다.

국민은 노조가 어떤 활동에 집중하기를 바랄까. 미래 노동조합 중심활동으로 비정규직 등 취약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응답이 33.7%로 가장 높다. 조합원 근로조건 개선 27.1%, 고용안정 22.2%, 사회제도개혁 15.9%, 정치활동 0.2%다. 국민인식 조사에서는 겨우 0.2%만이 노조의 정치활동에 동의했는데, 민주노총은 4월 24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정치세력화를 위한 안건을 핵심으로 다룬다. 국민의식과 민주노총 사이 괴리가 너무 크다.

시민과 조합원이 무지하다는 사람들

이날 발표에 이어 “노동조합이 사회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정치활동이 필요”하다며 “취약계층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개선, 공정한 사회를 위한 제도개선도 결국 모두 정치”라는 토론도 있었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일상과 정치를 분리”하는 시민과 조합원은 의식이 낮다. 때문에 시민과 조합원의 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교육을 강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모든 것을 정치로 ‘퉁’쳐도 될까. 취약 노동자 보호를 위해 기금을 만들어 지원하고, 권리 사각지대를 향한 다양한 생활문화연대를 하며, 각종 기구에 참여해 취약 노동자를 위한 사업을 확장하고, 무권리 노동자를 위한 공론장을 만드는 것이 모두 정치인가. 필자는 한 SNS에서 사회와 정치를 구분하자고 했다. 그러자 사회와 정치, 사회적 역할과 정치적 역할을 구분하지 못하는 국민에게 인식 조사를 한 것은 사기와 다를 바 없다는 격한 반응을 하는 이도 있었다. 정치와 사회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국민일까, 그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일까.

모든 것을 정치로 ‘퉁’치는 노조간부들은 정당을 만드는 정치세력화에 몰입한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은 4월24일 대의원대회를 개최한다. 정치욕망이 가득한 노조 간부는 국민 0.2%만이 노조 정치활동에 찬성한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자신은 옳고 국민과 조합원은 틀렸다고 한다. 정치세력화만이 길이라 여기고 취약 노동자 보호를 위한 사회적 역할은 무시한다. 그래서 의식이 낮은 국민과 조합원을 가르치려 한다.

뽕 맞은 건 누구?

“이번 조사의 표본수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대표성이 없다”는 반론도 있다. ‘역사적 흐름으로 본 노동·노사관계 국민의식조사’를 발표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 정흥준 교수는 이전 국민의식조사 결과를 함께 보여주었다. 노조가 정치활동에 중심을 둬야 한다는 의견은 2007년 1.1%, 2010년 1.5%, 2017년 0.8%였으며 이번 조사에서는 0.2%다. 오랜 추세에서도 보듯 노조 정치활동에 대한 지지는 완전 바닥이다.

두 노총은 큰 사회세력이다. 시민사회에서 100만 명 이상이 모여 매달 꼬박꼬박 조합비를 내는 집단은 없다. 노조가 꼭 국민의식을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의식을 선도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그런데 오히려 시민의식보다 뒤떨어진 것 아닌가. 산업화 시대나 군대에서 외쳤던 ‘한다면 한다’는 구호를 민주노총 일각에서 외친다. 시민이 뭐라든 수십 년 실패한 정치세력화를 줄기차게 밀어붙이는 ‘한다 정신’ 대단하다. 안되면 만다며 되돌아볼 수 있는 ‘만다 정신’도 필요하다. 되는 걸 하자.

2007년부터 지금까지 국민인식조사를 보면 높을 때는 87.1%, 가장 낮은 이번 조사에서도 79.6%의 국민들이 노조 필요성을 인정한다. 노조가 기후위기, 세계화 후퇴와 다극화, 저성장, 나치와 인종주의 등 극우 포퓰리즘에 의한 정당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꿰뚫어 보면서 ‘새로운 사회 비전’을 만들어 간다면 더 많은 공감을 얻는 사회세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당에 몰빵하는 정파가 주도해 엉뚱하게 내달리는 민주노총을 보며 튀어나온 한마디가 강렬하다. “뽕 맞은 노총의 궤도 이탈”

아유 대표 (jogj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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