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원어민 강사가 어학원과 학교에서 고용주로부터 받은 피해 사례를 증언하고 있다. <남윤희 기자>

“학원에서 수업을 하는데 엄청난 두통과 시력에 장애가 나타났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말도 못하고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빠졌죠.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에 갔을 때서야 알게 됐습니다.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사실을요.”

어학원 원장이 자신을 고용하고도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원어민 강사 엠마(가명)씨는 “원장이 자신의 동의 없이 의사로부터 검사 결과를 요청해 받아봤다”고도 주장했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민주일반노조 주최로 열린 ‘원어민 강사 노동 실태 증언 기자 간담회’에서 나온 증언이다. 이날 참석한 원어민 강사 57명은 회화지도(E-2) 비자로 미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입국한 이들이다. 7명이 발언자로 나섰다. 이들은 어학원과 학교에서 일하며 임금체불, 인종차별, 의료기록 무단열람, 성폭력 등 위협을 겪었다고 증언했다. 고용주의 보복을 두려워한 원어민 강사들은 그래서 모두 검정색 마스크를 착용했다. 일부는 선글라스를 착용해 얼굴이 아예 보이지 않게 했다. 이들은 “고용주들은 절대권력을 가지고 원어민 강사의 모든 삶을 침범하고 통제하려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증언에 나선 원어민 강사들은 “근로기준법 위반이 비일비재하다”고 밝혔다. 사례를 종합하면 임금체불로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넣었더니 원장이 취하를 종용했다. 근로계약시 연차를 학원에서 지정한 휴일에 쓸 것을 요구하고, 이미 작성한 근로계약서를 강사 동의 없이 사업주가 마음대로 변경했다. 학원장이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우편물을 마음대로 열어보는 등 사생활 침해 사례도 있다.

성폭력을 당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미국에서 온 원어민 강사 카이(가명)씨는 “국제학교 임원 중 한 명이 자신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하고 자동차에 몇 시간동안 구금하기도 했다”며 “학교에서 이런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못하도록 협박하고 경찰에 신고도 막았다”고 주장했다. 해당 강사는 성폭행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는데, 오히려 학교로부터 명예훼손으로 맞소송이 제기된 상태다.

노조는 원어민 강사 노동문제 해결과 노조 조직화에 나선다. 온라인으로 원어민 강사들과 피해 사례를 공유하고 노조 차원에서 영문본으로 대응 매뉴얼을 만든다. 이날 간담회 참석자 가운데 23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조합원이 많이 소속된 어학원과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등 본격적인 노조활동에도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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