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고용, 매출, 순이익 격차가 심각하다. 대한민국 법인 53만개 중 대기업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지만 전체 매출의 36%를 점유한다. 대기업이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6%에 그치지만 전체 이익의 67.4%를 차지한다. 반면 중소기업은 전체 고용의 72%를 담당하지만 이익은 32%에 불과하다. 100대 재벌로 범위를 좁히면 어떨까. 고용 비중은 4%에 머물지만 전체 매출은 29%, 이익은 60%를 독점한다. 이렇듯 불공정한 시장은 임금격차를 낳고 중소기업의 경쟁력 저하와 창업 장애로 작용한다.

불평등과 불공정의 문제는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와 ‘기업규모’에서 비롯된다. 90년대 이후 자동화, 모듈화, 아웃소싱은 규제완화와 제도의 부재로 비정규직을 양산했다. 수출주도 성장체제에서 가격경쟁력 유지를 위한 외주화와 단가 인하 전략은 영세사업체 저임금으로 이어져 노동시장의 격차 확대로 드러났다. 여기에 더해 노동관계법 보호 밖에 있는 프리랜서, 플랫폼, 초단시간 노동자까지 격차가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상생형 임금체계를 만들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중구조를 해소하려면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직무급 체계로 바꾸는 논의 이전에 기업규모에 따르는 임금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산업의 이중구조에 비롯된다. 임금체계를 혁신하더라도 하위 50%의 지불여력이 없는 중소규모의 기업에게 유의미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원청과 하청 그리고 재하청으로 이루어지는 피라미드형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

공정한 경제 질서 확립과 산업의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중소기업·소상공인 교섭력을 강화해야 한다. 대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거래는 중소기업의 이윤구조를 약화시키고 산업의 이중구조를 초래한다. 이를 통해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형성되며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된다. 불공정거래는 중소기업의 낮은 이익률로 인한 낮은 투자율 그리고 낮은 노동생산성과 낮은 임금 그리고 낮은 인력의 질이라는 악순환으로 구조화돼 있다.

대·중소기업간 격차가 심화된 상황에서는 성과공유와 납품단가 조정 같은 제도를 중소기업이 실제 요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소상공인·가맹점 등의 교섭력 강화를 통해 성과공유·납품단가 및 거래조건 조정 등 실현 가능성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87년 이후 정치영역에 있어서 민주주의적 원리·가치·규범은 제도화되어 절차적 민주화가 이뤄졌다고 하나, 이러한 민주주의의 원리와 규범은 노사관계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춰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기업들은 노사관계에 있어 ‘노동’을 공동운영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노동배제적인 민주주의는 87년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노동조합에게도 한마디를 보태고 싶다. 노동조합은 소속된 조합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을 우선적인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역할과 책임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민주주의 그리고 정치의 관점에서 노조를 바라보면 ‘일’하는 시민들이 모여 결사체를 이룬 것이고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통의 결정에 개입하고 참여하는 조직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이익을 넘어서서 이러한 결정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검토해야 하는 책임이 뒤따른다. 작게는 기업의 운영에서 크게는 산업 구조의 문제와 국가 운영의 주체로서 스스로를 인식해야 한다.

노동과 노동조합이 배제된 한국 사회에서 시민권과 정치참여의 평등은 사회경제적으로 발생하는 요구와 가치들을 대표하는 다양한 결사체의 자율성을 기반으로 민주사회의 기본원리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한국 사회의 노동조합은 이런 문제에 목소리 내는 것을 주저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닭장 같은 사무실에서 코로나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했고 언제든지 해고의 위협에 놓여있는 콜센터 노동자들. 성차별적 일터에서 유리천장에 부딪히고 고용이 단절되며, 채용과정에서도 불평등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여성노동자들.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노동자들. 일하는 시민이지만 헌법상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한 채 주변화되는 것이 지금 2023년 한국 사회 단면이다.

노동조합의 협상력과 단결력은 결코 조합원의 직접 이해를 향상시키는 것만으로 커지지 않는다.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고 실제적 영향력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에 달렸다. 2023년 우리 시대의 노조는 달라야 한다. 나의 일자리만이 아닌 산업의 생태계와 국가 차원의 불평등과 격차에 맞서 싸움을 확대해야 한다. 기업별 노동조합 체제가 미치지 못하는 다수의 불안정 노동의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사회적 노동조합으로서 책무를 다해야 한다. 이제 이러한 불평등을 극복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쟁취를 위한 직무급제, 사회연대임금 논의의 장을 펼쳐야 할 때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tjfrla3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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