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성 공인노무사(금속노조법률원)

“노동개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노노 간 비대칭 구조. 흔히 이중구조라고 쓰지만 정확히는 착취구조.”(윤석열 대통령, 올해 1월11일 역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오찬에서)

“대기업·정규직 노사의 사회적 책임, 연대의식 부족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주요 원인”(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지난해 9월 노사 전문가 간담회에서)

연일 노조 때리기와 노동시간 늘리기에 여념 없는 대통령과 노동행정 수장의 말이다. 목적이 뭐가 됐든 현 정부 역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 자체는 가지고 있는 걸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의 1차 노동시장과 2차 노동시장 사이의 임금·고용보호 격차는 상당한 수준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다는 데 있다. 앞서 본 대통령의 발언은 사뭇 진지하다. 노조가 교섭력을 기반으로 1차 노동시장을 과보호해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시장을 왜곡하며, 나아가 노동운동이 대다수의 미조직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인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원인진단이 이러하니 그 해법 또한 일차원적일 수밖에 없다. 노동운동을 때려잡으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깰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노조 때리기는 단지 보수진영의 뿌리 깊은 노조혐오에‘만’ 기인한다 보다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그들 나름의 해법이자 숙원인 셈이다.

진짜 그럴까? 오히려 많은 실증연구들은 노조조직률이 높은 산업일수록,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완화됨을 밝히고 있다. 노조 ‘때문에’ 노동시장이 분절화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가 ‘없어서’ 노동시장이 분절되는 것이다. 아니, 노조가 있어도 ‘대화할 수 있는 권리가 없어서’ 노동시장은 더욱 분절된다.

(많이 부족하지만) 하청·비정규 노동자들이 자신의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진짜 사장과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소중한 이유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가 정하고 있는 ‘사용자’ 개념을 확장해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라면 직접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범위 내에서 사용자로서 단체교섭 응낙 의무 등을 지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수언론과 정치권은 노란봉투법을 두고서 ‘협력사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수시로 파업을 가능케 하는 파업조장법’이라고 겁박하는 중이다. 최근 법원이 원청인 CJ대한통운이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들의 노조와 직접교섭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뒤로 이들의 겁박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결코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파업은 교섭이 선행돼야만 하고, 충분한 대화를 거쳐도 결렬됐을 때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노란봉투법은 파업조장법이 아니라 대화촉진법이다.

노조를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도 안다. 하청업체 사장님은 하청 노조가 아무리 파업을 해도 원청의 ‘오더’ 없이는 임금 한 푼 올려줄 수 없다는 것을, 실제로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것은 원청이라는 것을 말이다. 결정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 직접 대화하는 게 분쟁 예방과 해결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이해한다.

아무 권한도 없는 하청업체만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바람에 오히려 파업이 장기화하고, 실질적인 근로조건 개선도 이뤄지지 못하는 모습을 우리는 수 없이 봐 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지난 여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에서 봤던 모습이 바로 그러하지 않았나. 대화 자체를 못 하게 해 놓고서, 결국 참다못해 파업까지 이르고 만 하청·비정규 노동자들을 때려잡는 게 오히려 불법파업 조장법 아닐까? 그렇게 터져 나온 파업은 더 격렬하고, 해결에 드는 사회적 비용도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이를 방치하는 것이야 말로 손실은 사회화하고 이윤만 사유화하겠다는 심보다.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과 이를 적용받을 사람이 얼굴 맞대고 충분히 대화하게 만드는 것을 파업조장법이라며 선동·겁박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 의지가 있는 것인지, 아니 문제로 생각은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중 51번은 ‘원·하청 상생 노사협의회 확산’이다. 현 정부도 원·하청 노사 간 대화 필요성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는 의미 아닐까. 노란봉투법은 ‘원·하청 상생 노사협의회’ 같은 실효성 없는 가짜 대화 말고, 단체교섭권이라는 헌법상 권리를 통해 이를 실효성 있게 실현하고자 할 따름이다.

원청 대기업과 하청노동자가 대화하면 세상 무너질까 봐 잔뜩 겁먹은 그대들에게 노래 한 곡 바친다.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대화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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