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민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전북본부 법률지원센터)

시시포스(Sisypho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코린트의 왕이다. 그는 신들을 속인 죄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 위로 밀어 올리는 극한의 형벌을 받는다. 죽을 힘을 다해 큰 바위를 산꼭대기에 밀어 올리는 순간 바위는 반대편으로 굴러떨어져 다시 밀어 올리기를 영원히 반복해야 한다. 무의미한 노동을 영원히 반복해야 하는 형벌을 받은 것이다. 희망이 없는 노동, 부조리한 일상을 반복해야 하는 삶만큼 힘들고 비극적인 것은 없다.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시지푸스의 형벌의 모습에서 오늘날 직장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역시 시지푸스의 형벌에 대해 “오늘날의 노동자는 평생 동안 똑같은 일에 종사하며 산다. 그 운명도 시지푸스 못지않게 부조리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최근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인 주 69시간제의 골자는 ‘집중적으로 일하고 몰아서 쉬자’다. 기존 1주 최대 12시간 단위로 제한하던 연장노동시간을, 월·분기·반기 등 총량으로 계산해 특정 주에 집중적으로 근로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안대로 11시간 연속휴식을 보장한다는 가정하에 6일 기준 주 69시간, 7일 기준 주 80.5 시간, 이론상으로는 90.5시간까지도 가능하게 된다. 정부는 주 69시간제 개편안에 대해 ‘근로자의 선택권, 건강권, 휴식권을 보편적으로 보장’이나 ‘한 달이나 쉴 수 있다’라는 표어를 내세우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노동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허황된 주장일 뿐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주 69시간제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앗아가는 과로사법이다. 2021년 대한민국의 노동시간은 1천927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국가(OECD) 평균인 1천617시간보다 무려 39일 더 일한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과로하고 있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라는 노동시간 제도 개편안은 노동자의 삶의 질을 파괴하고 건강권·생명권을 훼손하는 과로사법이다.

둘째, 한 달이나 쉴 수 있는 게 아니라, 영원히 쉬게 된다. 직장갑질119가 설문조사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이달 3일부터 한 주간 전국 19세 이상 직장인 1천명을 설문조사(95% 신뢰수준)한 결과 지난해 1년 동안 직장인 80%는 연차휴가를 15일 미만 사용했다. 직장내 분위기나 조직문화, 업무 분배 문제로 현장에서 한 달이나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사업장은 찾기 어렵다.

셋째, 노동시간을 늘려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목적도 시대착오적이다. 현재 우리 세대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임금을 줄이고 노동시간을 늘리는 데 목표를 둘 것이 아니라, 기술개발·교육·연구·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문화에 방점을 둬야 한다.

끊임없이 바위를 굴리는 시시포스에게 행복한 시간은 언제였을까? 아마도 아래로 내려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내려가는 시간은 노동이 없고, 그나마 한숨 돌리고 휴식을 하며 재충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돌을 굴려 올리는 형벌을 내린 신들이 내려오는 시간마저 제한하려고 한다면 이 얼마나 잔인한 신들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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