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상범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얼마 전 미국 CNN이 우리나라 장시간 노동실태를 보도했다. 세계는 노동자 건강보호와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동시간을 줄인 반면 한국은 기존 주 52시간 노동이 적다고 주 최대 69시간으로 늘린다는 내용이다. 또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손꼽히는 장시간 국가라며 매년 수십 명이 과로사로 죽는다고 평가했다. ‘과로사’를 영어로 그대로 옮겨 ‘Gwarosa’로 표현하기도 했다. CNN의 보도처럼 우리나라의 노동시간 정책은 세계적 흐름과 거꾸로 가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장시간 노동정책은 이미 예견됐다. 2021년 대통령 후보 시절 그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비판하며 주 120시간까지 바짝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120시간은 주 5일 근무라면 하루 24시간을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24h×5일=120h). 6일 근무하면 하루 20시간(20h×6일=120h), 7일 근무하면 하루 17시간(17h×7일=120h)을 해야 달성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일하다 죽으라는 말처럼 들린다. 대통령 당선 이후 이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노동부는 법학, 경영학, 경제학 등 12명의 교수로 구성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만들었다. 노동계는 ‘답정너 연구회(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그대로 대답만 하는 연구회)’를 우려했고 곧 사실로 드러났다. 권고문 작성 과정에서 연구회는 사용자 의견은 들었지만 양대 노총은 만나지 않았다. 연구회는 구미에 맞는 단체들과 만나 협의한 뒤 그럴싸한 권고문을 노동부에 제출했다. 권고문 핵심은 현재 주 단위 노동시간을 월, 분기, 반기, 연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 40시간은 그대로 두고 상대적으로 조정이 가능한 연장근로시간을 건드렸다. 6일 근무 시 주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노동시간 유연성을 강화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주 69시간 장시간 노동은 우리 사회에 여러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먼저 장시간 노동은 ‘과로사회’인 우리나라를 ‘초과로사회’로 만들 것이다. 과로는 누적될수록 위험하다. 과로 누적은 질병과 죽음으로 나타난다. 노동시간을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관리하는 것은 과로 누적을 가중시킨다. 최근 5년간 과로로 사망한 노동자는 1천205명에 달한다. 매년 240명이 오랫동안 일하다 죽는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과로사까지 포함하면 매년 500명이 넘을 거란 얘기도 있다. 2021년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는 주 55시간 이상 일하면 뇌졸중과 심장질환의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 기관은 전 세계에서 매년 75만명이 장시간 노동에 따른 뇌졸중과 심장질환으로 죽는다고 발표했다.

둘째, 장시간 노동은 일가정 양립을 파괴하고 아이돌봄 공백을 발생시킬 것이다. 특히 맞벌이 부부는 돌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매일매일 아이들 맡길 곳을 찾느라고 스트레스받을 것이 뻔하다.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돌봄 공백의 고통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얼마 전 합계출산율 0.78명의 위기감으로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주재했다. 윤 대통령은 과학적으로 저출생 원인을 파악하라고 부산을 떨었다. 저출생 원인을 진짜 몰라서 그럴까? 혼자 벌어서 집값, 교육비 등을 감당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에서 맞벌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미 고용노동부도 2004년 주 44시간에서 주 4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장시간 노동이 출생률 저하의 원인이라고 분석한 적 있다. 그런데 맞벌이 부부에게 아이 돌보지 말고 밤늦게까지, 심지어 주말까지 일하라는 정부 개편안은 어이가 없다. 장시간 노동정책을 추진하면서 저출생 문제 해결 방안을 찾는 정부는 거짓말쟁이이며 모순덩어리다.

셋째, 비정규직이 폭증할 것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현재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900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41.4%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이 인건비를 절감하려고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을 채용한 결과다. 2년 근무 후 정규직 전환을 위해 만들어진 ‘비정규직법’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번 노동시간 개편안에는 바쁠 때 오래 일한 만큼 그 시간을 계좌에 넣었다가 바쁘지 않을 때 휴가로 사용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 포함됐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는 대기업 혹은 공공기관은 가능할지 몰라도 민간기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법으로 정한 연차도 인력부족과 상사 눈치 때문에 다 쓰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 큰 이유는 일이 바쁘면 비정규직들을 많이 뽑았다가 덜 바쁘면 해고하는 아주 쉬운 인력운영 방법이 있는데 굳이 돈 많이 드는 정규직을 뽑아 고용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OECD 국가에서 최상위권이다. 2000~2007년까지 8년간 부동의 1위였다가 멕시코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다. 2018년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가 시행되면서 5위로 순위가 더 내려갔지만 여전히 OECD 최강이다. 어쨌든 윤석열 정부는 다시 1위를 되찾고 싶은 모양이다. 현재 세계는 노동시간 줄이기 운동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호주는 주 5일제를 과거의 유물로 취급하고 29개 기업이 주 4일제 근무를 시범운영한다. 영국은 이미 일부 기업에서 주 4일제를 도입했다. 이밖에 아이슬란드, 벨기에, 스페인도 주 4일제를 실험 중이다. 영화 <친구>의 대사처럼 주 69시간을 입안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다. ‘니가 해라, 주 69시간 장시간 노동’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wadrg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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