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주회 철도노조 구로승무지부장

코로나19에 걸린 청년기관사가 병가 사용을 금지당해 서울지하철 1호선 열차를 운전했다. 오늘도 연차를 반려한다는 문자 한 통에 출근하는 기관사가 있다. 누구나 아는 공공기관, 노조도 막강하다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이야기다.

만약 당신이 코레일에 입사한다면 신입사원 교육 때 “욕심 있는 선배들은 아파도 병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부터 듣게 될 것이다. 첫 연차를 쓰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어김없이 연차 사용이 금지된다. “다른 입사 동기는 연차를 잘 사용했다”고 하소연하면 “동기가 죽으면 같이 죽을 거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A형 독감에 걸려 열이 펄펄 끓는다. 의사가 가능하면 격리하고 쉬라고 한다. 회사에 보고했더니 “감기는 병가 사유가 안 된다”고 해서 해열제를 먹으며 퇴근길 열차를 몰았다.

모두 코레일에서 20~30대 청년기관사들이 겪은 일들이다. 코레일 구로승무사업소 한 곳에서만 지난해 835건의 연차 신청에 금지 통보가 이뤄졌다. 병가, 생리휴가에 대한 통제도 속출했다.

코레일은 파업 때도 수도권 전철 운행률을 100% 가까이 유지하는 회사다. 이렇게 가혹하게 연·병가를 통제하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열차를 운영할 수 있다. 게다가 노동조합도 있는 회사에서 기관사들이 왜 당하고만 있는가? 평소부터 기관사가 알아서 순응하게 만드는 관리체계에 그 답이 있다.

관리자들은 인사권을 앞세워 병가 사용을 통제한다. 기관사들은 반 년마다 성적표처럼 개별 순위를 부여받는데, 정작 평가 기준은 베일에 싸여 있다. 관리자에게 평가의 전권이 부여돼 있다. 한 관리자는 어떤 기관사에게 병가 1회 사용을 사유로 낮은 점수를 매겼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그는 승진하려면 팀장들과 친하게 지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실수 한 번 하면 징계뿐만 아니라 골방에서 몇 날 며칠 ‘깜지’를 쓰거나 기약 없이 직위해제를 당하곤 하는 게 기관사의 삶이다. 누구나 언제든 이런 모욕적인 조치를 당할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감을 마음 한켠에 안고 살아간다. 거기다 개인별 순위까지 매기며 관리자에게 잘 보여야 승진도 하고 회사 생활이 편해진다고 길들이니, 어지간한 맷집이 아니고는 버틸 재간이 없다.

기관사의 연·병가를 통제하면 시민안전도 무너진다. 코로나에 걸린 기관사는 병가를 금지당한 뒤 발열과 오한에 시달리며 열차를 몰다 운전취급을 잘못할 뻔했다는 아찔한 고백을 했다. 자칫 안전과 관련한 실수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런데 코레일은 문제의 책임을 되레 기관사들에게 떠넘겼다. 관할 지역본부의 한 고위간부는 이러한 사례들에 대해 따져 묻자 “(아픈데도) 차를 탔다면 기관사가 잘못한 것”이라고 답했다. 보다 못해 노동조합이 병가 통제에 항의하는 선전전을 했더니 회사는 해당 조합원들의 얼굴 사진을 인쇄해 사내 출퇴근길 게시판에 붙여 놓았다. 관리자에 대한 집단 괴롭힘 가해자들이라는 황당한 설명과 함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말마따나 MZ세대가 “권리 의식이 뛰어나”면 무엇하나? 관리자 마음에 따라 상대평가를 당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 얼굴 사진이 게시판에 붙는 회사에서 의식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노동시간을 연장하고 직무·성과급제까지 도입하겠다고 하니 눈앞이 깜깜하다. 이제 승진도 모자라 임금 때문에 관리자 눈치를 봐야 하나? 연속 30일은 운전시켜야 성이 풀리는 것인가? 그러다 아프면 해열제 먹여서 차 태우고, 실수하면 기관사를 독방에서 깜지 쓰게 하고 징계하면 되니 코레일은 아무 책임이 없는 것인가?

수도권 전철을 이용하는 시민이라면 코레일이 성과주의와 노조 때리기에 편승해 기관사들을 어떻게 괴롭히고 있는지, 내 출퇴근 길이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여러분의 출·퇴근길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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