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흔들린 사진은 첫 번째로 거른다. 초점이 맞지 않아도 그렇다. 망친 사진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빠르게 대응해 쓸 만한 장면을 기어코 챙겨야 하는 것이 사진기자의 숙명인데, 밥벌이 사진 훌쩍 이십 년 가까운 나는 여태 허둥댄다. 초점 검출 속도가 충분히 빠르지 않은 낡은 카메라 탓을 해 보지만 무상하다. 늙은 몸뚱이 탓도 그럴싸하지 않다. 몇 장면 망치고, 놓쳤대도 흔들리지 않는 뻔뻔한 ‘멘털’만이 나날이 단단해진다. 변명 늘어놓는 솜씨가 는다. 그런 걸 자기합리화라고 부르는 것 같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던 출입문 반대편으로 입장했다. 노동시간 개편안에 대해 청년유니온 조합원과 만나 얘기 듣는 자리였다. 비공개 통보가 갑작스러웠다. 장소도 시간도 오락가락했다. 서울지방노동청 출입문마다 경찰이 많았다. 유명 인사의 교도소 이감 장면 같다고,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통 모르겠다고 거기 섰던 기자들이 투덜댔다. 좁은 유리창 틈을 힐끔대며 버틴 끝에 찍은 사진은 죄다 흔들리고 말았다. 노동부 장관인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인지 알아볼 수가 없으니 폐기해야 마땅한 사진인데, 붙들고 살 붙이려니 말이 길어진다. 이게 다 변명이다. 사진 한 장 망쳤다고 큰일 나지는 않는다. 노동시간 개편 문제는 다르다. 폐기하라, 목소리가 연일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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