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선희 공인노무사(서울노동권익센터)

공인노무사로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기란 어렵고, ‘노노모(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노무사로서 계속 일할 일터를 찾기도 참 어렵다. 몇 년 전 이직을 할 때도 제한적인 조건하에서 일터를 찾았다. 그때 초심을 그새 잊어 가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노무사이자 노조 조합원인 기회는 흔치 않은데, 현재 소속된 일터인 서울노동권익센터에는 노조(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노동민간위탁분회)가 있다. 조합원 당사자로 총회나 집회에 참석하고, 노조 의사결정에도 참여했다. 내 일터를 일하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고,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동료들과 의지를 다지고 목소리를 내는 노조 본연의 활동 의미를 되새기면 일터에 노조가 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하다. 물론 어려움도 있다. 이 작은 일터에서도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달랐고, 갈라진 의견을 하나로 모아 노조라는 집단의 한목소리로 만드는 것이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지난해 조합원 총의를 모아 임금교섭에서 ‘2.7%’ 임금인상 협약을 어렵게 체결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했지만, 노동조건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고 믿었다. 애석하게도 서울시의회가 센터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서울시는 현존하는 인원을 고려하지 않은 인건비로 예산을 책정했다. 센터 노조가 체결했던 협약은 원래 없던 일처럼 사라졌다. 임금 상승은커녕 ‘사무편람’상 호봉승급도 이뤄지지 않았다. 복리후생제도도 사용할 수 없다는 지침이 내려왔다. 당장 센터의 존폐 위기가 거론되는 마당에, 노동조건은 노사 간 협상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했다. 우선 조직을 지켜야 한다는 대의가 숙제처럼 떠안겨졌다. 턱없이 부족한 사업비, 인건비가 산정된 근거는 무엇인지 사업 주체들은 알지 못한다. 의미 있는 일을 해 왔다는 자긍심도 빼앗겼다. 정작 센터 노조가 마주 앉아 임금교섭을 했던 사용자는 진짜 사용자가 아니었다. 센터 노조는 그간 무엇을 했던가. 단협에 고용보장 조항은 사용자가 책임질 수는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이 단협의 의미는 뭘까.

최근 “소방서 구내식당 조리사는 지방자치단체와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관계에 있다”는 대법원 판결과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와의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라는 판결(서울행법 2021구합71748)을 들여다봤다. 센터 노조 조합원들도 서울시를 상대로 임금체불, 향후 일어날 수 있는 부당해고까지도 다툴 수 있을까. 근로계약에 따른 권리·의무의 최종 귀속 주체는 서울시라고 말이다. 센터는 ‘서울시 근로자 권리보호 및 증진을 위한 조례’에 근거해 서울시가 설립하고, 매년 서울시 예산을 반영해 시설 및 사무를 운영한다. 사업, 운영에 필요한 비용 모두 서울시 예산으로 충당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는 “사업주가 근로조건인 교섭 요구사항에 대해 실질적으로 결정하거나, 근로자가 해당 근로조건을 사업주의 의사대로 또는 정해진 대로 복종에 따를 수밖에 없어 사업주가 해당 근로조건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법원은 설시했다. 지난해 우리가 교섭했던 사용자는 센터 근로조건에 대한 지배력과 결정권이 한정적이었고, 근로조건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노조의 노동 3권도 제한적으로 보장하는 결과가 초래됐다. CJ대한통운 판결에서 법원은 “하청 근로자는 원청 사업주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결정하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기대할 수 없어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유명무실하거나 형해화돼 헌법이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지적한다. 노조법이 산업별 단체교섭·단협은 물론, 노조에 가입한 근로자와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용자단체와의 단체교섭·단협을 인정하고(29조1항), 근로계약관계가 전혀 존재하지 않아도 하나의 지역에 종사하고 있으면 제3자가 체결한 단협을 다른 근로자와 사용자에게도 적용하는 지역적 구속력 제도(36조1항) 취지를 반영한 판결이다. 돌이켜 보면 센터 노동자는 근로조건에 대한 기본권 행사 기회조차 박탈돼 노조법상 권리를 실질적으로 제한받고 있다. 그 원인과 책임은 원청 사업주인 서울시에 있다. 활성화가 필요한 센터의 의미 있는 사업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노동자들의 자긍심마저도 훼손되는 현실이 부당하다. 부당함을 참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비판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센터 노무사로서 법률적으로 구성하기 어려운 사례일지라도 당사자의 의지와 필요성 때문에 진행한 사건들이 있었다. 프리랜서로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잘린 대학생 청년노동자의 부당해고, 5명 미만 사업장으로 쪼개서 운영하는 카페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임금체불, 조직적인 직장내 괴롭힘으로 표적 징계·해고당한 청년노동자, 면역질환을 산재로 승인받고자 한 경비노동자, 모두 당사자가 권리를 구제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믿음에 나도 설득돼 동참했다. 이제는 대리인이 아니라, 당사자로서도 의지를 내고 싶다.

오래 일하고 싶기에, 일하는 동안 소진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렇게 생각해도 나를 잃지 않기란 참 어렵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때로 돌아가 생각해보려 한다. 애당초 나는 왜 노무사가 됐는지, 어떤 계기로 노노모로 활동하는지, 어떤 우직한 결심들이 있었는지 다시 기억하고 싶다. 무엇보다 끊임없는 동기부여가 중요한 데, 놓치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그 의미는 언제나 되짚고 되새기기를 반복해야 한다. 그 일은 혼자가 아니라, 옆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라는 점도 잊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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