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

‘kwarosa.’ 고용노동부가 노동시간 개편 입법안을 발표하자 호주 ABC 방송사는 한국의 장시간 노동을 이야기하며 과로사를 영어발음 그대로 표현하며 한국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K콘텐츠의 탄생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19년 1호 협약으로 공업부문 사업장에서 노동시간을 하루 8시간, 1주 최대 48시간으로 제한하는 협약을 제정했고 1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현재 52개 국가가 1호 협약을 비준하고 있는 상태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연평균 1천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천716시간보다 200시간 정도 더 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우리 또한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해 왔다. 2011년 2천136시간이었던 노동시간이 10년 사이 200시간 가까이 줄었다. 지표로만 보면 우리는 10년 전에 대비해 한 달 정도 덜 일하고 있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데는 많은 합의가 필요하다. 제조업 생산현장에서는 낮은 기본급과 높은 수당이라는 기이한 임금체계로 인해 잔업과 특근까지 해서 ‘더 일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고, 기업은 임금과 노동시간에 대한 너무나도 손쉬운 대안으로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로봇을 급속도로 도입하며, 로봇 밀도 세계 1위 국가를 만들었다.

한편 노동시간을 특정할 수 없는 ‘프리랜서’는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고, 반대로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기 위한 편법 고용인 주 15시간 미만 노동자 또한 급격하게 늘어난 것이 현실이다. 여전히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노동시간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에 의하면 지난 5년간 과로사로 사망한 노동자는 2천500여명으로 연평균 500명 정도라고 한다. 정부에서 공식적 과로사 통계를 내지 않기 때문에 통계의 정합성은 떨어지고, 1인 프리랜서·플랫폼 노동 등 산재보험 의무가입 대상자가 아닌 이들의 경우 통계망에도 들어와 있지 않아 2천500명이라는 숫자는 최소치에 해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기에 정부의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부분에서는 여전히 장시간 노동 관행이 만연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주당 근로시간을 69시간까지 가능하게 만드는 정부 기조에 원칙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또한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를 뒷받침하기 위해 근로자대표자 제도 개선을 이야기했으나 사실상 제도에 대한 세부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실질적 ‘선택권’이 확보될지 의문이다. 중소기업·무노조 사업장 노동자들일수록 정부가 주장하는 의도와는 다르게 그 부작용과 피해가 막심할 것이다. 모든 노동자들의 교섭할 권리를 실현하는 선제적 노력을 통해 노동시간 유연화에 따른 각종 부작용을 예방해 나가야만 한다.

입법예고안 중 근로자 건강권 보호 차원으로 포괄임금 규제는 필요하기에, 이에 3월 중 추가 발표될 예정이라는 포괄임금·고정수당 오남용 근절을 포함한 종합 대책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말하는 산재 인정 기준 4주 평균 64시간 이내 준수 의무화 노력만으로 건강권 보호조치를 다했다고 말해선 안 될 것이다. 모든 시민이 일·생활 균형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노동시간단축의 목표로 삼아야 하며, 이것이 건강하게 노동할 수 있는 권리임을 정부가 자각하길 바란다.

2018년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상한제가 도입됐으나 지난해 12월, 30명 미만 사업장에 계도기간 1년을 부여해 아직도 주당 60시간까지 합법적 노동이 가능한 현실이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입법예고안을 바라보며,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취약계층을 위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의 노력과 상충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 현행 제도 및 노사관계상 일하는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사회적 권리가 배제된 노동의 목소리를 먼저 경청하길 요구한다. 나아가 일하는 모든 시민의 시간주권 확보를 통해 적정 노동시간과 적정임금이 보장될 수 있도록 노동개혁의 로드맵 재검토를 촉구한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tjfrla3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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